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계에 부는 사업 재편의 바람이 거세다. 돈 되는 영역으로 사업을 넓혀보겠다는 목적보다는 ‘생존’을 위해서라는 게 재계 관계자들의 공통된 설명이다. 특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지금껏 경험하지 못한 선례를 여럿 남기면서 기업들이 변화의 방향과 그 속도에 느끼는 위기감은 상당하다. 비주력 사업을 접고 주력 사업과 미래 신성장 동력 사업을 집중 육성하기 위한 사업 구조조정이 본격화하는 모양새다. 재계의 한 고위 관계자는 “경영 환경 변화의 속도가 워낙 빨라 기업들의 생존경쟁도 더욱 치열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27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디스플레이는 대형 액정표시장치(LCD) 패널을 생산해 온 아산 8라인(L8)을 내년 3월 폐쇄할 방침이다. 이는 지난 수 년간 삼성디스플레이의 캐시 카우(현금 창출원) 역할을 했던 LCD 사업에서 완전히 철수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삼성디스플레이는 LCD 생산 중단과 동시에 향후 QD 디스플레이 사업을 더욱 강화한다는 계획이다. 앞서 삼성은 QD 디스플레이를 차세대 대형 디스플레이 기술로 지목하고 오는 2025년까지 총 13조 1,000억 원을 투자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LG디스플레이도 국내 TV용 LCD 생산을 중단할 예정이다. 중국 업체들의 공세가 거세지며 수익성이 떨어진 LCD 대신 고부가 제품인 유기발광다이오드(OLED)로 사업 구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다. 시기는 업황에 따라 유동적이지만 LG디스플레이의 대형 LCD 사업 철수도 기정사실화됐다.
현대차그룹 계열인 현대제철은 수익성을 고려해 지난 10월 순천 공장 컬러 강판 라인 가동을 중단했다. 현대제철은 8월부터 사업 지속성 여부를 놓고 내부 논의를 벌여오다가 최종 중단 결정을 내렸다. 기존 라인 설비는 매각할 방침이다. 건축자재와 가전제품 등에 사용되는 컬러 강판은 대표적인 비수익 사업이자 연간 100억 원가량의 적자를 내는 고민거리였다. 현대제철은 비주력 컬러 강판 사업을 접고 미래 자동차 경량화 소재 등 신성장 사업에 역량을 집중할 계획이다.
SK종합화학은 48년간 이어져 온 울산 나프타분해공정(NCC) 시설 가동을 올해 말 중단한다. 중국 중심으로 석유화학 업체 증설 러시가 이뤄지면서 수익성이 악화했기 때문이다.
전통 제조업뿐 아니라 유통·식품 업계 변화의 속도도 빠르다. 업계 1위인 이마트는 올해 들어 수익성이 떨어지는 전문점 사업 철수를 더욱 가속화하고 있다. 올 상반기에 만물상 콘셉트의 ‘삐에로쑈핑’과 헬스앤뷰티(H&B) 스토어 ‘부츠’, 남성 패션 편집 숍 ‘쇼앤텔’ 사업을 철수한 데 이어 최근에는 가정간편식(HMR) 마켓 ‘PK피코크’와 라이프 스타일 전문점 ‘메종시티아’ 사업도 정리하고 있다. 이마트에 따르면 올 상반기에 정리한 전문점 수는 33개로 하반기 들어서도 5개 이상의 전문점을 철수했다. 이마트 관계자는 “유통 환경 변화에 따라 선택과 집중으로 수익성을 제고하기 위해 부진한 전문점 사업을 구조 조정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식품 업계도 소위 ‘집밥’으로 트렌드가 옮겨가면서 외식 사업의 몸집을 줄이고 있다. CJ그룹은 CJ푸드빌의 ‘뚜레쥬르’를 매물로 내놓으며 외식 사업 부문에서 힘을 빼고 있다. CJ푸드빌은 이미 커피 프랜차이즈인 투썸플레이스를 매각한 바 있다. CJ는 장기적으로 CJ제일제당의 HMR과 물류·배달의 CJ대한통운 위주로 그룹을 개편한다는 방침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아모레퍼시픽은 수익성이 악화한 중국 오프라인 매장 철수에 속도를 높여 올해에만 100개 매장을 철수하기로 했고 희망퇴직을 받는 등 인력 구조조정도 진행하고 있다. 이랜드그룹의 경우 여성 사업부를 매각하는 대신 성장 가능성이 높은 SPA 브랜드 위주로 패션 사업 부문을 개편하기로 했다./한재영·박형윤·전희윤기자 jyha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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