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업계에 노동조합발(發) 한파가 불어닥치고 있다. 거의 한 달째 파업을 이어가고 있는 한국GM 노조는 회사 안팎에서 GM의 한국 철수설이 흘러나오자 이번에는 ‘대정부 투쟁’을 하겠다며 전선을 넓힐 태세다. 정부를 압박해 철수를 저울질하는 GM을 막겠다는 계산이다.
20일 업계에 따르면 김성갑 한국GM 노조위원장은 최근 열린 조합원 공청회에서 GM의 한국 철수설에 대해 “현장의 다양한 우려를 알고 있다”며 “산업은행을 비롯한 대정부 투쟁을 철저히 준비해 장기전에 대비하겠다”고 말했다. 국내외에서 철수설이 나오자 타협이 아닌 ‘대정부 투쟁’을 통한 전선 넓히기를 선택했다는 분석이다.
앞선 18일 스티브 키퍼 GM 해외사업 부문 대표(부사장)는 로이터와의 인터뷰에서 “GM은 중국을 비롯해 연간 500만대를 생산할 수 있는 아시아 내의 다른 옵션이 있다”며 철수를 경고했다. 키퍼 부사장은 “노조의 행태가 한국을 경쟁력 없는 국가로 만들고 있다”며 “수주 내로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장기적인 영향이 있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GM은 2018년 산업은행이 약 7억5,000만달러(약 8,000억원), GM이 출자전환을 포함해 약 64억달러(약 7조원)를 지원하는 경영 정상화 방안에 합의하면서 한국GM의 생산시설을 최소 10년간(2028년까지) 유지한다고 약속했다. 이 때문에 업계에서는 키퍼 부사장이 언급한 ‘장기적인 영향’을 약속한 시점이 되면 GM이 한국을 떠날 수 있도록 준비하겠다는 뜻으로 해석하고 있다.
김 위원장이 대정부 투쟁을 언급하면서 “장기전에 대비하겠다”고 말한 것 또한 이에 대응하는 맥락이라는 분석이다. 한국GM 지분 17%를 보유한 2대 주주이자 GM 본사의 정부 측 상대방 격인 산업은행을 압박해 GM이 한국을 떠나지 못하게 할 방안을 내놓게 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다만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은 최근 노조의 비상식적인 행태를 비판하는 발언을 해왔다. 이 회장은 “한국GM 노조는 회사가 이익이 나면 임금 인상을 요구하겠다고 합의해놓고 적자가 계속되는데도 임금을 올려달라고 파업을 하고 있다”며 “약속이 이행되지 않으면 고통이 더 커진다”고 지적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한국GM 노조가 대정부 투쟁을 언급한 것은 산은을 비롯한 정부에 GM 철수에 대한 대책을 내놓으라는 것”이라며 “철수설의 원인을 제공한 이들이 오히려 정부에 몽니를 부리고 있다”고 꼬집었다.
자동차 업계에서는 노조의 파업이 계속될 경우 GM이 약속한 ‘10년’이 되기 전에 한국GM이 경쟁력과 생산물량을 잃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올해 초 출시한 글로벌 신차 트레일블레이저가 미국 현지에서 인기를 얻고 있는데 노조 파업으로 인한 생산 차질(18일 기준 1만3,400대 추산)로 물량을 제때 대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트레일블레이저의 차급은 경쟁차종이 많아 차량이 제때 인도되지 못하면 신차 효과가 금세 사라진다”며 “수요가 있어야 생산을 하고 물량을 배정할 수 있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트레일블레이저는 북미 판매물량 전체를 한국GM이 생산하고 있지만 현재 소비자 인도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GM 본사는 이 같은 한국의 노사관계 상황을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한국GM 노조 내 일부 강경파들은 “그만큼 본사가 파업으로 인한 생산 차질로 아파하고 있고 이때 파업 수위를 높여 협상력을 높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GM 노조는 또 지난 20일 쟁의대책위원회를 열어 오는 23일부터 25일까지 3일간 부분파업을 이어가기로 결정했다.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업계 전체가 타격을 입었지만 노조의 ‘하투’는 ‘동투’로 연기만 됐고 그 사이 협력업체는 도산 위기를 맞고 있다”고 말했다. 중견기업연합회는 이날 호소문을 통해 “완성차 노조 파업은 공동체 삶에 대한 외면”이라며 “임금 인상 요구에 청년 일자리만 소멸되고 있다”고 짚었다.
/박한신기자 hspark@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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