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규모 경기부양책으로 세계 경제가 전례 없는 규모의 유동성 공급을 경험하고 있다. 약간의 과장을 보태 말하자면 지금은 ‘부도나는 것이 더 어려운 상황’이다. 하지만 이 유동성 잔치가 계속될 것이라고 낙관하기는 어렵다. 미국 정치권뿐 아니라 사회 곳곳에서 정부 지원을 줄여야 한다는 주장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내년에는 기업의 부채상환능력이 악화할 수 있어 선별적인 투자 접근이 더욱 필요하다.
올해 코로나19 상황에서도 유럽과 미국의 많은 기업은 대대적인 정부 지원에 힘입어 손쉽게 유동성을 확보할 수 있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보다 훨씬 더 큰 충격이 와도 버텨낼 만큼 유동성이 풍부하다. 변이 바이러스로 다시 경제 봉쇄가 이뤄지거나 중동에 전쟁이 발발한다고 해도 기업이 도산하고 경제 시스템이 붕괴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말이다. 회사채 만기가 늘고 있는 점도 긍정적이다. 최근 주가가 급등하고 신용 스프레드가 축소되면서 금융시장에선 낙관적 분위기가 역력하다.
하지만 현재 투자자들이 살펴봐야 할 지점은 내년에 기업의 영업활동이 재개되고 정부 지원이 줄기 시작할 때 나타날 수 있는 변화다. 예상되는 부정적 시나리오는 다음과 같다.
첫째, 최근 국제결제은행(BIS)이 실시한 경제성장률과 예상부도확률 (EDF) 간 역사적 상관관계 분석에서 다소 우려되는 결과가 도출됐다. 그동안 정부지원, 우호적 시장환경, 봉쇄 조치 등으로 기업 부도율은 평년보다 낮은 수준을 유지했으나, 내년에는 성장둔화의 여파로 부도율이 20%나 상승할 것이란 분석이다.
둘째, 백신이 개발되고 경제가 다시 ‘정상’으로 돌아가더라도 기업으로서는 또 다른 어려움에 맞닥뜨리게 될 것이다. 올해는 유동성을 관리하고 재택근무를 위한 IT 플랫폼을 확충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였다면, 내년에는 기업 운영을 위해 더욱 많은 비용이 발생할 것으로 보인다. 코로나 이후 소비 트렌드의 변화를 예측하기도 더욱 어려워졌다.
경기가 큰 폭으로 회복하더라도 아직 인플레이션에 대한 우려가 낮아 금리가 가파르게 상승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현재의 풍부한 단기 유동성은 기회비용 측면에서 기업에는 부담이 될 수 있으므로 자사주 매입이나 특별배당금 지급, 인수합병 등 잉여현금흐름을 활용할 선택지를 고민하게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내년에는 무역갈등이 재점화될 전망이다. 조 바이든 대통령 당선인은 현재로선 중국 관세를 철폐할 의향이 없음을 이미 밝힌 바 있다. 중국과 호주 간 관계도 악화하고 있어 앞으로 국제 무역에서 만만치 않은 어려움이 예상된다. 내년도 투자 성공의 관건은 유동성 거품이 가라앉은 후에도 견조한 재무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 기업을 찾는데 달려있다. 광범위한 기업들을 면밀히 모니터링하면서 상향식(바텀업) 분석에 입각해 지속적인 수익창출력을 갖춘 기업에 선별적으로 접근하는 투자전략이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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