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기술 기반 스타트업이나 벤처기업에 미국의 실리콘밸리에서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는 '투자조건부 융자' 제도의 국내 도입을 추진한다. 중기부는 법적 근거를 마련한 후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의 정책융자를 통해 시범운영을 한 후 다른 공적기금과 민간 금융기관 등으로 확대한다는 방침이다.
투자조건부 융자는 벤처캐피탈(VC) 등으로부터 투자를 받았거나 후속투자 가능성이 높은 창업·벤처기업에 금융기관이 저리로 대출을 해 주고 소액의 지분인수권을 받도록 하는 제도다.
기술력만 있고 담보가 없는 스타트업이나 벤처기업은 초기 자금을 VC로부터 투자받게 되는데 이 경우 투자를 받을 때마다 창업자의 지분이 희석되는 문제가 있다. 창업자는 VC로부터 대규모 투자를 꺼리게 되고 경향이 생겨나고, 이로 인해 유능한 스타트업이나 벤처들이 유니콘(기업가치 1조 원 이상의 비상장 기업)으로 성장하는데 발목을 잡아 왔다. 하지만 지분희석 없이 금융기관으로부터 대규모 대출을 받을 수 있게 되면 유니콘으로 성장하는 데도 속도를 낼 수 있게 된다.
중소벤처기업부는 13일 '제26차 비상경제 중앙대책본부회의 겸 제9차 한국판 뉴딜 관계 장관회의'에서 이같은 내용의 '기술 기반 벤처·스타트업 복합금융 지원방안'을 확정했다고 밝혔다.
미국의 경우 조건부 융자 규모는 지난 2017년 기준 126억 달러로 추정된다.
중기부는 이를 위해 연내 벤처투자법을 개정해 투자조건부 융자 제도 도입을 위한 법적 절차에 착수한다.
중기부 관계자는 "무한 잠재력을 보유하고 있지만 꽃을 피우지 못하고 사장되는 벤처들이 많다"라며 "유니콘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정교한 맞춤형 정책이 필요하다는 판단에서 도입을 추진했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금융기관 입장에서는 후속 투자 가능성이 큰 벤처에 대출을 해줘 회수 가능성을 높이고 동시에 지분인수권을 통해 기업이 성장했을 때 금리보다 높은 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기업 입장에서는 투자가 아닌 융자이기 때문에 창업자 등의 지분이 희석되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
정부는 투자조건부 융자제도를 통해 약 3,000곳에 3조 원 규모의 복합금융을 지원하고 이 지원되는 이 대책을 통해 일자리 2만 개가 창출될 것으로도 기대했다.
법 개정 전에는 투자조건부 융자와 유사한 효과가 있는 기술보증기금 ‘투자옵션부 보증’을 연 2,000억 원 규모로 늘릴 계획이다. 중기부는 초기 창업기업 등에 대한 벤처투자를 촉진하고 투자방식을 다양화하기 위해 미국 실리콘밸리 등에서 활용되는 '조건부 지분전환 계약' 제도도 도입한다. 이는 후속 투자가 실행되지 않으면 투자 기간의 원리금을 받고 후속 투자가 실행되면 상법상 전환사채를 발행하는 계약 형태다. 중기부는 또 창업·벤처기업 기술개발 과제의 사업화를 지원하기 위해 채무 상태 등을 보지 않고 기술보증·사업화 자금 대출을 병행 지원하는 5,000억 원 규모의 '프로젝트 단위 기술개발(R&D)사업화금융'을 신설하기로 했다.
중기부는 녹색 기술개발 과제의 온실가스 감축량을 화폐 단위로 평가해 금융 지원하는 '탄소가치평가 기반 그린뉴딜 보증'도 올해부터 본격 실시할 계획이다. 지원 규모는 연 4,500억 원이다. 이 밖에도 창업투자회사에 대한 보증 제도가 도입되고 기업과 투자자 간 만남의 장 마련을 위해 공공기관이 보유한 기업 데이터를 모은 '벤처투자 인공지능 온라인 매칭플랫폼(가칭)'이 내년까지 구축된다.
박영선 중기부 장관은 “코로나19 속에서도 벤처·유니콘 기업이 주식시장을 견인하는 주역으로 부상하는 등 우리 경제를 떠받치는 허리 역할을 하고 있다"며 “다시 찾아온 제2 벤처붐의 열기가 사그라지지 않도록 기술 창업·벤처기업 맞춤형 복합금융이 차질없이 이행되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연승기자 yeonvic@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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