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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사람 없는 해운 재건 계획

조지원 경제부 기자





HMM(옛 현대상선) 유럽 지사에서 근무했던 A씨가 최근 회사를 떠났다. 몇 년 전 출장길에 만난 그는 유창한 외국어 실력은 물론이고 현지 사정을 꿰뚫고 있을 뿐 아니라 일 처리도 깔끔해 회사 내 에이스로 꼽혔다. 그랬던 A씨가 자리를 옮긴 곳은 HMM보다 규모가 훨씬 작은 중소기업. 처우 문제로 옮겼다는 이야기가 들렸다.

물건을 실어 나를 배가 없을 정도로 해운 업계가 호황이라지만 정작 HMM 직원들은 즐겁지 않다. 지난 2010년부터 2018년까지 8년 연속 연봉이 동결된 뒤 2019년 1%, 2020년 2.8% 오르는 데 그쳤기 때문이다. 2010년 4,110원이었던 최저임금은 그사이 8,720원(2021년 기준)으로 112%가 올랐다. 일부 직원들은 회사가 어려울 때 자사주 매입에 나서면서 수천만 원에 달하는 빚까지 지고 있다. HMM 주가가 폭등했어도 평균 매입 단가에는 한참 못 미친다.

8년간 연봉 동결로 HMM 처우가 업계 최저 수준으로 떨어지면서 A씨와 같은 인력 유출이 심각한 상황이다. HMM뿐 아니라 SM상선도 마찬가지다. HMM 해상직 노조가 지난해 연봉 협상 과정에서 사상 최초로 파업 카드를 꺼내 든 것에는 이런 배경이 깔려 있다. 육상직 직원들도 같은 마음이다. 업계 최고 대우가 아닌 그동안 물가가 오른 만큼, 인력이 빠져나가지 않을 정도를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직원들의 이러한 목소리에도 대주주 산업은행은 “우려를 표명한다”며 수출에 차질이 생길지만 걱정했고 해양수산부는 침묵했다. 대신 HMM에 5조 원을 투입해 선박 33척을 추가 확보하겠다는 계획만 나왔다. 이러다가 사람은 다 빠져나간 뒤 빈 배만 떠안을 형국이다.

해운업은 인력 싸움이다. 힘들고 위험한 환경에서 일하는 해상직은 더 말할 것도 없고 육상직도 중요하다. 세계 각국의 정치 상황뿐 아니라 환율·유가 등 통제할 수 없는 외부 변수에 즉각 대응해 비용을 줄이려면 전문성과 노하우를 갖춘 인력이 필수이기 때문이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사람이 없다면 해운 재건 5개년 계획도 무용지물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jw@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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