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칼(180640) 지분 확보를 위해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과 ‘3자 연합’이 현금 확보에 나섰다. 업계에서는 산업은행이 대한항공(003490)의 아시아나항공(020560) 인수를 위한 자금을 대기로 하며 경영권 분쟁이 사실상 끝났다고 보고 있지만 양측은 아직 싸움이 끝나지 않았다고 보고 실탄을 확보하려 하는 것으로 보인다.
22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사모펀드 KCGI의 종속회사인 그레이스홀딩스는 지난 12일 메리츠증권과 한진칼 550만주를 담보로 한 계약을 맺었다. KCGI는 조현아 대한항공 전 부사장, 반도건설과 함께 3자 연합을 꾸려 조 회장과 한진칼 경영권 분쟁을 벌이고 있다.
계약은 대한항공의 아시아나항공 인수 소식이 알려지던 날 맺어졌다. KCGI 측은 이번 계약 등을 통해 1,300억원을 대출받았다. KCGI 측 관계자는 “한진칼이 발행한 신주인수권(워런트)을 사놓은 것에 대비하는 측면도 있고 유상증자 등으로 회사에 돈을 넣어줄 상황이 생길까 봐 현금을 미리 마련해 둔 것”이라고 설명했다. 조현아 전 부사장도 양대 항공사 통합 발표가 있던 지난 16일 하나금융투자에서 한진칼 55만459주를 담보로 대출을 받았다. 다음날인 17일에도 SK증권에서 담보대출(6만3,459주)을 받았다. 앞서 조 전 부사장은 지난달 29∼30일 양일간 우리은행, 한국캐피탈, 상상인증권 등에서 주식담보 대출로 현금을 확보했다. 고(故) 조양호 전 한진그룹 회장의 별세로 물려받은 재산의 상속세를 내기 위한 용도일 수도 있으나 KCGI의 현금 확보와 맞물리면서 경영권 분쟁 대비용이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3자 연합은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통합을 막으려 한다. 대한항공의 아시아나항공 인수 과정에서 산은이 한진칼 지분 약 10.7%를 확보해 조 회장에 우군 역할을 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기 때문이다. 산은은 이번 딜에서 한진그룹 지배구조 최상단에 있는 한진칼에 8,000억원을 투입한다. 5,000억원은 제3자 배정 유상증자 참여로, 3,000억원은 대한항공 주식을 기초자산으로 한 교환사채(EB)를 인수하는 방식이다.
현재 3자 연합 측 지분율은 46.71%로 조 회장 측 우호 지분율(41.4%)에 앞선다. 그러나 유상증자 이후 상황은 3자 연합에 유리하게 전개되지 않을 전망이다. 양지환 대신증권 연구원은 ‘경영권 분쟁 사실상 종료’라는 보고서에서 “산은이 조 회장 측의 우호 지분이라고 가정할 경우 조 회장 측의 지분율은 47.33%(신주인수권부사채 제외)로 상승할 것으로 추정한다”며 “3자 연합은 신주인수권을 모두 주식으로 전환하더라도 지분율이 42.9%로 조 회장 측의 지분과는 격차가 4.43%포인트 난다”고 말했다.
다만 산은은 일단 ‘어느 일방에게 우호적인 의결권 행사를 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내보이고 있다. 그러나 3자 연합의 법적 계약관계와 실체가 공식적으로 확인된 바가 없다는 산은의 입장 등을 고려할 때 조 회장 측 우호 지분으로 분류하는 시각이 많다.
최근 KCGI가 산은에 배정하는 한진칼의 제3자 배정 유상증자 결의에 반발하며 신주발행금지 가처분을 법원에 신청한 배경도 여기에 있다. 법원이 가처분을 인용하면 통합 항공사를 위한 거래는 무산된다.
산은은 다만 가처분 신청에 대해 “다수의 법무법인을 통해 소송이나 인용 여부를 검토했다”며 자신감을 내비치고 있다. 3자 연합에 맞서는 조원태 회장의 움직임도 심상치 않다. 조 회장은 하나은행에서 42만5,000주를 담보로 받은 대출(100억원)을 이달 5일 연장했고 하나금융투자에서 한진칼 주식 15만주를 담보로 받은 대출(27억원)도 연장했다.
조양호 전 회장으로부터 받은 재산의 상속세 재원을 마련하려는 용도일 수 있으나 경영권 방어용, 산은에 제공할 담보 회피용 등 다양한 해석도 나오고 있다. 산은은 한진칼과 투자 합의서를 작성하면서 조 회장의 한진칼 지분을 담보로 잡고 경영 성과가 미흡하면 담보를 처분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빅딜 발표를 앞두고 두 차례 담보 대출이 이뤄진 만큼 산은이 1순위로 가져가는 담보 물량이 줄어든 셈이다.
/서종갑기자 gap@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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