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검색
팝업창 닫기
이메일보내기

[로터리]똑게 연구자

박현민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원장

멍부(멍청하고 부지런한)보다 똑게(똑똑하고 게으른) 많이 나와야

박현민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원장




두 명의 산악인이 있다. 두 사람에게 똑같이 10일 안에 어느 산의 정상을 정복하는 과제를 줬다. A는 두 발로 열심히 쉬지 않고 올라 10일 만에 정상을 정복했다. B는 9일 동안 어디 있는지 보이지 않다가 산을 빨리 오르는 도구를 발명했고 남은 하루 만에 정상에 올랐다. 과연 누가 더 일을 잘하는 사람일까. 단순하게 보면 두 사람 모두 10일 안에 정상을 정복했으니 같은 결과를 얻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B는 다음 사람이 같은 도구와 방법을 사용할 때 산을 오르는 시간을 단축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줬다. 세상에 새로운 방법과 기준을 제시한 것이다. 단편적으로 보이는 결과는 같지만 파급 효과는 B가 훨씬 크다. A는 소위 멍청하고 부지런하게(멍부) 일하는 사람, B는 똑똑하고 게으르게(똑게) 일하는 사람이다.

밤늦게까지 연구에 몰두하는 연구자, 불이 꺼지지 않는 연구소의 열정은 우리나라 과학기술의 빠른 성장에 디딤돌이 됐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남들과 똑같거나 선진국 연구를 무작정 따라 하는 길을 벗어나 우리만의 독보적인 능력으로 새로운 길을 찾는 연구가 필요한 시대이다. 즉 캐치업이 아닌 퍼스트 무버가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것이다.

퍼스트 무버가 되기 위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먼저 당장에 보이는 단기 성과에만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장기적인 안목을 갖고 미래 연구 개발에 과감하게 도전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혼자 하는 개인 연구에서 벗어나 게으름(?)으로 무장한 다양한 연구자들이 함께 모여 새로운 해결 방법을 찾아나가는 연구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한국표준과학연구원은 올해 초 팀제를 본격적으로 도입해 팀 협업 체계를 만들었다. 자유로운 팀 연구, 팀 간 연구를 통해 융복합 연구의 기틀을 마련해 미래 연구의 퍼스트 무버가 되고자 하는 바람이 담겨 있다.



연구자 스스로도 지속적인 탁월함을 유지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본인이 하는 업무 중에 과감하게 줄이거나 효율적으로 바꿀 부분은 없는지 고민하고 바꿔나가야 한다. 즉 틀에 박힌 일을 하는 시간을 줄이고 생각하는 시간을 늘리는 것이다. 남들에게는 다소 게으르게 보일지라도 창의성을 발휘하며 똑똑하게 연구하는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물론 연구원이 행정적인 일에 치여 연속성 있는 생각을 방해하는 연구원의 시스템도 마땅히 개선돼야 하며 이에 따른 연구소의 운영 방식이나 평가 기준도 바꿔나가야 한다.

단순하게 주어지는 업무에 치여 지내게 되면 일에 매몰돼 멀리 보고 달려나갈 길을 찾을 여유,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는 여유가 사라져 버린다. 여유를 갖고 남들과 차별화된 연구를 찾기 위해 고민하는 ‘똑게 연구자’가 많아지기를 바란다. 역설적이지만 커피 한 잔과 함께 동료들과 수다를 나눌 수 있는 게으른 연구자가 우리나라 과학계의 숙원인 첫 노벨상의 꿈을 이루게 할 수 있지 않을까.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6 트윈트리타워 B동 14~16층 대표전화 : 02) 724-8600
상호 : 서울경제신문사업자번호 : 208-81-10310대표자 : 손동영등록번호 : 서울 가 00224등록일자 : 1988.05.13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 아04065 등록일자 : 2016.04.26발행일자 : 2016.04.01발행 ·편집인 : 손동영청소년보호책임자 : 신한수
서울경제의 모든 콘텐트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은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Copyright ⓒ Sedaily, All right reserved

서울경제를 팔로우하세요!

서울경제신문

텔레그램 뉴스채널

서울경제 1q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