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메이드' 약탈극 옵티머스 사건... 금융시스템 신뢰 다시 세워야 |
슬픈 현실은 따로 있다. 우리는 사기행각을 일삼은 일당의 일탈에만 주목하고 있다. 검찰과 온 국민의 눈길이 그리 쏠린 사이, 이들을 막겠다며 첩첩이 세워놨던 시스템이 무너져내렸다는 데 주목한 이는 없었다. 자본시장의 기본법인 자본시장법(정확히는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이 제정된 2007년부터 해도 꼬박 13년이 지났다. 앞선 간접투자자산운용업법 제정 시기인 2003년부터 하면 17년이다. 그런 것치곤 옵티머스 사건은 너무나도 노골적인 사기행각이었다.
시스템을 지키는 최후의 보루, 수사당국의 사정도 다르지 않다. 어떤 이유에선지 ‘법률적’ 가해자, 그중에서도 주범은 해가 저물어가도록 못 찾고 있다.(가해자가 누군지 모른다는 말이 아니다. 더구나 저마다 자신이 피해자라니! 귀신이 곡할 노릇이다.) 금융시장과 검찰, 그리고 여의도 정가를 건너다니는 말만 넘쳐난다. 정권 실세인 OOO이 뒷배라니, 검찰이 누구를 겨냥하고 있다느니, 검찰도 금융당국도 되레 한 통 속이라느니. 권력형 비리인가 금융사기인가, 혼란스럽다. 그렇게 피해자의 돈을 찾을 길도, 소 잃고 외양간 고칠 일도 점점 멀어져 가고 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어떻게 몇몇이 우리 금융시스템을 무너뜨릴 수 있었을까. 혹자는 사모를 공모처럼 일반인이 투자할 수 있게 한 규제 완화(사모재간접 공모펀드 허용)가 원인이었다는 지적을 내놨다.(라임과 옵티머스에 당한 피해자들이 은행과 증권사 창구에서 이 사모펀드를 ‘구매’할 수 있었던 것도 이 때문. 이 와중에 정부가 뉴딜펀드를 사모재간접 공모펀드로 만든 것은 안 비밀.) 감독 당국이 감시할 수 있는 제도가 여전히 부족하다는 지적도 있다. 금융위원회사 투자 최소금액을 5억원에서 1억원으로 줄인 게 뼈아팠다. ‘여의도 저승사자’ 역할을 해야 할 남부지방검찰청 등 수사기관이 제 역할을 못 하고 있다는 말도 나온다. 일각에서는 헤지펀드에서 내부 견제장치인 준법감시가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꼬집기도 한다.
헌데 정작 이런 질문이 나와야 할 곳인 금융위원회는 말이 없다.(행정고시 재경직 합격자 중에서도 ‘초엘리트’만 가는 금융위가 답을 설마 모를까.) 물론 땜질식 처방을 내놓긴 했다. 헌데 은행에서 사모펀드 못 팔게 하는 게 근본적인 문제 해결법이라고 할 수 있을까. 글쎄올시다~.
다행히 김병욱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9월 구조적 문제를 개선하기 위한 자본시장법 개정안을 내놓긴 했다. 골자는 크게 둘. 하나는 연기금 등 기관투자자만 투자할 수 있는 전용 사모펀드를 만들되 규제를 없애 모험자본의 역할을 강화하는 것. 기관투자자의 감시·견제가 있는 만큼 금융사고가 날 가능성은 극히 줄어 든다.(실제로 기관투자자가 출자한 사모펀드가 사고를 낸 사례는 아직 없다.) 다른 하나는 그 외 사모펀드를 강력한 규제체계 안으로 밀어 넣어 일반 투자자를 더 엄격히 보호하겠다는 것.(2018년 금융위에서 만들었던 자본시장법 개정안과 내용은 대동소이하다. 20대 국회에선 자동 폐기됐던 법안이 이번 21대에서 통과할지 지켜볼 일이다.)
수사는 수사고, 제도 개선은 제도 개선이다. 권력형 비리든 금융 사기든 금융당국이 해야 할 일은 정해져 있다. 늦었지만 해가 넘어가는 지금 금융당국에서 이런 문제점들을 되짚어 보길 바란다. 그리고 새해엔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밑그림도 그리고, 그 밑그림을 실현하기 위한 제도 개선안도 내놓길 기대한다.
산은 앞장서 기존주주 권리 침해... 한국타이어도 헐값에 알짜 자회사 '꿀꺽' |
헌데 결정적인 ‘하자’가 있다. 통합의 주체이자 공적자금이 들어가는 한진칼이 경영권 분쟁 중이었다는 점. 정책금융기관인 산은이 택한 길은 기존 주주에겐 대단히 폭력적인 방법이었다. 공공의 이익을 위해선 사적 이익을 추구하는 이의 재산권 따위는 침해해도 된다는 것. 결국 법원도 산은과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의 손을 들어줬다. 아시아나항공을 두고 귀태라 칭한 정무위원은 “적어도 기존 주주인 KCGI와 대화를 한 뒤 합병에 나섰어야 했다”며 “아직까지 한국사회에서 자본시장에 대한 이해가 이 정도밖에 안 된다는 게 안타까운 현실”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법원도 ‘위기’나 ‘공멸’이라는 무시무시한 단어에 자신들이 지켜야 할 상법의 기존주주의 신주인수권 보호를 뒷전으로 미뤄버렸다. 남아 있는 불씨가 언제 다시 타오를지 모를 일이다.
피해를 본 이는 또 있다. 대한항공의 기존 주주는 무슨 죄인가. 채권단인 산은이 채무조정을 하지 않고 파는 ‘부실’ 기업 아시아나항공 인수에 들이는 돈은 1조5,000억원. 대한항공은 이 돈을 2조5,000억원의 유상증자를 통해 마련할 게획이다. 한진칼을 통해 산은이 내는 돈은 7,300억원 가량에 불과하다.
그것뿐이랴. 일반주주의 사유재산권을 등한시하긴 재벌도 마찬가지다.(하긴 재벌이 언제는 안 그랬던가.) 듣지도 보지도 못했던 창발적 합병 ‘초식(招式·무협소설에서 공격이나 방어를 하는 기본기술을 연결한 연속 동작을 말한다)’도 나왔다. 한국테크놀로지그룹(옛 한국타이어)이 자회사인 한국아트라스비엑스를 ‘소규모합병(주주총회를 열지 않고 이사회로 갈음할 수 있다)’하겠다는 게 바로 그것. 자동차 납축전지를 만드는 아트라스비엑스는 매년 600억원 가량의 영업이익을 내는 ‘알짜’ 계열회사다. 2016년 대주주 일가가 공개매입을 통해 자진 상장폐지하려 했지만 지분 95%를 확보하지 못해 무산됐다. 여기에 쓴 ‘회사돈’만 2,470억 원. 자사주 규모는 전체의 58.43%(한국테크노롤지그룹 31.13%, 소액주주 10.44%)에 달한다. (한 주도 소각하지 않았으니 주주 가치 제고 노력은 ‘일(1)’도 하지 않은 셈. 되레 배당성향을 12%에서 3%로 뚝 떨어뜨리면서 주가를 내리눌렀다.)
한국테크놀로지 오너 일가가 펼친 초식은 여러모로 놀랍다. 흐름은 이렇다. ①회사가 벌어들인 돈(으로 쓰고 주주의 돈이라고 읽는다)으로 자사주를 산다. ②자진상폐에 실패했지만 배당을 줄여 주가가 오르는 것(이라고 쓰고 일반주주에게 이익이 돌아가는 것을)을 틀어막는다. ③상폐 대신 모회사가 흡수합병하기로 한다. 주가가 낮으니 합병비율도 낮다. ④자사주를 뺀 41.47%의 주식에만 모회사 신주를 배정한다. ⑤흡수합병 후에도 오너 일가의 모회사 지배력(72.43%)에 큰 변동이 없다.(자사주에 신주를 배정할 경우 오너 일가의 지분율은 56.03%로 줄어든다. 다만 자사주인 만큼 의결권엔 큰 변동은 없다.) ⑥시가총액 1조4,000억 원인 모기업이 5,000억 원 덩치의 자회사를 별다른 비용 없이 헐값에 꿀꺽한다. 물론 그 열매는 모회사의 지분 72.42%를 쥐게 될 오너 일가에게 돌아간다.
소액주주의 반발이 얼마나 먹힐지는 미지수다. 지분율이 20% 넘는 주주가 없는 탓에 이사회 통과 이후 금융당국의 승인만 받으면 된다. 승인이 코앞이다.
일반 투자자·주주에 친화적 자본시장 만들어야 |
코리아 디스카운트(Korea Discount)라는 말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 현급자동출납기(ATM)라는 오명도 마찬가지. 일반주주가 디딜 땅이 없다면, 그렇게 권력을 쥔 쪽으로만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면 자본시장엔 미래는 없다. 양질의 장기자금이 한국 주식시장으로 찾아올 일도 없기 때문이다. 돈 놓고 돈 먹기 하는 ‘핫머니’만 판칠 수밖에.
당장 새해 뭔가 바뀌길 기대하는 것은 아니다. 무릇 진보란 앞서는 우리의 마음보다 훨씬 느리게 다가오는 법. 다만 우리 사회를 바꾸는 의사결정자들에게만 과제로 던져둘 일은 아니다. 일반 투자자나 주주도 피동적 위치에만 머물러선 안 된다. 그만큼 여러분의 공부가 필요하단 얘기. 그래야 한 발자국씩이라도 앞으로 나아가는 속도가 빨라진다. 올 한해 친절한IB씨가 여러분의 공부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됐길 바라며, 2021년 신축년 새해를 기약한다.
/김상훈기자 ksh25th@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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