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민주화운동 당시 시민 강제 진압 작전에 투입됐다가 숨진 계엄군들이 ‘전사자’에서 ‘순직자’로 변경됐다.
국방부는 지난 18일 제24차 중앙전공사상심사위원회를 개최해 ‘5·18 계엄군 전사자’ 22명의 사망 구분을 ‘순직’으로 변경했다고 22일 밝혔다.
이들 사망자는 1972년 6월 제정된 ‘육군 규정 1-31’(전사망자 및 행방불명자 처리)에 따라 전사자로 인정됐다. 이 규정은 ‘전사’를 “무장 폭동 및 반란 진압을 위한 행위로 사망하였거나 그 행위로 입은 상이로 사망한 자”로 규정했다.
그러나 1997년 대법원이 “5·18 광주시민들의 시위는 국헌을 문란하게 하는 내란 행위가 아니라 헌정 질서를 수호하기 위한 정당한 행위”라고 판결해 당시 계엄군 사망자에 대한 전사자 분류는 해당 요건을 충족하지 못하게 됐다.
이에 국방부는 국회와 관련 단체 등의 요구를 고려해 이번 위원회에서 군인사법 제54조의2를 근거로 사망 구분 변경을 재심사했다.
조진훈 국방부 전공사상심사지원단장(대령)은 “재심사 과정에서 객관성을 확보하고자 국가기관에서 생산한 문서 13종을 토대로 개별 사망 경위를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개별 사망 경위는 매·화장 보고서와 사망확인조서, 전사망 확인증 발행대장 등을 비롯해 당시 계엄군의 전투상보, 계엄사와 합참 상황일지, 보안사 속보철, 국방부 과거사 진상규명위원회의 각종 조사 및 현황자료, 군 검찰단의 조사 결과를 비교 분석해 도출했다.
그 결과 최초 사망 경위가 ‘폭도 총에 맞았다’는 18명은 시위대의 차량과 장갑차에 의한 사망(2명), 시위대와 교전 중 사망(5명), 출근 중 원인 불명(상) 총기 사망(1명), 상호 오인사격 사망(10명) 등으로 확인됐다.
관련기사
오인 사격은 계엄군이 책임 지역 인계 후 광주비행장으로 철수하던 중 매복 중이던 보병학교 교도대의 오인사격으로 확인됐다.
또 ‘폭도 칼에 찔려 사망했다’는 1명은 실종됐다가 시체로 발견된 원인불명 사망으로 나타났다. 상호 오인사격 사망(3명)은 매복 중이던 기갑학교 교도대의 오인사격인 것으로 나타났으며, 이번 확인 과정에서 최초 사망 경위와 변동이 없었다.
이번 재심사로 22명의 최초 사망 경위에 적시된 ‘폭도’라는 용어도 삭제됐다.
국방부는 “5·18 계엄군 사망자가 대부분 의무복무 중이었던 하위 계급의 군인이었다”며 “엄격한 상명하복의 상황 속에서 상부의 명령에 따라 임무 수행 중 사망했음을 인정해 국가유공자 요건에 해당하는 ‘순직-Ⅱ형’으로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군인사법은 ‘순직-Ⅱ형’을 “국가의 수호·안전보장 또는 국민의 생명·재산 보호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직무수행이나 교육훈련 중 사망한 사람”으로 규정하고 있다.
22명의 계급은 소령(2명), 중위(1명), 상사(2명), 중사(4명), 병장(6명), 상병(5명), 일병(2명) 등이다.
전사자가 순직으로 변경돼도 국가유공자로서의 예우는 바뀌지 않는다. 국립서울현충원은 안장된 22명의 묘비에서 ‘전사’ 문구를 ‘순직’으로 바꿀 예정이다.
/김정욱기자 mykj@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