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은 여행보다 여유롭고, 구경보다 운치 있다. 거북이를 끌고 거리로 나와 거니는 느릿한 보행의 산책은 19세기 도시개발과 대도시의 등장으로 변화를 맞는다.
파리의 산책자는 나폴레옹 3세와 오스만 남작의 도시 대정비 사업으로 조성된 대로를 가로지르며 기념비적 건축물과 드넓은 광장을 누볐다. 도시화 과정에 등장한 ‘파사주’는 외부의 대로와 연결된 ‘실내의 대로’였고 새로운 산책로였다. 대리석 길 위를 유리지붕으로 덮고 양쪽으로 상점들이 줄지어 들어선 구조다. 발터 벤야민은 저서 ‘파사주 작품’을 통해 파사주들을 ‘상품자본의 신전’이라 부르며 새로운 물건을 보느라 사유의 시간을 놓친 채 물신주의에 빠진 파리의 산책자들을 묘사했다.
경북대 독어독문학과 교수인 저자는 신간 ‘도시와 산책자’에서 20세기 초 발터 벤야민부터 지그프리트 크라카우어, 이상, 박태원 등 산책자들의 시선으로 근현대 산책의 의미를 탐색했다.
크라카우거가 작품 ‘직장인’을 통해 묘사한 베를린의 산책자는 관료화된 체제와 소비적 도취가 공존하는 대도시 생활에 빠져 있었다. 이들은 근대적 대도시에서 상처 입은 자아와 공동체를 복구하고자 산책뿐 아니라 ‘문화적 유목’을 모색했다. 그런가 하면 파리의 재정비 사업을 그대로 도쿄에 적용한 일본에서는 긴자 거리를 한가히 거니는 ‘긴부라’ 등으로 불린 동아시아형 산책 양상이 있었다.
이는 ‘동경의 복제도시’ 격인 경성으로 이어졌다. 이상의 ‘오감도’나 ‘날개’는 화려한 도시 안에서 느끼는 지식인 산책자의 공포와 소외를 다뤘으며, 박태원의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은 근대 도시의 풍경을 경멸하는 동시에 동경하는 이중적 측면의 산책자 태도를 보여준다고 저자는 분석했다.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간 나혜석은 경성의 가부장적 공간보다 차라리 서구적 근대에서 해방의 가능성을 꿈꿨다는 점에서 여성 산책자로서 식민지 근대인의 초상을 좀 더 종합적으로 볼 단서를 제공한다.
한때 지식인과 예술가 등 소수 유복한 사람들에 국한된 여가 활동이던 산책은 오늘날 대중적으로 확대됐다. ‘산책’에 대한 의미 변화는 벗어나려는 해방적 욕구와 정신적 안식처를 구하는 현대인의 불안을 동시에 보여준다. 이는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확산 이후 모두가 직면한 해방과 안전의 갈등 양상과도 다르지 않다. 2만3,000원.
/조상인기자 ccsi@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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