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렉스턴’은 한국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의 대명사였다. SUV 명가 쌍용자동차의 대표 모델로, 프리미엄 SUV라는 개념을 처음 도입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렉스턴이 이번엔 위기의 쌍용차(003620)를 구할 ‘구원투수’ 역할을 맡았다. 3년 7개월 만의 ‘풀체인지급’ 페이스리프트 모델로 돌아온 ‘올 뉴 렉스턴’이다.
이번에도 ‘정통 SUV’로 승부한다. 초고장력 4중 구조 프레임 바디를 기반으로 한 탄탄한 차체를 갖췄다. 외관 디자인 또한 이를 웅변한다. 덩어리째 절삭 가공된 라디에이터 그릴이 단단한 이미지를 연출하고, 크롬 소재는 여기에 고급스러움을 더해 견고한 존재감을 드러낸다.
쌍용차가 올 뉴 렉스턴의 ‘타겟’으로 잡은 고객층은 ‘감각적인 40대 젊은 가장’. 주중엔 출퇴근을, 주말엔 가족과 레저활동을 하며 가족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이들이다. 차를 선택할 때도 안전성을 고려할 수밖에 없다. 쌍용차는 “안전과 공간, 레저를 3가지 포인트로 삼아 첨단운전자보조시스템(ADAS), 넉넉한 트렁크, 3톤 이상의 견인력을 갖췄다”며 자신 있는 모습이다.
최근 인천 영종도 일대에서 열린 올 뉴 렉스턴 시승회에서 이를 검증해 볼 기회를 가졌다. 시승 차량은 최고 트림인 4,975만원짜리 ‘더 블랙’ 모델. 결론부터 얘기하면 올 뉴 렉스턴은 ‘준수한 차’였다. 승차감, 주행 성능, 제동력, 조향 등 기본기는 딱히 흠잡을 데가 없었다. 하지만 쌍용차가 강조한 ADAS는 다소 미덥지 못한 실력을 보여준 게 흠이다. 첨단 지향 소비자보다는 기본기와 쌍용차 SUV의 묵직한 감성을 좋아하는 소비자의 시선을 끌 만 한 차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선 정숙성은 합격점을 줄만 했다. 시동을 걸었더니 디젤 엔진임에도 불구하고 떨림이나 소음이 가솔린 엔진 못지 않게 적었다. 차를 몰고 나가 앞이 뻥 뚫린 오르막 도로에서 ‘풀악셀’을 밟았다. 최고출력 202마력, 최대토크 45.0kg.m의 디젤 2.2 LET 엔진을 바탕으로 폭발적이진 않아도 여유 있게 도로를 쥐고 올라갔다. 힘을 쥐어 짜내는 느낌이 아니라 ‘이 정도는’이라는 듯 사뿐히 오르는 느낌이 올 뉴 렉스턴의 체구를 고려하면 만족스러웠다.
제동력 또한 브레이크 밀림이나 앞쏠림 없이 차를 잘 잡아줬다. 흔들림도 적었다. 연속 과속방지턱을 감속 없이 넘어봤는데, 흔들림 자체가 적고 이마저도 금세 사라져 다음 방지턱을 넘을 때도 안정적인 움직임을 보였다. 조향도 말을 잘 듣는 편이다. 전체적인 주행성능에서는 합격이었다.
다만 최근 트렌드인 ADAS는 큰 믿음을 주기에는 다소 부족했다. 물론 도움은 됐다. 고속도로 수준의 널찍한 도로에서는 곡선 주로를 잘 타고 앞차와의 간격도 잘 유지했다. 앞차와의 간격이 좁혀지자 점차 제동을 걸더니 앞차가 멈춰 서면 자신 또한 일정한 간격을 두고 완전히 섰다. 다만 좁은 도로에서는 가끔 차선을 벗어났고, 조향 제어가 풀려 차선을 넘어가려 하기도 했다. 운전자가 방심해서는 안 될 것 같았다.
중형·대형 SUV 시장은 경쟁이 치열한 곳이다. 올 뉴 렉스턴의 가격은 가장 아래 등급인 럭셔리가 3,695만원, 중간인 프레스티지가 4,175만원, 최고 등급 더 블랙은 4,975만원이다. 5,000만원에 육박하는 더 블랙은 가격 경쟁력이 떨어진다. 프레스티지 등급이 주력 트림이 될 듯한데, 4륜 구동을 포함하면 4,000만원 중반이다. 이 가격표를 단 올 뉴 렉스턴은 소비자들의 선택을 받을 수 있을까.
고객층이 다양해진 것은 고무적이다. 쌍용차는 사전계약을 받아보니 ‘5060’ 세대가 주력(63%)이었던 이전 모델과 달리 ‘4050’ 세대의 비중이 66%라고 밝혔다. 30대 비중도 20%에 달했다. 여성 비중도 15%에서 29%로 늘었다.
올 뉴 렉스턴의 마케팅 문구는 ‘믿고 간다’다. 가수 임영웅 씨와 배우 박성웅 씨를 모델로 내세웠다. 분명한 건 올 뉴 렉스턴은 적어도 기본기에서만큼은 믿을 만 한 차라는 점이다. 소비자들의 선택이 주목된다.
/박한신기자 hspark@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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