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대 직장인 김 모 씨는 며칠 전 증권사 객장을 찾아가 주식 계좌를 새로 만들었다. 10여 년 전 중국 펀드 붐이 일었을 때는 금융 위기로 큰 재미를 보지 못했고 이후 증권사 직원이 권유한 주식을 샀다가 큰 손해를 보고 증권사 계좌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지난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충격을 받았던 증시가 반등세를 이어가는 가운데서도 김 씨는 조정을 기다렸다. 그러나 연초에도 코스피지수가 3,000을 넘어서는 등 불을 뿜자 ‘나 혼자’ 증시에서 소외되고 있다는 불안감이 커져 드디어 행동에 나섰다. 다만 그는 이번에는 ‘안 망할 회사’인 삼성전자·현대차와 같은 우량 종목 위주로만 살 계획이다.
새해 들어 증시에 입성하는 투자자들의 발길이 더 빨라지고 있다. 특히 코스피지수가 올해 들어 닷새 만에 10%가량 오르자 보수적인 투자층이었던 중장년·노년층까지도 증권사 객장을 찾고 있다. 8일 키움증권·미래에셋대우·한국투자증권·NH투자증권·KB증권 등 국내 5개 주요 증권사에서 4~7일 나흘간 개설된 신규 계좌 수는 42만 9,133개에 달했다. 전체적으로 50만 개 이상의 계좌가 새로 만들어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전체 주식거래 활동 계좌 수도 7일 기준 3,574만 3,583개로 지난해 말에 비해 1주일 새 25만 8,182개가 늘었다.
상당 비중이 비대면으로 개설되고 있지만 증권사 영업점 역시 붐비고 있다. 비대면 계좌 개설에 익숙하지 않거나 미성년 자녀 혹은 손주의 계좌를 만들기 위해 직접 지점을 찾는 중장년층이나 노년층 때문이다. 특히 서울보다는 수도권이나 지방의 증권사 지점들에서 내방객들이 하루 종일 대기하거나 직원들이 야근하는 경우가 많다는 게 증권사들의 설명이다. 한 대형 증권사 관계자는 “카톡방,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을 통해 트렌드에 민감한 2030세대가 지난해부터 급격하게 주식시장에 뛰어들었지만 주식에 보수적이었던 중장년층은 주가 조정을 기다리며 뒷짐을 지고 있었다”며 “그러나 요즘 들어 주식 유무에 따라 자산 격차가 크게 벌어지는 상황을 보면서 ‘포모 증후군(fear of missing out)’을 견디지 못해 주식을 시작하는 사례가 많다”고 말했다. 포모 증후군이란 상승장에서 나만 소외될 수 있다는 불안증을 말한다.
중장년층의 경우 레버리지를 활용해 단기 고수익을 좇는 2030세대와 달리 대형주 장기 투자 성향이 강하다는 게 증권가의 진단이다. 남혜림 유안타증권 삼척지점 매니저는 “신규든 기존 고객이든 기본적으로 삼성전자는 포트폴리오에 가져가려 한다”며 “유튜브를 통해 접한 주식 정보로 높은 수준의 질문을 하면서도 대형주 위주의 안정적인 투자를 선호하는 모습”이라고 전했다. 김성용 유안타증권 대구서지점 PB는 “40대 후반에서 60대의 장년층 신규 고객들이 앞으로 주가가 더 오를 것이라는 기대감에 객장을 많이 찾고 있다”며 “단기 트레이딩보다 주도주 위주의 대형 종목에 주로 관심을 갖는 편”이라고 말했다.
어린 자녀들에게 미리미리 주식을 사주려는 젊은 부모나 손주에게 주식으로 증여하려는 노년층도 눈에 띄게 늘었다는 전언이다. 이지연 미래에셋대우 마포WM 선임 매니저는 “신규 계좌를 개설해 은행예금을 국내 주식과 해외 주식, 상장지수펀드(ETF)에 투자하는 나이 드신 고객들이 급증했다”며 “이전까지는 드물었던 자녀에게 증여하기 위한 문의가 크게 늘어난 것도 특징”이라고 귀띔했다.
또 올해 초부터 줄줄이 이어질 공모주(IPO) 청약을 위해 미리 계좌를 만들어두려는 수요도 많다. 주명진 NH투자증권 반포WM센터장은 “지난해 ‘공모주 대박’에서 소외됐지만 올해는 공모주 물량을 최대한 신청하기 위해 미리 계좌를 만들고 상품을 일부 가입해두려는 투자자들이 꽤 있다”고 말했다. 증권사별로 기존 고객들에게 청약 한도를 차등적으로 배정하는 경우가 많아 조건을 미리미리 충족시키려는 발 빠른 투자자들인 셈이다. /이혜진·양사록기자 hasi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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