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촉발한 경제위기 상황 속에서 여야가 앞 다투어 한국은행을 겨냥한 법인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코로나 위기 상황에서 한은이 기존 역할에만 머물러있지 말고 적극적으로 나서라는 것입니다. 특히 한은이 고용에 좀 더 신경을 써야 한다는 목소리가 점차 커지고 있습니다.
21일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21대 국회에서 발의된 한국은행법 일부 개정안은 모두 7건입니다. 이 가운데 한은의 정책 목표를 정의한 1조와 관련된 법안은 더불어민주당의 김경협 의원과 박광온 의원, 국민의당 류성걸 의원 등이 각각 대표 발의한 3건입니다. 한은은 한은법 1조 목적 조항을 통해 정책 목표를 공시하는데 이를 개정한다는 것은 한은의 역할 자체를 바꾼다는 의미입니다. 현재 1조 1항은 물가안정을 도모하고 1조 2항은 금융안정에 유의해야 한다고 적혀있습니다.
與野, 고용안정 어디에 넣을까 고민
현재 발의된 한은법 1조 개정안 모두 설립 목적에 고용안정을 담아야 한다고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내용은 조금씩 다릅니다. 먼저 김경협 의원이 발의한 개정안은 1조 2항의 ‘금융안정’을 ‘금융 및 고용의 안정’으로 바꿔야 한다는 것이 골자입니다. 물가안정을 최우선 목표로 그대로 두되 금융과 고용 안정 모두 챙기라는 말입니다. 김경협 의원 개정안에서는 “한은이 지나치게 물가안정만을 지향하고 있다”며 “고용안정과 같은 실물경제 지원의 목적과 역할 등이 필요하단 지적에 따라 발의하게 됐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박광온 의원이 낸 개정안은 한은의 역할을 더 확대했습니다. 한은법 1조 2항의 ‘금융안정’을 ‘금융 및 고용의 안정과 인구구조의 균형’으로 바꾼 것입니다. 또 한은법 4조는 한은의 통화신용정책은 정부의 경제정책과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적혀 있는데 ‘정부의 경제정책’을 ‘고용정책, 저출산·고령사회정책 등 정부의 경제정책’으로 구체화했습니다. 박 의원은 개정안 발의 취지에 대해 “고용시장의 불안, 청년실업의 증가, 저출산·고령화로 인한 인구구조의 변화 등으로 저성장 기조가 지속되고 있다”면서 “고용 및 인구 문제 해결 등을 위한 한은의 정책적 역할을 강화할 필요성이 있다”고 했습니다.
한은의 소관 상임위인 기획재정위원회 야당 간사인 류성걸 의원은 아예 1조 1항에 고용안정을 추가했습니다. 고용안정을 물가안정만큼 중요한 목표로 삼으라는 주문입니다. 이 법안에는 여당 간사인 고용진 의원도 발의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정책수단도 확충했습니다. 한은법 86조를 개정해 한은이 고용안정 관련 통계를 단독으로 작성하거나 통계청과 공동으로 작성할 수 있고, 이를 위해 필요한 자료와 정보를 정부기관 등에 요구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한은 내부서는 회의적 목소리
한은 설립 목적에 고용안정을 추가해야 한다는 개정안이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19대, 20대 국회에서도 고용안정을 추가해야 한다는 법안이 나왔다가 폐기됐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조금 분위기가 다릅니다. 2011년 한은 설립목적에 금융안정이 추가됐을 때와 상황이 비슷하기 때문입니다. 당시 글로벌 금융위기 극복 과정에서 중앙은행의 금융안정 기능이 강조되는 상황이었는데 이번에도 코로나19로 인한 고용위기 우려에 각국 중앙은행이 고용안정에 점차 무게를 싣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여야 간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는 것이 큽니다.
그러나 한은 안팎에서는 통화정책으로 고용안정을 달성하기 쉽지 않다는 목소리가 나옵니다. 통화정책이 아닌 재정정책을 통해 달성할 수 있는 목표라는 것입니다. 한은이 사용할 수 있는 정책수단은 사실상 기준금리 하나뿐인데 달성해야 하는 목표는 물가, 금융, 고용 등 3가지로 늘어나기 때문입니다. 한은 내부에서는 “구해야 하는 값은 3개인데 방정식 하나로 풀 수 있겠냐”라는 반응까지 나옵니다.
고용안정이 설립 목적에 추가되면 ‘물가상승률 2%’와 같은 명시적 목표를 정해야 하는데 마땅한 고용지표가 없습니다. 대표적인 고용지표인 실업률은 구직의지라는 주요 변수인 만큼 응답자 성향에 따라 결과가 달라 목표로 삼기 적절하지 않습니다. 국가 간 편차도 커서 비교 가능성도 떨어집니다.
‘꽃보직’ 금통위원 겨냥한 국회
정책 목표만으로도 한은의 계산이 복잡한데 금융통화위원 전원에 대해 국회의 인사 청문회를 거치라는 법안까지 나왔습니다. 기준금리 등을 결정하는 한은 최고의사결정기구인 금융통화위원회는 당연직 위원인 한은 총재와 부총재를 비롯해 7명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여기서 총재는 임명 과정에서 인사 청문 절차를 거치고, 부총재는 총재 추천으로 대통령이 임명합니다.
나머지 금통위원 5명은 각각 기획재정부장관, 한국은행 총재, 금융위원회 위원장,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전국은행연합회 회장 등이 각각 추천해 대통령이 임명하고 있습니다. 차관급인 금통위원은 임기 4년에 연임이 가능할 뿐 아니라 3억원에 달하는 연봉에 차량·비서·운전기사·업무추진비 등이 나와 학계·금융계·관가 등에서 모두 관심을 갖는 자리입니다. 청문회도 받지 않아 인기가 높았습니다.
국민의힘 서병수 의원이 대표 발의한 이 개정안은 “현행 한은법은 금통위원 자격에 대해 ‘금융ㆍ경제 또는 산업에 관하여 풍부한 경험이 있거나 탁월한 지식을 가진 사람’이라는 요건과 통상적인 결격사유 외에는 별다른 법적 제약이 없어 국회의 인사검증 절차 없이 대통령이 바로 임명할 경우에 정치적 중립성과 독립성이 훼손될 우려가 있다는 문제제기가 계속 이어져 왔다”라고 배경을 설명했습니다.
한은의 공식 입장은 ‘입법은 국회 몫’이라는 것입니다. 지난달 16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한은 국정감사에서 금통위원도 청문회를 받아야 한다는 이야기 나오자 이주열 총재는 “한은법 개정을 수반하는 것이기 때문에 위원들께서 합리적으로 판단해 결정하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내부에서는 긴장하는 모습이 역력합니다. 국회 청문회가 대상자 검증보다는 신상 털기나 모욕 주기에 치우쳐있다는 인식이 강하기 때문입니다. 인사 청문에 대한 부담으로 전문가들이 금통위원을 고사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야를 막론하고 한은에 대한 법안이 쏟아지는 것은 코로나19 위기 상황에서 한은이 소극적으로 대처한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0%대 물가상승률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과거 중앙은행의 역할만을 고집한다는 것입니다. 한은 역할 확대나 금통위원 청문회 관련 법안은 10년 전부터 나왔지만 이번에는 여야가 한 목소리를 내고 있는 만큼 결과는 달라질 수 있습니다. 한은도 어렵다고만 할 것이 아니라 적극적인 변화가 필요해 보입니다.
/조지원기자 jw@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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