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유가가 지난 3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초반 수준으로 올라섰다. 원유 가격이 오르면서 국내 휘발유·경유 가격은 9개월여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 사태 직격탄을 맞아 올 한해 최악의 적자를 본 정유업계로서는 반길 법도 하지만 덤덤하다 못해 위기감이 더 커지는 분위기다. 수익 지표인 정제마진 개선이 요원한데다, 향후 국제 유가 흐름을 낙관하기에도 변수가 많기 때문이다. 최악의 보릿고개가 내년 상반기까지는 이어질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30일 한국석유공사 ‘오피넷’에 따르면 12월 넷째 주 국내 휘발유 평균 판매가격은 리터당 1,389.42원이다. 코로나19가 폭발적으로 확산하기 시작하던 지난 4월 첫째 주 1,391.59원 이후 9개월여 만에 가장 높은 수준까지 올라왔다. 한 때 리터당 1,050원대까지 떨어졌던 경유 가격도 리터당 1,190.07원으로, 4월 초 1,197.80원 수준에 근접했다.
국내 휘발유·경유 가격 상승은 국제 유가가 기계적으로 밀어 올린 결과라는 게 업계 설명이다.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사회적 거리두기가 여전한 상황에서 국내 수요 회복이 가격 상승을 견인한 게 아니라는 것이다. 국제 유가 변동은 2~3주의 시차를 두고 국내 휘발유 등 제품 가격에 반영되는데, 최근 배럴당 50달러를 회복했다. 국제 유가가 올랐지만 국내 제품 수요는 정체되면서 국내 정유업계의 수익성을 가늠할 수 있는 싱가포르 정제마진(제품 가격-원유 가격)은 12월 말 현재 배럴당 1.5달러에 머물러 있다. 정유업계는 정제마진이 4달러 정도는 돼야 수익성을 맞출 수 있다고 본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국제 유가가 배럴당 10달러 올랐는데, 오히려 제품 가격은 9달러만 올랐다면 오히려 손해”라며 “유가가 오르더라도 더 중요한 것은 수요 증가에 따른 제품 가격 상승”이라고 설명했다.
더 큰 문제는 국제 유가 상승이 추세적으로 지속될 지에 대한 불확실성이 크다는 점이다. 최근 국제 유가를 끌어올린 직접적 배경은 코로나19 백신 접종 시작이다. 하지만 영국 등에서 코로나19 변이 바이러스 사례가 나타나고 있는 등 불안이 여전하다. 한국석유공사 석유정보센터 관계자는 “원유 실수요 증가로 국제 유가가 올랐다기보다 주요국에서 백신 접종이 시작되는 데 대한 막연한 기대감이 시장에 크게 반영됐다”고 설명했다. 오히려 내년 초 석유수출국기구와 러시아 등 주요 산유국 모임인 OPEC+가 감산 규모를 줄이는 식으로 원유 생산량을 늘ㅈ리는 방안을 논의하는 등 공급 측 부담 요인이 적지 않다.
이 때문에 내년 하반기 이후에나 업황 개선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는 주장이 힘을 얻는다. 국제에너지기구(IEA)도 최근 코로나19 백신이 보다 널리 보급되는 내년 상반기까지는 휘발유와 경유 수요가 제한될 것으로 예상했다.
/한재영기자 jyha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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