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들은 한시적으로 걸어 잠갔던 신용대출 빗장을 다시 풀었지만 축소했던 대출 한도와 우대금리는 대부분 그대로 유지하거나 추가로 줄이고 있다. 금융당국의 가계대출 관리 기조가 여전한데다 지난해 신용대출이 역대 최대로 폭증하면서 가계부채 리스크에 대한 우려도 다시 피어오르는 상황이다.
9일 은행권에 따르면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의 신용대출 잔액은 4~7일 동안 4,533억원 증가했다. 대부분 은행에서 지난해 말까지 중단했던 신용대출을 재개한 첫 날인 4일에는 하루 동안에만 2,798억원 늘었다. 연말 성과급 등으로 대출 수요가 비교적 적은 1월에 신용대출이 이처럼 급증하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연초 ‘대출 러시’에는 앞으로 대출 규제가 더 강화될 수 있다는 불안감이 작용하고 있다. 금융권은 초저금리를 타고 신용대출이 급증하기 시작한 지난해 하반기부터 ‘금융당국의 경고’ ‘막차 수요에 따른 대출 폭증’ ‘추가 규제와 은행권의 대출 죄기’ 패턴을 반복하고 있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신규 대출은 물론 기존에 받아놨던 신용대출과 마이너스통장의 한도를 늘리려는 문의도 많았다”며 “당장 필요하지 않더라도 일단 받아두자는 심리도 상당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삼천피'·초저금리에 대출수요 폭증 |
근본적인 원인에는 초저금리가 있다. 근로소득은 좀처럼 오르지 않고 은행 예금 금리는 0%대로 떨어진 상황에서 빠르게 자산을 늘리려면 낮은 이자율을 지렛대 삼아 대출을 일으키는 게 필수라는 인식이 커졌기 때문이다. 집값이 천정부지로 뛰자 주택담보대출 규제로 모자란 주택 매매 자금을 신용대출로 충당하는 것은 당연해졌고 마이너스통장을 굴려 주식시장에 진입하는 개인 투자자도 대폭 늘었다. 은행권 관계자는 “금리가 워낙 낮다 보니 예·적금 대신 주식시장에 투자하는 것은 당연하고 여윳돈이 없는 사람들도 단기 대출로 투자 자금을 조달하는 데 부담을 느끼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올해도 대출 문턱 높아질 듯 |
모든 차주에 대해 소득과 전체 대출 원리금을 계산해 추가 대출 여력을 판단하도록 하는 규제 비율도 올해 새로 도입된다. 금융위원회는 올해 핵심 과제로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을 차주 단위로 전환하는 방안을 1·4분기 안에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DSR은 주택담보대출, 신용대출, 자동차 할부금, 카드론 등 모든 금융부채의 원리금을 차주의 연 소득으로 나눈 값이다.
이 비율을 가령 개인당 50%로 제한하면 1년에 4,000만 원을 버는 사람은 모든 원리금을 합친 금액이 연 2,000만 원을 넘으면 더 이상 대출을 받을 수 없다. 이제까지는 금융기관별로 DSR을 적용해왔지만 앞으로는 차주 단위로 확대 도입하겠다는 것이다. 개인의 상환능력에 따라 대출을 내주는 관행을 정착시키겠다는 취지지만, 전 세계적인 초저금리와 경기 회복 지연으로 가계의 대출 수요가 여전히 큰 상황에서 총량 억누르기 식으로 규제가 이뤄질 경우 정작 필요한 곳에 대출이 이뤄지지 못하는 부작용도 벌어질 수 있다.
은행들도 보수적인 대출 관리가 불가피하다는 분위기다. 금융당국의 경계령이 새해에도 유효한데다 지난해 신용대출이 워낙 가파르게 늘어난 만큼 전체 대출 포트폴리오 관리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12월 말 기준 5대 은행의 가계대출은 1년 전보다 9.7% 급증해 가계부채 죄기가 시작된 2017년 이후 가장 크게 늘었다. 특히 주택담보대출 위주로 늘어왔던 과거 증가세와 달리 지난해는 신용대출이 역대 최대인 21.6% 폭증하면서 전체 증가를 이끌었다. 한국은행은 최근 금융안정보고서에서 “고신용·고소득 차주 비중이 늘고 연체율이 하락하는 등 가계대출 건전성은 양호한 수준”이라면서도 “금리 하락, 평균 대출 만기 장기화 등의 영향이 점차 축소될 수 있고 주담대보다 부실 위험이 큰 신용대출의 증가세가 가파른 점을 고려하면 중장기적으로 가계부채의 부실 위험은 커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빈난새기자 binthere@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