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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조 '집단이익'-공공기관 '공익성' 정면충돌 가능성

<기재위 "노동이사제 문제있다">

근로자가 경영 간섭...1년 근무해도 자격 조건돼 논란

獨도 법규 저촉만 검토...'상임'으로 운영하는 나라 없어

현업 종사 않는 노동이사 '근로자 입장' 대변 어려워

박주민(가운데)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8월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노동이사제 공공부문 전면 도입을 위한 공공기업의 운영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안(공공기관 운영법) 발의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연합뉴스




공공기관 노동이사제가 도입됐을 때 가장 우려되는 부분은 노동조합의 권력화와 경영 개입 확대다. 노조의 역할인 견제 기능을 넘어 경영에 과도하게 관여하면 노조가 추구하는 이익 집단적 성격으로 공공기관의 공익성·공공성과 충돌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 때문에 공공기관 노동이사제 도입 관련 법안은 지난 19대와 20대 국회에서 각각 4건, 2건이 발의됐으나 논의 과정에서의 의견 충돌로 모두 폐기됐다.

그럼에도 더불어민주당은 21대 국회 들어 기존의 노동이사제 관련 법안에서 한발 더 나아가 공공기관에 ‘상임 노동이사’를 두는 법안을 발의했다. 노동이사제가 문재인 정부의 국정 과제로 여당이 법안을 단독 처리할 수 있는 의석 구조인 만큼 다시금 드라이브를 걸고 나선 것이다.



하지만 서울경제가 15일 입수한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법안 검토 보고서에는 여당이 발의한 노동이사제 법안과 관련한 수많은 우려 사항이 담겨 있다. 노동이사가 상임이사로 직접 경영에 참여하는 사례는 해외에도 거의 없을 뿐 아니라 상장 공기업의 경우 주주들의 권한을 침해할 수 있는 등 문제점이 많다는 것이다.

국회 기재위 수석전문위원은 검토 보고서에서 “노동이사를 상임이사로 운영할 경우 발생할 수 있는 현장의 혼란 및 비효율 발생 가능성에 대한 고려가 필요하다”며 크게 5가지 우려 사항을 제시했다. 우선 노동이사를 상임이사로 두는 것 자체가 과도하다고 짚었다. 보고서는 “노동이사가 일반적인 상임이사의 업무와는 달리 다른 상임이사들의 업무 수행에 대한 감시 및 견제 업무를 수행하게 되는데 해당 업무를 상임으로 운영할 정도의 직무개발이 제도 도입 단계부터 이뤄질 수 있을지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노동이사제의 롤 모델로 꼽히는 독일조차 노동이사가 상임으로 직접 경영에 참여하지는 않고 있다. 대신 필요할 때 경영진의 결정사항이 법규에 저촉되는지 여부만 검토하고 있다. 과거 공공기관 노동이사제의 국회 논의 과정에서 공공기관 이사의 경우 직무에 맞는 전문성이 필요한데 ‘근로자 대표의 추천’ 이외에 전문성을 검증할 절차가 미흡해 부적격자가 이사로 임명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던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이정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유럽의 경우 경영 이사회가 있고 근로조건과 준법을 감시하는 감독 이사회가 따로 있는데 국내는 분리돼 있지 않다”며 “근로자가 곧장 회사의 경영 판단에 참여해 기존 이사들과 같이 의결권을 행사하게 되면 의사 결정에 상당히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또 노동이사가 상임이사가 돼 현업에 종사하지 않을 경우 “해당 노동이사의 의견이 ‘근로자의 입장’을 대변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의견도 포함됐다. ‘1년 이상 재직’으로 규정돼 있는 노동이사 자격 조건도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기재위는 촉구했다. 근로자가 노동이사로 선임되면 휴직상태로 노동이사 선임 전까지 경험만을 바탕으로 직무를 수행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개정안의 재직 필요 기간이 지나치게 짧다는 것이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노동이사가 되면 노동자 대표라고는 하지만 사용자가 되는 건데 그러면 존재가 충돌하는 결과가 생긴다”며 “노동자의 적극적 참여 공간을 넓혀주는 것이 이상적이기는 하지만 방법과 권한이 한쪽으로 쏠리면 공공기관의 공공성이 무너지고 사익 추구로 흐를 수 있다”고 말했다.

상장 공기업의 경우 노동이사를 상임이사로 운영하는 게 해당 기업의 주식을 소유한 일반 주주들의 권한을 침해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됐다. 현재 상장된 공기업으로는 한국전력공사·한국가스공사·지역난방공사·강원랜드·그랜드코리아레저 등이 있다.

노동이사 연임 여부 결정 방식과 연임 기간의 적정 수준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내놨다. 개정안은 현행법과 달리 3년 단위로 연임하고 연임에 성과계약 이행실적 등을 고려하지 않고 있다. 이 경우 사실상 노동이사의 연임 여부를 평가하는 주체가 ‘임원의 임명권자’인 기관장이어서 노동이사의 독립성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 나아가 보고서에는 “현재 노동이사제를 도입해 운영 중인 우리나라의 지방자치단체 및 해외 사례를 살펴볼 때 노동이사를 상임이사로 운영하는 경우는 찾아보기 어렵다”는 내용도 담겨 있다.

여당이 이런 우려들을 무시하고 법안을 통과시킬 경우 정부가 추진 중이던 공공기관 직무급제 전환 등은 더욱 어려워질 것으로 전망된다. 또 문재인 대통령이 대선 당시 “공공 부문과 4대 재벌부터 노동이사제를 도입해 민간기업으로 확산하겠다”고 밝힌 바 있어 노동이사제가 민간까지 확대 적용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한편 현재 국회에는 노동이사제 도입과 관련해 박주민 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공공기관 운영에 관한 법률 (공운법) 개정안’과 같은 당 김경협 의원 발의안 2가지가 계류돼있다. 두 개정안 모두 공공기관 이사에 노동자 출신인 이사를 두고 경영에 참가토록 하는 것이 골자다. 김경협 의원안이 노동이사의 지위를 비상임이사로 지정하는 것이라면, 박주민 의원 안은 상임이사로 지정하는 내용이다. /세종=하정연·황정원기자 ellenaha@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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