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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꽂이] 건축이 일군 역사…도시의 미래 비추다

■도시 인문학

노은주·임형남 지음, 인물과사상사 펴냄

성소피아성당서 구글 사옥까지

건축물 속 철학·사연 켜켜이

해박한 인문학적 식견 풀어내

이동 막힌 시대 '책속 여행' 위안





비잔틴제국(동로마)의 유스티니아누스 황제는 한참 기울고 쪼개진 로마를 다시 일으켜 상당 부분의 영토를 회복했고, 로마의 명성을 되찾았으며, 법전을 편찬했다. 그의 또 하나의 중요한 업적은 반란으로 황폐해진 수도 콘스탄티노플을 정비하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 중 하나로 꼽히는 아야 소피아 성당을 만든 일일 것이다. 황제가 건축가로 발탁한 수학자이자 과학자 출신의 안테미우스와 이시도루스의 접근 방식은 남달랐다. 그들은 장방형 바실리카 형태의 기존 교회 형식을 과감히 버리고 반구형 돔을 택하는 파격을 택했다. 중앙 기둥도 없는 높이 50m의 거대한 돔은 “돔 하부에 뚫려 있는 무수한 창으로 빛이 들어와 중앙의 돔이 하늘에 둥실 떠 있는 듯한 착각”을 준다. 건축물은 도시의 역사를 상징하는 동시에 역사와 함께 피고 진다. 537년에 지어져 약 1,000년간 세계에서 가장 큰 기독교 성전이던 아야 소피아는 1453년 오스만 튀르크에 의해 이슬람 사원으로 사용됐다. 1934년 박물관이 됐으나 올해 7월 터키행정법원은 다시 모스크로 되돌리라고 결정했다. 역사는 현재의 통치권력 앞에 무력했지만, 나중 일은 아무도 모른다.

책과 세상 / 1면/ 비잔티움 연대기. 터키의 이스탄불에 있는 아야소피아. 유스티니아누스 황제의 명에 따라 건립된 기독교 성전이었으나 비잔티움 제국이 오스만투르크에 의해 멸망된 뒤 이슬람 사원으로 바뀌었다./ 2007-04-20 (한국일보)


건축물도 도시도 ‘자리’를 지키고 있으나 결코 멈춰있는 법이 없다. 가만히 서 있는 나무가 나이테를 만들어가듯 도시도 인간처럼 성장하며 켜켜이 사연을 만든다. 건축과 도시, 집과 골목에 관한 해박한 식견을 인문학적으로 풀어내는 건축가 노은주·임형남의 새 책 ‘도시 인문학’은 13개국 21곳을 누비며 ‘도시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에 대해 이야기한다.

터키 이스탄불에 ‘성스러운 지혜’를 기리는 뜻의 아야 소피아가 있다면, 9세기 무렵 이라크의 바그다드에 세워진 ‘지혜의 집’은 그리스부터 동양의 철학서, 각종 과학서가 아랍어로 번역·소장했던 지식의 성전이었다. 오늘날의 도서관 같은 ‘지혜의 집’을 세운 이는 아바스 왕조의 제5대 칼리파 하룬 알 라시드다. ‘천일야화’로 친숙한, 아라비아 전성기의 왕이다. 덕분에 중세 이슬람 과학은 눈부신 성과를 이뤘지만 1258년 몽골군의 침략으로 바그다드 전체가 파괴되면서 지혜의 집은 750여 년 만에 모래성처럼 사라졌다. 역사는 바퀴처럼 굴러, 바그다드는 2003년 미국의 공습으로 또다시 학문과 문화의 기반을 잃게 된다. “문명과 지혜의 발원지에서 폐허로 돌아간 바그다드”는 2011년부터 새로운 도서관 건축을 추진하고 있다. 4만5,000㎡ 규모의 도서관은 세계에서 가장 큰 단일 공간 열람실을 갖추고 280만권의 도서를 수용할 것이라고 한다. 이를 두고 저자는 “인간은 여전히 많은 곳에서 지혜의 탑을 만들고, 역사상의 ‘지혜의 집’이 결국 사람의 손에 의해 없어지고 다시 생겨나는 과정을 되새겨본다”고 적었다.

중국 속 유럽 같은 홍콩은 참으로 독특하다. 세기말적 디스토피아를 상징하는 영화 배경이 됐던 주룽자이성은 송나라 때 만들어진 요새인데, 1993년에 철거되고 공원으로 바뀌었다. 영화 ‘중경삼림’의 배경이 된 복잡하고 거대한 이미지의 충칭빌딩은 꼭 “홍콩 사람들의 시대에 대한 불안과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 담겨있는 듯” 했다. 영국 여왕에게서 ‘경’의 칭호까지 받은 건축가 노먼 포스터가 설계한 홍콩 상하이 은행은 외부로 구조와 설비를 노출시켜 ‘하이테크 건축’ 개념을 일찍이 도입한 건물인데, 현장 공정을 최소화하기 위해 부재 대부분을 영국에서 수입해 조립하는 방식으로 지었기에 나홀로 튄다. 이를 본 저자는 “영국이 홍콩의 몸 위에 새겨놓은 생생한 문신과 같다”고 했다.

인간을 자연의 집에 잠시 들른 손님으로 여기며 자연친화적 건축을 지향하는 훈데르트바서가 오스트리아 바트블루마우에 지은 호텔은 온통 곡선으로 이어지는 건물과 다양한 색채, 모양이 제각각인 창문들이 특징이다. /사진제공=인물과 사상사


건축과 도시는 예술과 함께 우리가 잃지 말아야 할 것을 되새긴다. 건축가 훈데르트바서가 오스트리아 바트블루마우에 지은 로그너 바트블루마우 호텔은 곡선으로 이어지는 건물과 2,400여 개가 넘는 다양한 크기·모양의 창문이 자연에 폭 안긴 모양이 마치 다람쥐나 두더지 집처럼 정겹다. 훈데르트바서는 손님이 함부로 남의 집에 해를 끼치지 않듯 인간도 자연을 존중하고 배려하며 살아가야 한다고 말한 건축가다. 건축가그룹 MVRDV의 일원으로 유명한 비니 마스는 제2차 세계대전 때 박살이 난 자신의 고향 스헤인덜 광장에 “역사를 기억할 수 있는 공동 공간이 필요하다”고 호소했고 7번의 제안 끝에 받아들여졌다. 그가 설계한 ‘글라스 팜’은 유리로 완전히 덮인 1,600㎡의 건물인데, 그 안에 식당·상점·웰빙센터 등 공공 편의시설이 모두 들어 있다. 겉으로는 붉은 벽돌로 지은 농장 형태지만 실은 진짜 벽돌이 아니라 사진을 디지털프린팅 해 붙인 것이다. 건축가는 스헤인덜에 남아있는 역사적인 지역 농장을 일일이 촬영한 자료를 분석해 ‘전형적인 농장’의 이미지를 되살렸다. 과거를 존중하되 미래를 생각한 것이다. 비니 마스는 실제 농장보다 1.6배 크게 ‘글라스 팜’을 제작해 “성장한 마을을 상징하기도 하고, 모든 것이 실제보다 커 보이는 아이들의 시선을 경험하게 한다는 의미”도 담았다.

네덜란드 스헤인덜의 광장에 자리잡은 ‘글라스팜’은 건축가 비니마스가 전통 농장의 형상을 디지털 세라믹 프린팅으로 재현해놓은 건물이다. 벽돌집으로 보이지만 디지털이미지를 붙인 것이며, 건물 외관은 유리로 씌웠다./사진제공=인물과사상사




네덜란드 스헤인덜의 광장에 자리잡은 ‘글라스팜’은 건축가 비니마스가 전통 농장의 형상을 디지털 세라믹 프린팅으로 재현해놓은 건물이다. 벽돌집으로 보이지만 디지털이미지를 붙인 것이며, 건물 외관은 유리로 씌운 것이다. /사진제공=인물과사상사


책 후반부에는 미래를 만들어가는 도시들을 소개했다. 일본 건축가 반 시게루는 1995년 대지진으로 집을 잃은 사람들을 위해 맥주 상자를 기초로 삼고 종이 튜브로 벽을 만들어 텐트로 지붕을 씌운 ‘종이로 만든 집’을 지어주었다. 그가 추구하는 ‘약자를 위한 건축’은 인류가 함께 고민해야 할 숙제다. 디지털 사회를 이끄는 구글의 미국 캘리포니아 새너제이 사옥은 공동체 친화적인 공간으로 유대감을 강조한다. 캘리포니아 멘로파크의 페이스북 사옥은 축구장 7개 규모로, 모든 직원이 칸막이 없이 열린 채로 서로 소통하는 ‘오픈 플랜’ 형태의 사무실이다. 두 기업의 공통점이라면 정원과 산책로, 빛과 공기 등을 중시해 디지털 세상을 살지만 인간의 근본은 자연임을 잃지 않게 한 점이다.

건축가 반 시게루는 지진 피해를 입은 뉴질랜드의 크라이스트 처치 대성당을 ‘종이성당’으로 완전히 탈바꿈시켰다. 그는 집 잃은 사람들, 약자를 위한 건축을 추구한다. /사진제공=인물과사상사


건축가 반 시게루는 지진 피해를 입은 뉴질랜드의 크라이스트 처치 대성당을 ‘종이성당’으로 완전히 탈바꿈시켰다. 그는 집 잃은 사람들, 약자를 위한 건축을 추구한다. /사진제공=인물과사상사


친숙하면서도 때로는 생경한 도시 이야기가 팬데믹으로 도시 간 이동이 자유롭지 못한 오늘날 새삼스럽게 읽힌다. 베를린, 시카고, 베니스, 바르셀로나, 파리, 두바이 등 한동안 못 갔고 당분간 갈 수 없는 도시들이 담겨 있다. 1만6,000원.
/조상인기자 ccsi@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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