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 회사에 다니는 직장인 A씨는 4륜구동 자동차를 메고 불암산 등산을 한다. 자동차는 무선조종(RC)카다. 올해 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에 갑갑함을 느낀 A씨는 3㎏ 남짓한 RC카가 바위투성이 산을 힘차게 올라가는 모습을 보면서 쾌감을 느낀다.
가구 회사에서 인사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B씨는 퇴근 후 집에 도착하자마자 방독 마스크를 쓴다. 건담 장갑차 도색 때문이다. 시너와 각종 도료 등 화학물질로 장갑차 프라모델(플라스틱 모델의 줄임말)을 도색하다 보니 방 안에서는 더 비싼 마스크를 착용한다. 작품은 처음에는 엉성했지만 이제는 못마땅해하던 아내도 진짜 같다고 좋아한다.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이른바 키덜트(kidult·아이 같은 어른) 인구도 늘어나고 있다. 집 안에서 고난도 완구를 조립 및 도색하거나 한적한 산야에서 RC카를 조종하는 등 코로나19 감염 위험을 피하며 여가를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콘텐츠진흥원에 따르면 국내 키덜트 시장 규모는 지난 2014년 5,000억 원대에서 지난해 1조 원을 훌쩍 넘어선 것으로 추정된다. 롯데마트의 완구 매출 중 키덜트 완구 부문은 2017년부터 지난해까지 연평균 13%가량 상승했다.
코로나19가 기승을 부리던 올해는 성장세가 더 가파르다. 롯데백화점에 따르면 부산 본점 레고 매장의 올 1~7월 누적 판매는 지난해 대비 30% 이상 증가했다. 완구 조립 브랜드 건담 베이스와 조립 완구 브랜드 타미야 역시 7~10% 이상 매출이 올랐다.
키덜트 시장이 꿈틀거리자 주요 유통 기업과 e커머스들은 이들을 위한 마케팅을 강화하고 있다. 국내 최대 e커머스 쿠팡은 올 4월 성인들의 취미 생활을 위한 키덜트 전용 숍을 열었다.
이곳에서는 피겨, 드론, RC카, 미니 게임기, 게이밍 키보드 등을 모아 판다. 롯데마트, 애경AK&홍대 등에서도 올해 초 키덜트 전용 매장이 문을 여는 등 커져가는 키덜트 시장에 대응하고 있다. 유통 업계의 한 관계자는 “집에서 골똘히 완구를 조립하거나 한적한 야외에서 완구를 가지고 노는 것은 코로나19 시대에 최적화된 여가”라며 “취업·결혼 등이 점점 늦어지면서 ‘사회적 나이’가 줄어드는 것도 키덜트 시장 성장에 한몫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박호현기자 greenlight@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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