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3·4분기 우리나라 가계의 국내외 주식 투자 규모가 30조 원을 넘기며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금융 부채 역시 사상 최대 수준을 보이면서 가계가 빚을 내면서까지 부동산과 주식 투자에 나선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는 지출을 크게 늘려가며 재난지원금을 지급해 소비 촉진에 나섰지만 정작 가계는 지갑을 닫고 투자에만 몰두하는 모습이다.
한국은행이 7일 발표한 ‘2020년 3·4분기 자금순환’에 따르면 가계 및 비영리단체의 순자금 운용은 지난해 3·4분기 30조 7,000억 원으로 지난 2019년 3·4분기(16조 6,000억 원) 대비 큰 폭으로 증가했다. 순자금 운용은 예금·채권·보험·연금 준비금으로 굴린 돈(자금 운용)에서 금융기관 대출금(자금 조달)을 뺀 금액으로 경제주체의 여유 자금으로 볼 수 있다. 자금순환은 계절성을 갖기 때문에 전년 동기 대비로 비교한다.
가계의 순자산 운용 규모가 두 배 가까이 늘어난 것은 자금 운용 규모가 대폭 증가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3·4분기 가계 자금 운용은 83조 8,000억 원으로 전년 동기(40조 6,000억 원) 대비 두 배 수준으로 불어났다. 마이너스(-)를 보였던 지분 증권 및 투자 펀드가 22조 5,000억 원으로 대폭 늘어난 영향이다. 국외 운용 규모도 1조 1,000억 원에서 8조 2,000억 원으로 증가했다. 두 자금 운용 항목을 합치면 30조 7,000억 원으로 국내외 주식 투자 규모가 역대 최대 수준인 것으로 집계됐다.
가계의 자금 조달 규모 역시 24조 원에서 53조 2,000억 원으로 큰 폭 늘었다. 특히 금융기관 차입은 52조 6,000억 원으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사상 최대로 빚을 낸 가계가 부동산·주식 투자에 나섰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한은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한 불확실성이 지속되면서 생계 자금 대출도 늘어난 것으로 보고 있다. 가계의 금융 부채 대비 금융자산 배율은 2.17배로 전 분기(2.16배)와 전년 동기(2.11배) 대비 모두 확대됐다.
다만 가계의 소비는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오히려 줄어들었다. 민간 최종 소비지출은 2019년 3·4분기 233조 9,000억 원에서 지난해 3·4분기 226조 2,000억 원으로 감소했다. 하지만 정부가 추가경정예산안을 편성하면서 재난지원금 등을 지급한 결과 가계의 처분 가능 소득은 412만 8,000원에서 426만 1,000원으로 늘어났다.
정규채 한은 경제통계국 자금순환팀 팀장은 “가계의 금융기관 차입 증가는 주택 거래량 증가로 볼 때 주택 구입 자금으로 쓰였고, 주식 투자 자금으로도 쓰인 것으로 보인다”면서 “코로나19 지원금 등 이전소득을 중심으로 가계소득이 늘었지만 소비가 위축돼 순자금 운용이 확대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정부의 순자금 운용 규모는 16조 4,000억 원에서 8조 8,000억 원으로 1년 만에 반 토막이 났다. 지난해 2·4분기 납부 유예된 세수가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수입이 확대됐지만 3차에 이은 4차 추경을 편성하는 과정에서 지출이 더 크게 늘었기 때문이다. 가계 및 비영리단체에 대한 정부의 경상이전 규모는 2019년 3·4분기 32조 1,000억 원에서 지난해 3·4분기 48조 2,000억 원으로 급증했다. 비금융 법인 기업의 순자금 조달 규모는 17조 8,000억 원에서 14조 9,000억 원으로 감소했다. 한은은 기업의 수익이 증가하면서 순자금 조달 규모가 축소됐다고 설명했다.
/조지원기자 jw@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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