연말 회사채 시장이 이례적으로 활기를 띠면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전 수준을 회복했다. 통상 4·4분기는 기관투자가들의 북클로징(투자마감)과 윈도우드레싱(장부정리)이 이뤄지면서 발행과 수요가 감소하는 시기다. 그러나 올해는 연이은 사모펀드 부실 여파와 높은 금리 스프레드 등으로 투자 수요가 늘어 예년 대비 연말효과가 약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3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지난 한 달간 공모 회사채 시장의 수요예측 경쟁률은 평균 4대1을 기록했다. 총 28곳의 발행사 가운데 절반인 14곳이 신용등급 A+ 이하인 비우량 회사채임에도 불구하고 시장 매수 수요가 쏟아졌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3.6대1)과 비교해서도 높은 수준이다. 회사채 시장은 주로 연초에 강세를 보이다가 연말로 갈수록 주춤하는 흐름을 보인다. 그러나 올해는 예상하지 못한 코로나19발 한파로 상반기부터 시장이 얼어붙었다. 지난 3월에는 하나은행 등 시중은행의 회사채마저 미매각이 나는 등 평균 경쟁률이 1.5대1 수준까지 떨어졌다. 연초 50bp(1bp=0.01%포인트) 수준에서 등락하던 회사채 스프레드(동일 만기 국고채와의 금리 차)도 130bp를 훌쩍 뛰어넘었다. 국내 기업들의 실적 악화 우려가 커지면서 보수적인 투자자들이 지갑을 닫은 것이다.
이 같은 장세는 4월부터 채안펀드와 기업유동성지원기구(SPV)가 시장에서 발행 회사채를 직접 매입하면서 완화됐다. AA급 위주로 조금씩 회복되던 회사채 시장은 하반기 들어 A급까지 온기가 퍼졌다. 저금리가 장기화하는 가운데 시장의 유동성이 캐리트레이드(금리 차에 따른 수익 실현)를 노리고 회사채 시장으로 향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라임과 옵티머스 등 사모펀드 이슈가 연이어 터지면서 비교적 금리가 높은 안전자산을 찾는 리테일 수요도 늘었다.
이태훈 이베스트투자증권 연구원은 “코로나19 여파가 얼마나 미칠지 몰라 불확실성이 컸던 상반기와 달리 예상보다 실적이 선방하는 기업들이 생기면서 투자 수요가 돌아온 분위기”라며 “특히 SPV가 A등급 이하 비우량 회사채를 집행자금 70% 수준으로 매입하면서 미매각 우려가 크게 줄었다”고 분석했다.
내년 1월13일까지로 예정된 SPV의 지원 프로그램이 연장되지 않을 경우 연말까지 선제적으로 현금을 확보하려는 기업들은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IB업계의 한 관계자는 “지금처럼 시장에 유동성이 풍부할 때 선제적으로 자금 조달을 고민하는 기업들이 많은 분위기”라며 “예년 대비 연말효과는 크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민경기자 mkki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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