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의 신발공장 노바인터내쇼널. 전세계적으로 드물게 지난 20년간 양털(양모) 등 특수소재로 신발을 만들어 왔지만 2015년에는 폐업 직전까지 갔다. 기술력은 세계 최고였지만 국내 수요가 없고 유명 브랜드에 밀리다 보니 ‘양털 신발’이 설 자리가 없었던 것이다. 이랬던 노바인터내쇼널에 볕이 들기 시작한 것은 올버즈(Allbirds)를 만나면서다.
올버즈는 지난 2017년 양털과 사탕수수 등 특수소재로 ‘세상에서 가장 편한 신발’을 만들겠다는 모토로 창업한 미국 실리콘밸리 스타트업이다. 신발 소재는 유칼립투스 나무나 사탕수수, 양털, 재활용플라스틱병 등이다. 그 중에 올버즈가 내놓은 양털로 만든 ‘울러너(wool runner)’는 출시 2년만에 100만 족이 넘게 팔려 나갔다. 래리 페이지 구글 공동창업자,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신으면서 더 유명해 졌다. 할리우드 배우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직접 투자를 했다.
올버즈의 ‘양털신발’ 울러너는 바로 부산에 있는 중소업체 노바인터내쇼널이 만든 것이다.
올버즈는 양모 신발을 만드는 곳을 수소문 했다. 가장 먼저 이탈리아 수제신발 공장을 찾았다. 하지만 원하는 수준의 양털 신발 기술을 가진 곳을 찾는 데 실패했다. 그러다 부산의 노바인터내쇼널을 만났다. 이탈리아 수제신발 공장이 1년 동안 만들지 못했던 양모 신발을 노바인터내쇼널은 한 달 만에 뚝딱 만들어 냈다. 견본품을 본 순간 울버즈 관계자들은 외쳤다.
“바로 이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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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의 신발공장 사장들은 노바인터내쇼널의 기술을 극찬했다. 지지력이 없는 양털을 소재로 신발을 만들면 형태가 금방 망가지지만 노바인터내쇼널은 형태는 물론 내구성, 보온성까지 갖춘 신발을 만들 수 있는 전세계 유일의 기업이라는 것이다.
노바인터내쇼널은 지난 20년간 쌓아 온 양모 신발 제조 기술이 드디어 조명을 받는 순간이었다. 노바인터내쇼널은 올버즈의 양모 신발이 팔리면 팔릴수록 이익이 늘어나는 구조가 됐다. 실제 노바인터내쇼널은 매출이 100억이 채 되지 않았지만 올버즈에 납품하고 나서는 지난해 535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영업이익률은 10% 수준이다. 올해는 역대 최대 실적을 바라보고 있다.
노바인터내쇼널은 다른 경쟁업체들이 저렴한 인건비를 쫓아 중국과 동남아로 공장을 옮길 때도 홀로 국내에 남아 친환경 소재 신발 개발에 주력했다. 뒤늦게 올버즈의 눈에 들어 ‘울(양모) 신발’을 납품하게 되면서 창사 이래 처음으로 드라마틱한 성장을 구가하고 있지만 20년간 쌓아온 원천 기술이 없었더라면 이런 행운도 없었다.
노바인터내쇼널은 부산의 또 다른 혁신 신발 소재업체인 유영산업과 친환경 신소재 연구·개발(R&D)에 뛰어들었다. 유영산업도 20년 이상 업력을 가진 세계적인 기술력의 신발 소재업체다. 유영산업을 창업한 후 경영권을 사모펀드에 넘긴 정호태 전 대표는 올해 초 노바인터내쇼널의 사내이사로 합류해 신소재 개발을 돕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부산 신발업계 관계자는 “친환경 신발소재가 각광을 받으면서 그동안 독자적인 기술을 갖춘 업체들이 글로벌 시장에서 인정받는 사례가 많아지고 있다”고 했다. 부산 신발산업이 단순 제조업에서 고부가 가치를 창출하는 첨단산업의 메카가 되고 있다. /박호현기자 greenlight@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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