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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비의 그림]거장의 명품으로 가꾼 조각정원…여기가 '예술의 신세계'

신세계백화점 본점 <하>

6층 야외공간에 조성된 '트리니티 가든'

알렉산더 콜더·헨리 무어·호안 미로 등

세계적 명성 '조각 거장' 작품 한자리에

쿤스 '세이크리드 하트' 추정가만 300억

고가 작품이 백화점 휴식공간에…'파격'

신세계백화점 본점 6층에 조성된 조각 정원인 ‘트리니티가든’ 전경. 호안 미로와 루이스 부르주아의 조각이 보인다. /사진 제공=신세계백화점




도심 건물 속 정원은 일종의 숨구멍이다. 서울 한복판 신세계백화점 본점의 정원은 자연을 향해 열린 공간인 동시에 예술과 마주하는 특별한 장소다. 본관 6층에 조각 정원으로 조성된 트리니티가든의 얘기다.

알렉산더 콜더와 헨리 무어, 루이스 부르주아와 호안 미로를 한 자리에서 볼 수 있는 곳이요, 제프 쿤스와 안토니 곰리 같은 세계적 명성의 작가와 만날 수 있는 공간이다. ‘트리니티가든’은 지난 2007년 신세계백화점 본점 리노베이션에 맞춰 조성됐다. 이명희 신세계그룹 회장은 선친 이병철 창업주의 가르침이었던 ‘사람을 나무 기르듯 길러라’라는 지침을 여러 차례 언급한 적이 있는데 사람뿐만 아니라 예술도 나무 기르듯 가꿔 왔다. 세계적인 명성을 자랑하는 작품들을 보유한 것은 돈으로의 환산이 무색한 국부(國富) 확보이자, 이를 누구나 향유할 수 있는 열린 공간에 전시한다는 점에서 고객 서비스를 넘어선 사회적 가치의 실현이다. 물론 작품 값도 상승했다. 미술 애호가들이 트리니티가든을 가리켜 “1,000억 원 이상의 가치를 지닌 정원”이라고 하는 말이 결코 과장은 아니다.

호안 미로 ‘인물(Personnage)’. /사진 제공=신세계백화점


트리니티가든은 신세계백화점 본점 6층의 카페 겸 레스토랑에서 이어지는 야외 공간이다. 매장 고객이 아니어도 조각 정원을 드나드는 데 제약은 없다. 곰돌이처럼 생긴 검은 조각이 먼저 문 앞에서 방문객을 맞는다. 스페인 태생의 초현실주의 예술가이며 어린아이의 붓질 같은 그림으로 유명한 호안 미로(1893~1983)의 작품이다. 제목은 ‘인물(Personnage)’. 주전자 형태의 아랫부분이 뻗은 팔처럼, 구(球)형의 윗부분이 머리처럼 보인다. 그림부터 조각·도예에까지 재능을 뻗친 미로는 스페인에서 보고자란 가우디 건축의 영감, 파리에서 만난 마티스, 피카소와의 교류를 기반으로 20세기 후반 미국 추상표현주의에 영향을 줬다. 분열하는 세포 같은 유기체적 형태에 화려한 색채와 예측할 수 없는 선들이 조화를 이루며 외계인의 기호 같은 미로 만의 ‘생태적 추상’이 구축됐다. 1974년 작인 이 조각도 보는 이에 따라 사람이나 짐승, 주전자나 컵으로 여겨진다.

알렉산더 콜더 ‘버섯’. /사진 제공=신세계백화점


그 곁에는 미로의 영향을 받은 조각가 알렉산더 콜더(1898~1976)의 작품이 놓여 있다. 맑은 날이면 날개 가지런히 모으고 하늘을 바라보는 ‘새’로도 보이지만 제목은 ‘버섯’이다. 추상 조각이니 무엇으로 보고 어찌 느끼든 상관은 없다. 콜더는 1932년 처음으로 ‘움직이는 조각’인 모빌(mobile)을 선보인 후 한 곳에 고정된 작품들은 스태빌(stabile)로 구분했다. 조각을 움직이게 한 혁명적 시도 외에 나무·돌·청동 같은 전통 조각 재료가 아닌 철사·알루미늄·철판 등 산업 자재를 사용한 것도 그의 업적으로 꼽힌다. 육중한 철판을 사용해 높이 333㎝의 거대한 규모로 제작했는데도 더없이 부드럽고 유려하다.

헨리 무어 ‘와상:아치의 다리’. /사진 제공=신세계백화점




정원의 안쪽 가운데를 차지한 조각가는 헨리 무어(1898~1986)다. 로댕의 뒤를 이어 브랑쿠시, 자코메티로 이어지는 유럽 현대조각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거장이다. 가슴을 편 여성의 상반신, 누워 있는 사람의 하반신을 떠올리게 하는 작품의 제목은 ‘와상(臥像): 아치의 다리 (Reclining Figure: Arch Leg)’다. 이는 무어의 대표적인 주제 중 하나인데 추상 조각을 추구한 그는 특정한 인체를 묘사하기보다 체온이 느껴지는 곡선미, 자연이 갈고닦은 듯한 표면 효과에 집중했다.

루이스 부르주아 ‘아이 벤치(Eye Benches) Ⅲ’. /사진 제공=신세계백화점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검고 커다란 두 개의 눈과 마주치게 된다. 겹겹의 주름이 감싼 두 눈이 동그랗게 세상을 응시한다. 프랑스 태생으로 20세기를 대표하는 여성 작가 루이스 부르주아(1911~2011)의 작품 ‘아이 벤치(Eye Benches) Ⅲ’다. 자신의 가정교사와 불륜을 저지른 아버지에 대한 증오와 어머니에 대한 연민을 담아 페미니즘 미술의 대표주자가 된 부르주아는 1980년대부터 눈·귀·손 등의 인체를 재조립한 조각에 몰두했다. 1996~1997년 작인 이 작품도 그중 하나다. 작가는 자신의 심리적·정신적 상태를 투영하는 매개체로서 눈을 다뤘다. 이지은 명지대 미술사학과 교수는 “물체로서의 눈과 사물의 리얼리티를 탐구하는 인식의 눈, 그리고 세상과의 교류, 소유로서의 응시 등을 포괄적으로 은유하고 있는 작품”이라고 평했다.

제프 쿤스 ‘세이크리드 하트’. /사진 제공=신세계백화점


2007년 개관 당시에는 부르주아의 대표작 ‘거미’가 먼저 놓여 있었고 이후 2009년에 ‘아이 벤치’가 추가로 설치됐다. 2011년에는 생존 최고 작가 중 하나로 꼽히는 제프 쿤스의 ‘세이크리드 하트’가 ‘거미’의 자리를 차지했다. ‘세이크리드 하트’는 보라색 포장지로 감싸 금색 리본으로 묶은 하트 모양의 작품인데 누군가를 위해 정성을 담아 준비하는 성심을 화려하면서도 발랄하게 구현했다. 당시 쿤스의 조각 작품 ‘풍선 꽃(Balloon Flower)’이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약 165억 원에 낙찰됐기에 이 작품은 300억 원 정도로 추산되며 화제를 모았다. 수백 억 원짜리 고가의 작품을 미술관이 아닌 백화점 휴식 공간에 설치한다는 것 자체가 ‘파격’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신세계백화점은 본격적인 ‘아트마케팅’을 내세워 제프 쿤스의 팬사인회, 아트 상품 개발 등을 전개했다.

안토니 곰리 ‘생각(Think)’. /조상인기자


지난해 초부터는 쿤스의 조각이 현대 조각의 거장 안토니 곰리의 2017년 작 ‘생각(Think)’에 자리를 내줬다. 철제 블록들을 착착 쌓아올린 모양이 흡사 사람 형상이다. 곰리는 1980년부터 자신의 몸을 직접 본떠 만든 납 인물상으로 유명한데 2005년부터 이처럼 기하학적인 인물상을 만들고 있다. ‘생각’이라는 제목을 듣고 작품을 다시 보면 한쪽 팔로 턱을 괸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이 떠오른다. 건물 건너편 남산타워와 3.6m 높이의 길쭉한 작품이 절묘한 대구를 이룬다. 과거의 걸작과 오늘날의 조각이 교감하는 동시에 조각과 사람이, 예술과 일상이 소통하는 풍경이 펼쳐진다.
/조상인기자 ccsi@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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