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상수시(觀象授時). 하늘을 관찰해 백성에게 절기와 시간을 알리는 것은 임금의 가장 중요한 임무 중 하나였다. 고대왕국 뿐만 아니라 유교 국가인 조선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애민(愛民) 정신의 세종대왕은 백성들이 시간을 읽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웠다.
“모든 시설 중에서도 시각보다 중요한 것이 없는데, 밤에는 경루가 있으나 낮에는 알기 어렵다. 구리로 부어서 그릇을 만들었으니 모양이 가마솥과 같고, 지름에는 둥근 톱니를 설치하였으니…신(神)의 몸을 그렸으니 어리석은 백성을 위한 것이요, 시각(刻)과 분(分)이 해에 비쳐 밝게 보인다. 길 옆에 설치한 것은 보는 사람이 모이기 때문이다.”
세종 16년인 1434년 10월 2일자 ‘세종실록’에 처음 등장한 해시계 앙부일구(仰釜日晷)에 관한 기록이다. 하늘 우러러 볼 앙(仰)자에 가마솥 부(釜)자를 쓰고, 해그림자를 뜻하는 일구(日晷)를 붙인 ‘앙부일구’는 가마솥 모양의 오목한 부분에 드리운 해 그림자를 통해 시간을 알려주는 우리나라 최초의 해시계다. 안쪽에 시각선(수직)과 절기선(수평)을 바둑판 모양으로 새겼고, 북극을 가리키는 바늘을 꽂아 이 바늘의 그림자가 가리키는 눈금에 따라 시간과 날짜를 읽을 수 있다.
세종대왕은 과학자들로 하여금 앙부일구를 제작해 지금의 종로1가인 혜정교와 종묘 앞에 설치하게 했다. 백성들이 숫자와 글자를 읽지 못할 것을 염려해 시각은 쥐·소·호랑이·토끼 등 12지신의 동물 그림으로 표시했다. 조선 고유의 과학문화재인 앙부일구는 길 가던 사람 누구나 볼 수 있다는 점에서도 런던 빅벤보다 415년이나 앞섰다.
문화재청 산하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 미국의 한 경매에 출품된 조선 시대 해시계인 ‘앙부일구’를 지난 6월 매입해 17일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를 통해 공개했다. 문화재청과 재단 측은 지난 1월 이 유물에 대한 정보를 입수했고, 면밀한 조사와 국내 소장 유물들과의 과학적 비교분석 등을 진행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로 인해 3월부터 6월까지 경매가 연거푸 취소되는 등 우여곡절 끝에 지난 8월 마침내 국내로 들여오는 데 성공했다.
문화재청의 설명에 따르면 이번에 환수된 앙부일구는 18세기에서 19세기 초 사이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지름 24.1㎝, 높이 11.7㎝, 약 4.5㎏의 무게를 지닌 금속제 유물이다. 정확한 시간과 계절을 측정할 수 있기에 조선의 우수한 과학 수준을 보여주며, 정밀한 주조기법과 섬세한 은입사 기법, 다리의 용과 거북머리 등의 뛰어난 장식요소 등은 고도로 숙련된 장인이 만든 수준 높은 예술성도 드러낸다.
앙부일구의 정확성은 현대 시각체계와 비교했을 때도 거의 오차가 나지 않는다. 한 해를 24개로 나눈 기후 표준점인 절후(節候)나 방위, 일몰시간과 방향까지도 알 수 있는 정밀한 과학기계라는 점도 눈길을 끈다. 이러한 높은 가치에도 불구하고 조선 시대 과학 기기류는 실물 없이 기록으로만 전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이번에 환수된 앙구일부와 유사한 크기·재질의 것은 국내에 7점 뿐이다. 1654~1713년 사이에 제작돼 보물 제845호로 지정된 유물과 1899년에 제작된 보물 제845-2호 등이 있다. 국립고궁박물관 소장품인 이들 외에도 국립경주박물관,국립민속박물관, 고려대박물관과 성신여대박물관 등이 소장하고 있다. 영국 옥스퍼드 과학사박물관과 일본의 국립과학박물관·세이코박물관 등이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환수된 앙부일구는 조선의 과학자들이 서울의 위도에서 가장 정확한 시간을 읽을 수 있도록 제작한 것이라, 해시계는 고국의 하늘 아래서 비로소 정확한 시간을 알릴 수 있게 됐다는 점도 의미가 크다. 돌아온 앙부일구는 국립고궁박물관이 관리하며 18일부터 12월 20일까지 박물관 내 과학문화실에서 특별공개된다.
/조상인기자 ccsi@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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