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이후 글로벌 주식시장이 새로운 시대를 맞이했다. 코스피도 11월 한 달 동안만 14.3% 올랐다. 월간 상승률로는 2000년 이후 역대 7위다. 12월 초 현재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 수가 하루 평균 500명에서 700명씩 늘어나고 있다. 그럼에도 4월 이후 역대급 부양 정책에 따른 ‘유동성 랠리’가 조정을 거쳐 11월부터 ‘백신 랠리’로 이어진 것이다.
백신 보급과 시점에 대해서는 신중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오는 2021년이 2020년보다 더 나빠지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는 합리적이다. 기저 효과로 내년 코스피는 대망의 3,000포인트까지 오를 것으로 기대하는 시각도 있다. 차이가 있다면 하반기가 상반기보다 더 좋을 것인지, 11월에 좋았던 가치 스타일의 경기 민감 산업들이 상반기에도 계속 상승세를 주도할지 정도다.
과연 백신은 만병통치약인가. 그렇지는 않다. 하지만 주식시장에는 ‘게임 체인저’라고 할 만하다. 주식 투자 위험은 예상외로 경기나 기업 이익이 나빠져 주가가 하락하는 것이다. 그런데 백신은 경기나 기업 이익이 나빠질 위험을 낮춰준다.
당초 백신 소식이 나오자 여행·항공 등 코로나19 피해주들이 올랐다. 백신 출시 소식이 나오면 더 오를 것이다. 하지만 내년 초까지는 코로나19 피해주보다 재고 사이클과 관련이 높은 제조 업체들이 더 나은 대안이 될 것으로 예상한다.
제조업 지표의 고공 행진은 주춤하다. 최근 발표된 11월 미국 공급관리협회(ISM) 제조업지수(57.5)는 2년 이내 최고치인 59.3에서 조금 하락했다. 그래도 재고가 낮다. 동 ISM 지수를 만들기 위한 설문에 응답한 제조 업체에 따르면 고객 재고가 너무 낮다고 응답한 비율은 10년 만에 가장 높다. 즉 수요 업체들이 코로나19에 대한 부담 때문에 재고를 쌓지 않고 있다는 의미다. 특별히 경제 상황이 더 나쁘지 않으면 생산 활동은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2021년 꽤 강력한 재고 축적 사이클이 진행될 가능성을 시사한다.
한국 출하에서 재고를 뺀 수치도 최근 2개월째 플러스다. 재고보다 출하가 많다는 의미다. 재고를 쌓아둘 수 있는 테크·소재 산업에 대한 관심이 유효하다. 외국인 투자가들도 마찬가지다. 11월 거래소 시장에서 외국인 투자가들의 순매수를 시가총액을 감안해 보면 화학·전기전자·기계 업종에 대한 매수 강도가 강했다.
하지만 그저 평온한 상승장은 없다. 이익 측면에서 지금과 비교할 만한 국면은 2016년 말에서 2017년사이다. 테크 및 소재, 산업재 주가가 모두 좋아 2017년 5월에는 사상 최고치인 2,200포인트를 넘어섰다. 굴곡도 있었다. 2017년에도 월간 단위로 보면 8~9월과 11~12월 사이 조정 국면이 있었다. 12개월 가운데 8개월 동안 올랐지만 4개월, 즉 3분의 1 기간은 가슴 졸이는 기간이었다. 업종이나 개별 기업들의 주가는 더 그랬다. 연속적으로 오르기보다 급등 후 상당 기간 쉬는 국면이 종종 나타난다. 국내 주식시장은 사상 최고치에서 다시 시작(reset)하고 있다. 강세장일수록 용기와 함께 조급하지 않은 뚝심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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