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벽두부터 은행들이 점포 운영을 효율화하고 몸집을 줄이기 위해 안간힘을 쏟고 있다. 기존 오프라인 중심의 영업 조직과 고비용 저효율의 항아리형 인력 구조를 바꾸지 않으면 급성장하는 인터넷전문은행·빅테크와의 경쟁에서 이길 수 없다는 위기감 때문이다. 체질 개선을 넘어 생존을 위한 은행권의 혁신 바람이 거세지고 있다.
3일 우리은행은 전국의 모든 영업점을 대상으로 공동 영업 체계 ‘VG(Value Group·같이그룹)’ 제도를 4일부터 시행한다고 밝혔다. 거점 점포 한 곳과 주변 영업점 4~8곳을 하나의 그룹(VG)으로 묶는 제도다. 성과 평가와 인사 배치도 개별 지점이 아닌 그룹 단위로 운영되고 영업 전략도 VG가 자율적으로 짤 수 있다. 같은 VG에 속한 영업점은 사실상 하나의 점포처럼 공동 영업이 가능해지는 시스템을 갖춘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제 살 깎아 먹기’식 경쟁을 지양하고 협업으로 직원들의 업무 역량을 강화할 수 있다”며 “휴가·연수 등으로 한 영업점에 결원이 많아지면 같은 VG 소속 영업점끼리 인력을 지원하고 고객을 공동 관리할 수 있어 내점 고객에게도 더 편하고 질 좋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디지털·비대면 금융이 확고한 대세로 자리 잡으면서 과거의 촘촘한 점포망 중심의 영업 체계를 구조 조정하는 작업은 더욱 시급한 생존 과제가 됐다. 우리은행처럼 영업점을 ‘묶고 키우는’ 것도 그중 한 가지 방법이다. 비효율 점포는 과감하게 없애는 동시에 일대일 서비스를 원하는 수요에 맞춰 자산 관리, 기업금융 등 보다 전문적이고 종합적인 금융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거점 점포는 키우는 방식이다. 대면 채널은 인터넷은행·빅테크에 맞서 은행만이 가진 비교 우위라는 판단에서다. 국내 5대 은행이 지난해 역대 최대로 많은 점포를 없앴지만 복합 점포는 오히려 늘린 것도 이런 흐름에서다. KB금융은 지난해 WM 복합 점포를 5곳 추가해 총 75곳으로 늘렸고 신한은행과 하나은행도 각각 투자금융, 자산 관리 등의 기능을 강화한 신한PWM PIB센터, 100년 리빙트러스트센터를 출범해 확대할 예정이다.
전제 조건은 전체 점포 축소다. 여전히 단순 업무에 치우친 점포의 비중이 높은 상황에서 영업점 운영에 들어가는 인건비와 관리비·임차료 등 고정비용을 줄이고 그 자원을 디지털·글로벌 등 미래 먹거리 사업에 재배분하려면 비효율 점포를 통폐합하고 조직을 슬림화하는 작업이 불가피하다는 게 은행권의 공통된 인식이다. 5대 은행은 지난해 전체 점포의 5%에 달하는 237곳을 통폐합하며 역대 최대로 많은 점포를 줄였고 올해도 1~2월에만 최소 26곳을 없애기로 했다. A 은행은 이달 내 기존 영업점 40곳을 지점 관리 비용이 상대적으로 적은 출장소로 격하하는 작업도 병행한다.
이는 필연적으로 인력 감축으로 이어진다. 이미 은행권은 연말 연초 희망퇴직 규모를 늘리며 고비용 인력 구조 개편에 속도를 붙인 상태다. 농협은행(496명)과 하나은행(511명)에서는 지난달 31일 자로 각각 전년도보다 40%가량 늘어난 인원이 은행을 떠났고 우리은행에서도 지난달 28일까지 진행한 희망퇴직 접수에 470여명이 몰렸다. 전년도 퇴직자(305명)보다 55% 가까이 늘어난 규모다. 이들 은행은 모두 전년보다 희망퇴직 대상과 보상을 대폭 늘려 고임금 관리자급 직원의 퇴로를 넓혔다.
이 모든 변화의 목적은 디지털 금융 시대에 맞춰 은행의 영업 체계와 인력 구조를 새로 짜는 데 있다. 은행들이 디지털·정보기술(IT) 인력 채용을 확대하고 디지털 역량 강화에 초점을 두고 본부 조직을 개편하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김우진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인력 구조의 효율화를 위해 항아리형 구조를 개선하되 언택트 시대의 패러다임까지 고려해 인적 자원 관리 시스템을 업그레이드해야 한다”며 “단순히 인력 감축을 통해 비용을 통제하는 게 아니라 어떤 인력을 어떻게 확보하느냐가 더 중요한 경영 과제”라고 지적했다.
/빈난새기자 binther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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