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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룰' 한발 물러났다지만…"투기자본에 무장해제 불가피"

[巨與 입법폭주-‘규제 3법’ 통과]

■상법 개정안

'개별 3%'로 규정만 완화했을뿐

의결권 10% 확대 등 요구 묵살

경영권 방어수단 전혀 반영 안돼

재계 "토론회는 왜 했나" 비판

21대 정기국회 회기 종료일을 맞은 9일 본회의에서 상법 개정안이 통과되고 있다.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이 주요 입법 과제로 밀어붙이고 있는 ‘기업 규제 3법’ 중 상법 개정안이 9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자 경제계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상법 개정안의 핵심인 이른바 ‘3% 룰’과 관련해 일부 기준을 완화하기는 했지만 그동안 재계가 줄곧 요구해온 대안들이 하나도 반영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민주당이 상법 개정과 관련해 기업들의 입장을 폭넓게 듣겠다고 해놓고는 사실상 경영계의 의견을 모조리 묵살했다는 비난이 터져 나온다.

당초 정부가 제시한 상법 개정안은 상장회사가 감사위원 중 최소 1명을 이사와 별도로 선출하도록 하고, 최대 주주와 특수 관계인의 보유 주식을 모두 합쳐 의결권을 3%까지 제한하도록 했다. 하지만 개정안 논의 과정에서 사외 이사인 감사위원 선출에 한해 지분을 합산하지 않고 개별적으로 3%씩 의결권을 인정하도록 완화했다.

언뜻 정부 원안에서 한발 물러난 것처럼 보이지만 경제계는 “사실상 재계 의견은 전혀 수용되지 않았다”며 허탈감을 드러냈다.

민주당은 기업 규제 3법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재계의 목소리를 듣겠다며 지난 10월부터 대한상공회의소와의 정책 간담회를 비롯해 경제 단체 및 4대 기업 싱크탱크와의 간담회, 공정 경제 입법 현안 공개 토론회 등을 개최해왔다. 이들 자리에서 경제 단체들은 감사위원 분리 선출에 대한 반대 입장을 강력히 표명하며 각종 대안을 제시했지만 결국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에 ‘보여주기식 토론에 불과했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당시 경제 단체들이 핵심적으로 요구한 내용은 감사위원 분리 선임을 재고해달라는 것이었다. 이는 주식 수에 따라 주주권을 배분한다는 주식회사 제도의 근간을 훼손하는 과잉 입법으로 외국계 자본과 경쟁 세력이 이사회에 진입해 기업의 기밀을 탈취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당은 모든 감사위원에 대한 ‘합산 3%’ 규정만 완화했을 뿐 분리 선임에 대한 내용은 그대로 유지했다.



재계는 3%로 제한한 최대 주주와 특수 관계인 의결권을 10%로 늘려주는 방안도 대안으로 제시했다. 또 감사위원 분리 선출 제도를 꼭 도입해야 한다면 투기 펀드 등이 주주 제안을 통해 이사회에 진출하려고 시도할 경우만이라도 3% 룰을 풀어줄 것도 요구했으나 모두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경영계 일부에서는 시민 단체가 “우리보다 더 강력하게 대주주 의결권을 제한하는 나라도 있다”며 제시한 ‘이스라엘 사례’에 대해서도 우호적인 입장을 보였던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달 진행된 입법 현안 토론회에서는 이스라엘이 사외 이사 선임 때 대주주 의결권을 사실상 0%로 제한하고 있다는 내용이 거론됐다. 이후 일부 경제 단체는 이스라엘도 대주주가 참여한 다수결에 의해 사외 이사를 선임하며 소수 주주의 과반 동의도 얻으라는 추가 요건이 있다는 점을 들어 이 같은 사례를 한국에 적용할 수 있다는 취지로 국회에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상법 개정안에는 상장사에 대한 소수 주주권 행사 때 ‘6개월 의무 보유’ 조건을 피할 수 있는 조항도 포함된 것으로 드러났다. 개정안은 상장사 주주가 지분 1~3%만 확보하면 보유 기간에 상관없이 주주 제안 등 소수 주주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에 따라 주식을 사들이고 단 며칠 만에도 경영권 공격이 가능해지며 기업 입장에서는 이에 대응할 최소한의 시간마저 빼앗겼다는 지적이 나온다.

여당이 끝내 기업들의 목소리를 외면한 상법 개정안을 통과시켜 투기 자본의 공격에 노출된 기업들은 허탈함을 넘어 분노를 느끼는 분위기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이날 긴급 호소문을 내고 “기업 규제 3법이 통과되면 투자와 일자리에 매진해야 할 우리 기업들을 위축시키고 해외 투기 자본의 공격에 노출시키는 부작용을 초래할 것”이라며 “보완 대책 마련을 위해 각각의 법률 시행 시기를 1년씩 연장해줄 것을 요청한다”고 밝혔다.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은 전날 긴급 기자회견에서 “공청회는 왜 한 것이냐 의문이 든다”며 “할 수 있는 게 없어 무력감을 느낀다”고 밝혔다.

/전희윤기자 heeyou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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