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용자동차는 기업회생절차의 ‘대명사’로 꼽힌다. 지난 2009년 1월 신청해 2011년 3월 끝난 쌍용차(003620)의 첫 번째 회생절차는 역대 최대 규모의 기업회생 사건이었고, 77일 간의 공장점거 파업 때문에 국민적 관심도 컸다. 그런 쌍용차가 11년 만에 다시 기업회생절차를 신청하며 두 번째 생사기로에 섰다. 업계에선 이번 상황이 첫 번째 회생절차와 다른 점으로 △절차상 순서가 뒤바뀐 점 △이 때문에 시간에 쫓긴다는 점 △기업 자체 경쟁력이 크게 약화 됐다는 점을 꼽는다. 인수·합병(M&A)로 끝난 당시와 달리 이번엔 M&A를 마무리 짓기 위해 회생절차를 신청했고, 이 때문에 주어진 시간이 3개월 남짓으로 2년 여가 걸린 2009년보다 많지 않으며, 기업 경쟁력이 당시보다 떨어져 퇴로나 선택지가 없다는 얘기다.
①2009년엔 M&A가 끝, 이번엔 M&A가 시작
쌍용차는 2009년 1월 9일 첫 번째 회생절차 개시를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신청했고, 법원은 한 달이 채 되지 않은 2월 6일 회생절차 개시를 결정했다. 이후 관계인 집회, 회생계획안 제출, 회생계획 (강제)인가, M&A(마힌드라)라는 통상적인 회생 절차를 거쳤다.
하지만 이번엔 당시와 다소 결이 다르다. HAAH 오토모티브에 매각에 속도를 내기 위해 회생절차를 신청했다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회생절차를 거쳐 마지막에 인수의향자를 찾는 통상적인 절차가 아니라, 인수의향자가 있는 상태에서 인도 정부의 규정 등으로 인해 협상이 지지부진 하자 인도 정부를 압박하고 매듭을 풀기 위해 회생절차를 ‘카드’로 썼다는 얘기다.
업계에선 대주주 마힌드라와 HAAH가 대주주 지분을 감자한 뒤 HAAH가 유상증자에 참여해 최대주주로 올라서는 방안을 추진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인도 정부가 자국 기업이 해외 투자 주식을 감자하는 것에 규정을 이유로 반대하고 있어 순탄치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인도 정부를 압박하기 위해 기업회생절차를 신청했다는 분석이다.
②2009년엔 2년 걸렸지만…이번엔 3개월 내 M&A 결론 내야
이를 위해 쌍용차가 끼워 넣은 것이 ARS 프로그램이다. ARS 프로그램은 회생절차 개시를 최대 3개월까지 연기해 주는 제도로, 이 기간 동안 이해관계자들 간 조율을 거쳐 회생절차를 취소할 수 있다. 쌍용차로서는 법원이 회생절차 개시 여부를 판단하기 전에 매각과 채권 조율에 총력을 기울일 시간을 얻은 것이다. 이 중에서도 매각에 방점이 찍혀 있는 분위기다.
문제는 쌍용차가 이 시간 내에 반드시 신규 투자를 유치해야 한다는 점이다. HAAH 또는 다른 신규 투자자와 결론을 내지 못하고 회생절차가 개시되면 쌍용차의 미래는 장담할 수 없다. 일각에선 파산이 불가피 하다는 지적도 조심스레 제기된다. 쌍용차는 현재 계속 기업으로서의 가치가 상당히 떨어진 상태다. 2009년 회생절차 당시 쌍용차는 총자산 2조1,267억원, 부채 1조6,919억원으로 자산초과회사라는 평가(조사보고서 기준)를 얻어냈다. 계속 기업 가치 또한 1조3,276억원으로 청산가치 9,386억원을 초과해 회생계획이 추진됐다.
그러나 이번엔 다르다. 지난 3·4분기말 기준으로 총자산(1조6,929억원)과 총부채(1조5,949억원)가 비슷한 수준이다. 3개월이 지난 현재는 이 비율이 더 악화했을 가능성도 있다. 쌍용차는 현재 15분기 연속 적자를 기록하고 있기도 하다. 지금 상황이 이어진다면 쌍용차가 채무를 변제하기는 쉽지 않다. 채무 변제 능력은 쌍용차 회생의 핵심적인 조건이다.
이는 정부와 산업은행이 쌍용차를 지원하지 않고 있는 이유다.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은 “쌍용차에 돈만 넣으면 살릴 수 있다는 오산을 하면 안된다”며 “경쟁력을 입증해야 한다”고 누차 강조했다. 2009년 회생절차 중에도 산은을 비롯한 채권단으로부터 1,300억원을 대출 받은 것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다.
2009년 쌍용차 회생절차는 개시신청(2009년 1월 9일)부터 마힌드라에 인수되며 종료(2011년 3월 14일)되기까지 2년 넘게 진행됐다. 그러나 이번에 쌍용차에 주어진 시간은 3개월뿐이다.
③2009년엔 르노닛산도 인수의향서…지금은 HAAH뿐
쌍용차 자체의 기업 경쟁력도 당시보다 현저히 떨어져 있다. 실체가 불분명한 연 매출 250억원의 HAAH 외에는 쌍용차에 관심을 갖고 있는 곳이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2009년 쌍용차는 대주주 상하이차의 미흡한 투자와 빈약한 연구·개발(R&D) 지원에도 불구하고 디젤 엔진 기반의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경쟁력을 어느 정도 확보하고 있었다. 2011년 쌍용차 공개경쟁입찰 당시 마힌드라 외에 르노닛산을 포함한 5곳이 인수의향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그러나 약 10년이 흐른 현재 전문가들은 “쌍용차 기술력 정도는 중국 업체들도 다 가지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계속되는 자금난으로 R&D 투자가 적었고, 괜찮은 기술자들이 연이어 이탈하는 악순환이 계속돼 왔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신흥국 자동차 산업에도 큰 도움이 안 된다는 인식이 넓게 퍼졌다.
더구나 자동차 산업이 전기차·자율주행차로 빠르게 이동하는 현실에서는 미래차 산업에 엄청난 자금을 쏟아붓는 경쟁사들을 쌍용차가 따라잡기 불가능한 게 사실이다. 쌍용차는 현재 국내 완성차 기업 중 친환경차 모델이 없는 유일한 곳이다.
일각에선 자유무역협정(FTA)을 이용해 미국 등으로 향하는 우회수출 기지(쌍용차 평택공장)로서의 매력을 든다. 그러나 이를 이유로 한 M&A는 정부·당국으로서도 부담스럽다. 현재 HAAH는 중국 지리자동차와 기술협력을 하고 있다. 지분 관계는 없다고 선을 긋고 있지만 업계에선 연 매출 250억원에 불과한 HAAH가 쌍용차 인수대금 3,000억원을 마련하고 향후에도 안정적으로 투자할 수 있겠느냐는 의구심이 크다. 결국 중국 자금이 HAAH로 흘러들어오지 않겠느냐는 관측이다.
이 경우 중국에 또 쌍용차를 넘겼느냐는 여론과 미·중 무역분쟁 와중에 한국이 중국의 미국 우회수출기지로 이용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익명을 요구한 자동차 업계 고위 관계자는 “산업은행과 정부 당국 또한 쌍용차를 중국 자본에 매각하지는 않겠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박한신기자 hspark@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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