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장하는 공모주마다 ‘따상’이 보장되는 것도 아닌데 당국이 공모주 청약제도 개편을 예고하며 온 국민이 공모주 투자에 관심을 갖게 하는 게 말이 됩니까. 그러니 잘 모르고 들어왔다 손실 보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거죠.”
최근 만난 한 증권사 관계자는 최근 빅히트의 주가 부진을 두고 이렇게 지적했다. ‘쏠림 있는 곳에는 사고가 있다’는 사실을 반복된 경험을 통해 알고 있는 증권가에서는 상장 전부터 과도한 공모주 투자 열기가 높은 공모가로 이어져 빅히트가 ‘동학개미(국내 증시에 투자하는 개인투자자)지옥’이 될 것이라는 예상이 적지 않았다. 그럼에도 금융당국은 ‘공모주 공정 선언’으로 빅히트 청약을 부채질했다. 지난 8월 은성수 금융위원장이 기업공개(IPO)를 주관하는 증권사 사장들을 만나 “고액자산가가 유리한 현행 공모주 배정 방식의 개선이 필요하다”고 일갈한 뒤 즉시 새 제도 마련에 돌입했다. 공모주 투자 쏠림의 위험을 경고해야 할 금융당국 수장이 ‘동학개미의 홍길동’을 자처한 셈이다.
뭔가에 쫓기듯 급해 보이기도 했다. 무산되기는 했지만 10월 초 청약 예정인 빅히트에 개인 배정 물량을 확대한 새 청약제도를 적용하라는 청와대의 지시가 있었다는 이야기도 흘러나왔다. 어쨌든 빅히트 입장에서 공모는 흥행했다. 하지만 그 뒤에 남은 것은 청약에 실패한 뒤 빅히트의 장내 매수에 나섰다가 시퍼렇게 멍든 계좌를 받아든 개인투자자의 원성이다.
공모주 공정 선언은 공모주를 받고 싶어도 목돈을 잠깐 넣어둘 자금동원력이 없는 소액투자자에게 ‘카타르시스’는 안겨줬을지 모른다. 하지만 업계 일각에서는 “빅히트의 공모 실패는 금융 당국이 공모주 쏠림 현상의 조정자가 아닌 조장자가 된 결과”라는 평가를 내린다.
국민주식이 될 것으로 기대를 모았던 빅히트의 배신에 공모주 청약 방식 개편은 속도 조절에 들어간 상태다. 금융당국은 개편안 발표에 앞서 공청회 자리를 마련해 다양한 의견을 듣겠다고 밝혔다.
늦은 감이 있지만 당국이 시장에 미칠 영향을 신중하게 고민하는 모습에 조금이나마 안도하게 된다. 부디 기존 방식의 효율성을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공정성을 효과적으로 끌어올릴 공모주 청약제도 개선안을 내놓기를 바란다. sarok@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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