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형에 반영할 수 있다고 했지만 "실효성 부족"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국정농단’ 사건 파기환송심 판결에 삼성 준법감시위원회의 존재는 결국 반영되지 않았다. 준법감시위의 실효성이 부족하다는 게 법원의 판단이었다.
서울고법 형사1부(정준영·송영승·강상욱 부장판사)는 18일 이 부회장에게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하면서 준법감시위의 양형 반영 여부에 관해 상세히 설명했다.
앞서 재판부는 지난 2019년 10월 파기환송심 첫 공판에서 이 부회장 측에 준법감시위 설치를 권했고, 이후 이를 선고형에 반영할 수 있다고 언급했다. 재판부는 이 부회장 측에 “미국 연방 양형기준 제8장과 미국 대기업의 준법감시제도를 참고하라”고 말한 바 있다.
이에 삼성은 지난해 2월 외부 독립기구로서 김지형 전 대법관을 위원장으로 한 준법감시위를 공식 출범했다. 준법감시위의 권고에 따라 이 부회장은 같은 해 5월 대국민사과를 통해 4세 경영 포기, 무노조 경영 중단 등을 선언했다.
대법 판결 이후 출범…"잘못된 메시지 전할 수도"
재판부는 준법감시위 출범 시점이 대법원의 파기환송 선고가 있었던 2019년 8월 이후라는 사실에 주목했다. 재판부는 “기업범죄 사건 발생 이후에야 준법감시 시스템을 강화했다는 사정이 양형 조건으로 참작되기 위해서는 그 실효성이 매우 엄격하게 검증돼야 한다”고 했다. 준법감시제도의 실효성이 담보되지 않았다면, 이를 근거로 감형할 경우 ‘위법행위에 대한 처벌’이라는 제도의 본질이 훼손될 수 있다고도 했다.
재판부는 “사실관계와 법리적 쟁점을 모두 다퉈본 이후에 유죄가 인정되면 그제서야 준법감시제도를 도입하거나 강화해도 된다는 잘못된 메시지를 기업들에게 전달할 수 있다”며 “준법감시제도의 본질은 어디까지나 ‘위법행위의 예방’에 있는 것이지 ‘감형’에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법원 "선제적 예방 안 돼, 미전실 감시 안 돼"
그러면서 재판부는 삼성의 준법감시제도가 ‘실효성 기준’을 충족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준법감시위는 경영권 승계와 관련해 발생할 수 있는 위법행위를 유형별로 나눠두고 각각에 대한 리스크를 모두 정의했어야 하는데, 실제로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는 판단이다.
재판부는 “삼성의 준법감시제도는 ‘이 사건에서 문제된 위법행위’에 초점을 맞춰 활동하고 있으나 선제적으로 위험을 예방하는 데까지는 이르고 있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발생 가능한 리스크에 대응하는 준법감시위의 평가 시스템에 문제가 있으며, 이 때문에 준법감시위는 실효성을 갖추지 못했다고 본 것이다.
현 준법감시제도 하에서는 그룹의 ‘컨트롤 타워’가 되는 조직에 대한 감시가 제대로 이뤄질 수 없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재판부는 “과거 삼성 구조조정본부, 미래전략실 등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하는 조직을 통해 위법행위가 이뤄졌다”며 “현재 준법감시제도에는 이에 대한 대응 방안이 구체적으로 제시돼 있지 않다”고 밝혔다.
준법감시 범위 넓혀야 한다는 지적도
아울러 재판부는 준법감시위가 감시 범위를 넓혀야 한다는 취지로도 지적했다. 재판부는 “현재 준법감시위는 삼성전자, 삼성물산, 삼성SDI, 삼성전기, 삼성SDS, 삼성생명보험, 삼성화재해상보험에 대해 준법감시 활동을 하고 있다”면서 “최고경영진의 위법행위는 이외의 회사에서도 발생할 수 있다”고 꼬집었다.
앞서 재판부는 준법감시위의 실효성과 지속가능성 등을 묻기 위해 전문심리위원 3명을 지정해 평가를 들었고, 위원마다 평가는 엇갈렸다.
특검 측과 이 부회장 측 입장도 판이하게 달랐다. 특검 측은 준법감시위가 ‘이 부회장이 두려워할 만한 수준’에 미치지 못한다고 주장했다. 운영된 지 1년이 채 되지 않은 준법감시위의 실효성을 논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주장도 했다. 반면 이 부회장 측은 대국민 사과 등을 근거로 들며 실효성이 충분하다는 입장을 폈다.
/이희조기자 love@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