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억원…1억7,000만원…. 최고급 수입 자동차나 원룸 보증금으로 붙여 둔 가격이 아니다. 집집마다 갖고 있는 텔레비전(TV) 한 대의 값이다. 2020년 말, 문자 그대로 ‘억 소리 나는’ TV가 미래의 거실을 꿰차기 위한 여정에 돌입했다. 삼성과 LG, 글로벌 가전 시장을 선도하고 있는 두 회사는 평범한 이들의 상상을 뛰어넘는 초고가 TV를 통해 보유하고 있는 첨단 기술력을 뽐내는 동시에, 후발주자와의 완전한 선 긋기에 나섰다.
16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한 대에 1억원을 부르며 TV 전시장을 미래기술 대결의 무대로 삼은 곳은 LG전자다. 지난 10월말 소규모로 진행된 초청행사에서 LG전자는 눈 앞에 있던 화면이 얇은 한 장의 종이처럼 돌돌 말려 통 속으로 쏙 사라지는 롤러블 TV, ‘LG 시그니처 올레드 R’을 세계 최초로 양산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 제품이 오랜 시간 굳어진 TV 형태에 대한 고정관념을 깼다는 것이 마케팅 포인트로 내세워졌다. ‘단 1억원에 미래의 TV를 가질 수 있다’는 접근이었다. 여기에는 가격 허들이 높은 1억원을 제시해 접거나 말 수 있는 유기발광다이오드(OLED)의 특성을 십분 살린 자사의 기술력을 뽐내려는 의도도 있었다. 가전업계 관계자는 “새로운 기기에 관심이 높은 고소득층을 겨냥한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1억원짜리 TV는 부담스럽다는 평”이라며 “결국 시그니처 올레드 R의 출고가는 LG전자가 경쟁사보다 OLED 분야에서 기술적 우위를 지녔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한 상징적 차원의 결정”이라고 분석했다.
한 달여 후인 지난 9일 맞대결에 나선 삼성전자는 한술 더 떠 1억7,000만원의 ‘마이크로 LED TV 110형’을 출시했다. 출시 직후 진행된 언론대상 웨비나에서도 “1억이 훌쩍 넘는 가격인데 누가 구매하는가?”라는 질문이 나왔을 정도로 많은 이들의 예상을 뛰어넘는 초고가였다. 이에 추종석 삼성전자 부사장은 “좋은 제품을 사고자 하는 고객은 반드시 있다”며 제품 판매에 자신감을 내비치기도 했다.
삼성전자도 앞서 LG와 마찬가지로 기술력을 부각하고 시장서 존재감을 드러내기 위해 초고가 전략을 택한 것으로 알려졌다. LG가 OLED였다면 삼성은 초미세 공정도 아우르는 독보적 시스템 반도체가 마케팅 포인트다. 실제로 영업 현장에서는 마이크로 LED TV에 탑재된 마이크로 AI 프로세서가 화질 제어기술과 결합돼 번인 현상없이 10만 시간 이상 콘텐츠를 즐길 수 있다는 점을 내세우고 있다. 빛 손실이 없는 완벽한 명암비를 제공할 뿐만 아니라 스크린의 크기와 형태, 설치공간에 제약이 없다는 점도 장점이다. 일각에서는 삼성전자가 그간 액정표시장치(LCD) TV를 위주로 판매했지만 이 제품을 계기로 스스로 빛과 색을 내는 자발광 TV를 전면에 내걸며 기존 자발광 TV의 주력이었던 OLED TV와 차별화 해야 한다는 이유에서 더 비싼 가격을 내세웠다고 보고 있다.
이들 제품 모두 관건은 보급 여부다.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몰라도 마이크로 LED TV나 롤러블 TV 모두 어느 순간 대중이 접할 수 있는 가격대로 내려올 것이라는 것이 업계의 판단이다. 지난 2001년 57인치 LCD TV는 1,680만원이었지만 지금은 20만원대까지 낮아졌다./이수민기자 noenemy@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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