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현지시간) 치러진 미국 대선의 무게추가 조 바이든 민주당 후보 쪽으로 기운 가운데 국내 경제·산업계는 차기 미 행정부에서도 자국 이익 우선주의와 미중 무역갈등 리스크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바이든 후보의 리쇼어링(기업의 국내 복귀) 정책은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을 능가할 정도로 강력하기 때문이다. 대중(對中) 정책은 ‘동맹과의 연대’를 특별히 강조하고 있어 우리나라는 미중 사이에서 지속적으로 선택을 강요받을 수밖에 없다. 트럼프 대통령이 구사하는 예측 불가능한 관세 폭탄은 피할 수 있겠지만 바이든 행정부에서도 형식만 다를 뿐 국내 산업계의 부담은 지속될 수밖에 없는 셈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5일 서울 여의도 전경련 컨퍼런스센터에서 ‘미국 신정부 출범과 한국에의 시사점’을 주제로 좌담회를 개최했다. 참석자들은 자국 중심주의와 미중 갈등으로 대표되는 ‘트럼피즘’은 소멸하지 않을 것으로 진단했다.
최석영 전 제네바 대사는 “바이든 행정부도 국가안보와 통상을 연계하는 트럼프의 방식을 유지할 것”이라며 “어떤 면에서는 트럼프 행정부보다 바이든 행정부의 경제정책이 외국 기업 입장에서 더 큰 부담이 될 수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리쇼어링 정책을 대표적인 예로 들었다. 바이든 후보는 해외로 생산을 돌리는 오프쇼어링 기업에는 연방정부 법인세 28%(현 21%)에 페널티 10%를 부과하겠다고 공약했다. 반대로 미국으로 돌아오는 기업에는 과감한 세액공제 혜택을 주겠다고 당근책을 내놓았다. 연방조달법 등을 개정해 공공조달에 미국 기업의 참여를 유도하겠다는 구상도 밝힌 바 있다. 최 전 대사는 “바이든 후보의 공약이 한국 등 외국 기업들에는 대단히 불리한 조치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자국 산업 보호 목적의 세이프가드(통상법 201조)와 안보상 수입 규제(무역확장법 232조)도 바이든 행정부하에서 철회되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했다. 최 전 대사는 “트럼프 대통령의 조치를 취소하기보다는 추가적인 조치를 할 수 있다”며 “반덤핑 상계관세 부과도 그대로 이어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윤여준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미주팀장은 “대중국 관세 부과는 당분간 유지되겠지만 동맹국에까지 무차별적이고 일방적으로 취해졌던 201조와 232조 조치는 철회 가능성이 있다”며 다른 의견을 제시했다.
박진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의원은 “바이든 후보의 법인세 인상(21→28%) 공약이 미국에 투자하려는 기업에는 부담이기 때문에 우리로서는 리쇼어링의 기회가 될 수 있다”며 “재정지출 확대를 통한 바이든 후보의 경기 부양책이 국제 통상 질서에 어떤 영향을 줄지 기민하게 대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과 달리 동맹국과의 연대에 기반한 다자주의를 강조하는 바이든 후보의 정책이 자칫 한국을 곤란한 상황에 몰아넣을 수 있다는 분석도 나왔다. 윤 팀장은 “미중 갈등이 지속되는 가운데 바이든 후보는 동맹국과의 연대를 모색할 것이어서 한국 입장에서는 불편한 상황에 놓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바이든 당선자는 매우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대중 통상 정책을 펼 것이기 때문에 동맹국으로서 선택의 폭이 좁아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우리 정부가 미중 사이에서 선택을 강요받을 경우 전문가들은 중국 눈치를 보기보다 미국과의 동맹에 방점을 찍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안호영 북한대학원대학교 총장(전 주미대사)은 “(미중 갈등에 대해) 대증요법으로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대응하면 된다는 주장이 있는데 이는 자칫 우리 스스로 외통수에 걸려들 우려가 있다”면서 “굳건한 한미 동맹에 기초해 대응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국익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제안했다. /한재영기자 jyha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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