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증권 시가총액 상위 상장사 10개 가운데 9개의 올해 감사 보수가 지난해보다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2020사업연도부터 주기적 지정제가 적용돼 감사인이 변경된 삼성전자(005930)·SK하이닉스(000660)·카카오(035720)는 모두 감사 보수가 20% 이상 늘어나 다른 기업들보다 높은 증가율을 기록했다. 코스닥 시가총액 상위 상장사 10개 중에서도 감사인이 변경된 에코프로비엠(247540)·케이엠더블유(032500)의 감사 보수가 지난해보다 100% 이상 늘었다. 주기적 지정제가 감사 보수 인상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현실화된 것이다. 이에 금융당국은 감사 계약 실태 점검, 기업 협회에 상담센터 개설 등의 대책을 마련했다.
15일 서울경제가 유가증권·코스닥 시총 상위 10위권에 속하는 20개사의 반기보고서를 조사한 결과 유가증권 시총 상위 10개사의 2020사업연도 평균 감사 보수는 23억9,500만원, 평균 감사 시간은 2만3,928시간(계약 기준)으로 집계됐다. 표준감사시간제의 영향으로 평균 감사 시간이 지난해보다 8.8% 늘어난 가운데 평균 감사 보수는 더 많은 16%의 증가율을 기록했다. 그 결과 시간당 평균 감사 보수는 10만72원으로 지난해의 9만3,889원보다 6.6% 늘었다.
코스닥 상장사 중 올해 감사 시간·보수를 공개하지 않은 씨젠(096530)·알테오젠(196170)을 제외한 시총 상위 10개사의 시간당 평균 감사 보수는 지난해의 8만9,539원에서 10만2,545원으로 14.5% 증가해 유가증권 시총 상위 10개사 평균 증가율을 넘어섰다. 에코프로비엠은 자유 선임으로, 케이엠더블유는 금융위 지정에 따라 감사인이 교체됐다.
감사인이 교체되지 않은 기업들도 대부분 감사 시간이 늘어나면서 감사 보수가 같이 뛰었다. 감사 시간이 줄거나 유지됐으나 보수는 늘어난 기업들도 있다. 주기적 지정제 도입으로 수임 경쟁에서 벗어난 회계법인들이 감사 보수를 인상한 결과라는 분석이 나온다. 감사인 독립성 강화를 위해 도입된 주기적 지정제는 기업이 6년간 감사인 자유 선임 후 3년간 금융당국이 지정한 감사인을 선임하는 제도다.
실제로 감사 보수 증가는 경영자문과 함께 전체 회계법인의 실적 개선을 이끌었다. 금융감독원이 집계한 국내 185개 회계법인의 2019사업연도 매출액은 3조 9,226억원으로 전년도보다 13.2% 늘어난 가운데 감사 부문 매출액은 1조2,815억원으로 15.6% 늘어 경영자문 부문의 17.4% 다음으로 높은 증가율을 기록했다.
2019년 10월 주기적 지정제 시행을 앞두고 기업 사이에서 과도한 감사 보수 인상이 이뤄질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되자 금감원은 신고센터를 개설했다. 그러나 최근까지 접수된 신고는 많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상장사의 한 관계자는 “주기적 지정제로 감사인이 변경됐거나 변경이 예정된 기업 입장에서 감사인과의 갈등이 드러나면 불이익이 클 것이라는 우려가 작용한 결과”라며 “그럼에도 신고에 나선 기업은 감사인의 불합리한 요구를 참다못해 불이익을 각오했을 것”이라고 전했다.
기업 협회인 한국상장회사협의회·코스닥협회에 상담센터 개설은 신고 활성화 및 과도한 감사 보수 인상에 대한 경고를 위해 도입된 조치로 평가된다. 기업 협회는 과도한 감사 보수로 의심되는 사례가 상담센터에 접수되면 금융당국 및 한국공인회계사회와 공유하고 금감원과 한공회가 사실관계를 확인하기로 했다. 기업 협회와의 상담이 금융당국 및 한공회 신고로 이어지게 되는 것이다.
한공회는 신고 사례에 대한 조사 결과 과다한 감사 보수로 판단되는 경우 윤리위원회 등의 심의를 거쳐 지정감사인을 징계하기로 했다. 징계를 받은 지정감사인은 징계 수위와 관계없이 교체되며 감사인 지정 가능 기업 수 감소, 감사품질감리 실시 등의 조치를 받는다.
금융당국은 감사업무 수행에 지장이 없는 범위 내에서 감사인 지정 통지 후 2주 이내인 감사계약 체결 기한을 탄력적으로 운영한다는 방침이다. 기업 또는 지정감사인이 감사계약 체결기한 연장을 신청하면 2주를 더 연장하고 개별 사유에 따라 추가 연장도 가능하게 했다. 금감원·한공회에 과도한 감사 보수 신고가 접수되면 해당 감사계약 체결 기한은 조사가 완료될 때까지 연장하기로 했다. 금융당국은 “지정감사 계약체결 과정을 면밀히 감시하고 부당한 사례가 발견될 경우 신속히 조치할 예정”이라며 “특히 한공회 조사결과 감사인 지정취소 사유 등이 발생할 경우 신속히 공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박경훈기자 socool@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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