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판 뉴딜정책에서 정부가 대학·연구소와 협력관계를 만드는 모습이 잘 보이지 않습니다. 그린뉴딜이든 디지털뉴딜이든 이런 점을 반영해줄 것을 부탁하고 싶어요.”
김무환(62·사진) 포스텍 총장은 9일 서울 종로구 서울경제 본사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그린뉴딜에서 인상적인 게 대학과의 연구개발(R&D)을 전면에 내세우는 점”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바이든 당선인이 기후변화 대응을 위해 각 지역의 대학·국립연구소와 협력하며 현지 상황에 맞춰 연구·교육 등에 박차를 가하기로 한 점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김 총장은 바이든 당선과 관련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에서 과학적 근거에 기반한 정책을 수행하며 지지를 받았다”며 “도널드 트럼프와 달리 국제공조로 기후변화에 적극 대응하겠다는 의지를 가져 주목된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는 전국 100여개 대학에 에너지 관련 학과가 있고 신재생에너지 연구도 성과가 속속 나오고 있는데 대학이 인력양성과 기술개발은 물론 지역주민과 지방자치단체의 구심점이 돼야 한다”고 했다. 포스텍은 철강대학원을 다음 학기부터 철강·에너지소재대학원으로 개편해 배터리 소재부터 시스템까지 연구하고 환경대학원의 기후변화·미세먼지 연구도 강화하고 있다.
그는 “차기 바이든 행정부가 기후변화에 대비해 파리기후변화협약 재가입뿐 아니라 우방국들에 신재생에너지 사용 증대를 강력히 요청할 것”이라며 “우리나라의 환경·에너지정책에도 적잖은 변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부 출연 연구기관들이 지방에 작은 연구분소를 다 두고 있는데 그린뉴딜 등에 대처하려면 융합연구를 위한 지역별 통합연구소가 효율적이라는 의견도 냈다. 그는 “미국에서 하버드대와 MIT를 주축으로 30여개 대학이 힘을 합쳐 코로나19 관련 기술을 무료로 기업들에 이전해 상용화하도록 지원한 사례를 들며 이제는 각자도생이 아닌 ‘다 함께(go together)’ 정신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대담=고광본 선임기자 kbgo@sedaily.com
김 총장은 “우리가 당장 신재생에너지 사용 비율을 급격히 올리기는 어렵다”며 “미국 구글도 데이터센터 전력을 태양광과 풍력 등 청정에너지로 대체하기로 했지만 결국 ‘에너지믹스’를 선택했다. 원자력·지열발전·수소·탄소 저장 등의 방식을 함께 활용한다”고 전했다. 우리 역시 신재생에너지 R&D에 노력하되 탄소 배출을 최소화할 수 있는 원전 등 다른 발전원을 병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바이든 행정부에서 바이오·헬스케어 산업이 급성장할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코로나19는 내년 말에나 가야 종식이 기대되는데 바이든은 ‘과학계의 의견을 우선시하고 검사 강화와 백신 생산·유통에 투자를 아끼지 않겠다’고 공언했다”며 “자연스레 경제 활성화와 일자리 확보로 연결되며 바이오뉴딜로 이어질 것”이라고 기대했다.
‘의대 유치’ 출사표…“의료·생명공학 기술혁신 주도”
김 총장은 바이오·생명과학 대국을 만들기 위한 의과대 설립에도 강한 의지를 보였다. 그는 “정부와 의료계의 협조를 얻어 공학과 자연과학에 의학을 결합해 의료·생명·헬스케어 등 미래 성장동력을 확충하는 데 나서겠다”며 “감염병에 대비한 공공의료 전문가를 키우고 바이오헬스 산업 육성을 위해 (매년 50명 규모의) 의사과학자를 양성하겠다”고 역설했다.
마침 포항 소재 방사광가속기·생명공학연구센터·나노융합기술원에 이어 제넥신과 한미사이언스 등 바이오 기업 연구소가 대거 들어오며 오는 26일 준공되는 바이오오픈이노베이션센터까지 융합해 시너지를 낼 수 있다는 게 그의 구상이다. 암·감염성질환·뇌·심혈관 등 6대 중증질환에 관련된 세포막단백질연구소는 2023년 완공된다. 그는 포스텍에 있는 3세대·4세대 방사광가속기와 관련해 “4세대의 경우 태양보다 100경배 밝은 빛을 갖고 현대 질병 원인의 60%가량인 세포막단백질의 분자구조를 분석한다”면서 “정세균 총리도 7일 현장을 방문해 ‘반도체·소재·화학·신약 등 다양한 분야에서 방사광가속기를 활용해 우리 미래를 이끌어갈 성과가 창출될 것’이라고 격려했다”고 말하며 활짝 웃었다. 이렇게 다양한 연구 인프라의 융합 연구개발(R&D)을 통해 의료·바이오클러스터를 구축하겠다는 게 그의 포부다.
바이오헬스 산업은 정보기술(IT)보다 10배나 큰 시장이지만 우리나라가 세계 시장에서 IT는 10%, 조선은 20%가량 차지하는 데 비해 아직 바이오헬스 분야는 1.5%에 그치는 등 미약하다는 게 그의 진단이다. 그는 “좋은 병원과 임상의사, 의과학자, 제약·헬스케어 기업, 인공지능(AI) 전문가가 어우러져야 바이오·생명과학을 꽃피울 수 있다”며 “3월 코로나19로 대구·경북이 대혼란에 빠졌을 때 지역 의료체계가 열악하다는 것을 느꼈는데 의사과학자는 물론 우수한 공공의료 인력이나 행정·정책전문가를 배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포스텍의대의 벤치마킹 모델로 2015년 설립된 미국 칼일리노이의대(Carle Illinois College of Medicine)를 꼽으며 “이 대학은 공대로 유명한 일리노이대의 어바나샴페인 메인 캠퍼스에 설치돼 인근 칼파운데이션병원과 같이 의사과학자를 키우는 데 초점을 맞춘다”고 전했다.
김 총장은 “올해 노벨 생리의학상과 화학상 수상자의 공통점은 세계 최고 수준의 의사과학자라는 것”이라며 “미국·독일·영국·일본 등은 의사과학자 양성 프로젝트를 가동한 지 10년도 넘었는데 우리는 기생충학·미생물학·병리학 등 기초의학을 하거나 이공계와 융합해 창업하려는 의사가 거의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포스텍은 AI 기술을 접목한 최적화된 스마트병원 운영도 모색할 것”이라며 “보통 50대 후반까지 하는 임상의사를 60~70대까지 일하도록 보장하면 올 수 있는 우수 인재가 적지 않다”고 복안을 밝혔다.
“AI를 제조업, 의료, 금융, 인문사회 등에 적용”…‘AI-X’ 인재 양성 박차
김 총장은 “AI는 모든 산업의 기초이자 소프트웨어 파워의 원천”이라며 “AI를 제조업·의료·금융·인문사회 등에 적용하는 이른바 ‘AI-X’ 인재 양성에 적극 나서겠다”고 힘줘 말했다. 실제 포스텍은 1학년 때 AI 입문을 필수과목으로 정하는 등 졸업 전까지 AI 심화코스 자격을 갖추도록 유도한다. 그는 “AI로 소재 분야에서 새로운 물질을 찾고 신약개발에 널리 활용한다”며 “산업재해에 대비한 지능형 로봇이나 생체신호, 운동신호 분석 등 다양하게 쓸 수 있다”고 설명했다.
포스텍은 올봄 AI대학원도 열었으나 미국 등의 대학에 비하면 멀었다는 게 그의 판단이다. 그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로부터 10년간 180억원을 지원받게 되나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는 AI와 인문학의 융합으로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스티븐 슈워츠먼 블랙스톤 회장의 기부금 3억5,000만달러(약 4,000억원)를 포함해 10억달러로 지난해 가을 ‘스티븐슈워츠먼컴퓨팅칼리지’를 열었다”며 “포스텍의 경우 연구비는 많이 들어오는데 기부금은 연 수십억원 정도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수영 KAIST 발전재단 이사장이 최대 약 1,000억원 규모로 이수영과학교육재단을 만들기로 한데 이어 김재철 동원그룹 명예회장이 AI 핵심인재 육성을 위해 조만간 KAIST에 500억원을 기부하기로 한 본지 단독보도를 거론하며 포스텍에도 기부금이 절실하다고 간절히 호소했다.
그는 “우리는 원전을 바탕으로 저렴한 전기료로 2차 산업혁명에 박차를 가했고 인터넷 보급률 세계 1위로 3차 산업혁명에서도 어느 나라보다 기반을 잘 닦았다”며 “하지만 4차 산업혁명은 잘하고 있는지 의문이 든다”고 경각심을 촉구했다.
“실수 안하는 학생 양성은 그만…교육·연구·산업화 잘하는 게 포스텍 건학이념”
김 총장은 “포스텍은 1986년 개교 당시 산학연이 유기적으로 연결된 미국 캘리포니아공대(CALTECH)를 벤치마킹해 국내 연구중심대학의 시초가 됐다”며 “황야에서 길을 만드는 사람을 키우는 것을 목표로 융합사고·창의력·소통능력을 제고하는 데 주안점을 둔다. 글쓰기 수업을 강조하고 과학과 인문사회학 융합에 노력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그는 지난해 9월 총장 취임 이후 ‘박태준 초대 이사장의 건학이념을 되새기자’며 교육 잘하고 세계 선도연구로 산업에 기여하며 국민과 인류에 보답하는 대학의 본질에 천착해왔다.
김 총장은 “학생들은 중고교에서 ‘실수하지 않기’가 최대 명제로 AI 시대에 전혀 맞지 않는 교육을 받는다. 이러니 일론 머스크 같은 진취적인 사람이 나올 수 없다”며 “대학에서 그 싹을 다시 틔우려 하니 힘이 드는데 이스라엘의 후츠파(뻔뻔함·대담함) 정신처럼 적극적으로 질문하고 도전했으면 한다”고 힘줘 말했다. 포스텍에서 과가 없는 무학과(無學科)를 1학년 때 운영한다든지 졸업 전 사회경험, 학부생의 연구참여, 국제교류 프로그램을 실시하는 것도 이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올 1월 학생 20명을 선발해 최대 정보기술(IT) 전시회인 미국의 CES를 보여주며 ‘기존의 틀을 깨라’고 주문한 바 있다.
이명박 정부 당시 교육과학기술부 정책자문위원으로서 입학사정관의 틀을 만드는데 일조한 그는 “미국 올린공대는 지원학생이 입학사정관과 같이 합숙하며 ‘달걀 떨어뜨려 깨지 않기’, ‘종이비행기 날리기’ 등의 시험을 치른다”며 “수업도 협업, 리더십, 아이디어, 비판의식을 키우기 위해 3면에 칠판을 두고 3팀이 동시토론을 한다”고 전했다. 대학 재학 중 국내 사격대회에도 출전한 경험이 있는 김 총장은 감독과 코치는 선수가 열심히 뛸 수 있는 방향과 제도를 설계하고 ‘실패해도 괜찮다’는 도전정신을 불러 일으키면 족하다고 했다.
그는 “여전히 논란은 있지만 획일적인 줄 세우기보다 소질과 잠재력을 보고 학생을 뽑는 게 맞는 방향”이라며 “포스텍은 매년 지역·남녀·소득 비율을 감안해 200개 고교에서 자기주도적 학생 320명을 선발한다. 단 자기소개서를 거짓으로 쓰면 안 된다. 과학기술을 잘하고 윤리의식이 없으면 사회에 해악을 끼치는 괴물이 된다”고 경고했다. 이어 “코로나19를 계기로 교수가 온라인 공개강좌(무크)를 보여주고 학생들이 토론하며 문제해결 능력을 키우도록 혁신이 이뤄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문제 등 한·중·일 공조해야”
한편 원자력 전문가인 김 총장은 일본 정부가 후쿠시마원전 오염수의 바다 방류를 추진하고 중국이 적극적으로 자국 동해안에 원전을 짓는 것에 대해 “한중일 간 협의가 필요하다”고 힘줘 말했다. 후쿠시마 오염수와 관련, “재처리를 하면 대부분의 방사성동위원소는 제거되고 (암을 유발할 수 있는) 삼중수소는 못 걸러내지만 희석될 수 있다”며 “하지만 일본 정부가 사회적 합의와 과학적 토론 없이 밀어 붙이려고 하는 게 문제라 이웃나라와 같이 검증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2011년 원전 폭발 이후 현장을 몇번 가 2시간식 둘러 봤는데 당시 자연에서 2개월가량 받은 방사선 양과 같았다는 얘기도 했다. 그는 이어 “서울에서 1,000km 내에 있는 원전이 현재 약 100개인데 앞으로 중국 동해안 지역에서 집중적으로 증가하며 10년 내 약 200개로 늘어날 것”이라며 “현재 세계 원전이 약 400개인데 얼마나 밀집된 것이냐. 한중일이 사전에 충분히 공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리=고광본 선임기자 /사진=성형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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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8년 부산 △1980년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학사, 1982년 석사 △1986년 미국 매디슨위스콘신대 박사 △1987년~ 포스텍 기계공학과·첨단원자력공학부 교수 △2008~2012년 교육과학기술부 정책자문위원 △2013~2016년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장 △2014~2018년 국제원자력안전위원회 한국대표위원 △2017~2018년 원자력안전위원회 비상임위원 △2014~2017년 국가과학기술자문위원 △2019년~ 포스텍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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