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금융위원회·금융감독원이 전혀 보이지 않아요. 금융위원장·금감원장이 모두 정치적 논리에 함몰돼 있어요.”(신성환 전 금융연구원장)
정치권을 중심으로 시장의 원칙을 무시한 금융정책이 쏟아지는 가운데 제동을 걸 금융 당국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는 비판이 높다. 공매도, 이자 상환 등 정치권에 휘둘려 정책들이 잇따라 뒤집어지면서 금융 당국에 대한 신뢰도 떨어지고 있다. 금융권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장기화로 경영 환경이 위태로운 와중에서도 ‘칼자루’를 쥔 금융 당국이 책임을 면하기 위해 제재에만 매달리고 있다며 우려하고 있다.
정치권 바라보는 금융위 ‘소신 無’
금융권에서는 금융위가 최근 주요 현안에서 정치권에 휘둘리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오는 3월 재개 입장을 확실히 밝혔던 공매도 관련 조치가 대표적이다. 지난 11일 금융위는 출입기자단에 문자메시지로 ‘코로나19로 인한 한시적 공매도 금지 조치는 3월 15일 종료될 예정’이라고 밝혔지만 일주일 만에 뒤집어졌다.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18일 신년 업무계획 브리핑에서 공매도 재개 방침은 확정되지 않았다며 발을 뺐다.
3월 종료 예정인 소상공인·자영업자에 대한 대출 만기 연장, 이자 상환 유예 조치 또한 지난해 금융위는 연착륙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했으나 한 달여 만에 재연장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정치권에서 개인 투자자, 서민을 등에 업고 공매도 금지, 만기 연장, 이자 상환 유예의 재연장을 촉구하자 금융위가 소신없이 끌려가고 있다는 지적이다.
최근 더불어민주당과 금융위가 금융 비용을 줄이겠다며 금리인하요구권 제도개선태스크포스(TF)를 결성한 점도 금융권에서는 우려하는 대목이다. 금리인하요구권은 차주의 신용평가 등급이 올랐거나 취업·승진을 했을 때 개선된 신용 상태를 반영해 대출 이자를 깎아달라고 요구할 수 있는 권리다. 지난해 상반기 기준으로 은행마다 20~96%대까지 다양한 범위의 수용률로 집계됐다. 금융위는 TF를 통해 은행마다 수용률 기준이 제각각인 점 등을 개선하겠다는 취지지만 은행 입장에서는 수용률을 높여야 하는 압박으로 해석될 수 있다.
은행권의 한 관계자는 “이번에 소상공인 2차 대출을 개편하면서 금리를 1%포인트 추가 인하하며 비용도 은행권이 부담했다”면서 “은행의 이자 이익은 결국 은행에 예금을 맡긴 사람들의 것인데 밑도 끝도 없이 금리를 내리라는 것은 자본주의의 원칙에 위배된다”고 답답해했다.
‘長 때리기’에 화력 쏟는 금감원
금감원이 소비자 보호에 방점을 찍고 감독의 수위를 나날이 강화하고 있는 점도 금융권으로서는 또 다른 ‘리스크’다. 28일 기업은행을 시작으로 신한·우리·하나은행 등에 대한 사모펀드 제재심의위원회가 줄줄이 예정돼 있다. 금감원이 디스커버리펀드를 판매한 기업은행의 김도진 전 행장에게 중징계를 전달하면서 사실상 다른 은행장들에 대해서도 중징계 방침이 정해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문제는 이 같은 금감원의 제재가 지나친 ‘장(長) 때리기’로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다는 데 있다. 양준모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법률에 근거한 합리적 판단보다는 불완전 판매라는 이유로 정치적 감독을 하고 있다”며 “진상을 규명하고 재발을 방지하기보다 처벌 및 보상 위주의 감독만 한다”고 꼬집었다.
금감원의 이 같은 포퓰리즘적 조치는 앞서 법원의 판결을 무시하고 키코(KIKO)의 배상을 촉구하고, 요양병원에 입원해 치료받는데도 암 보험금을 지급해야 한다고 결론 내린 사례에서도 엿볼 수 있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금감원의 행장 제재 기조로) 요즘 입사한 행원들은 행장이 되고 싶다는 꿈도 꾸지 않는다”고 전했다. 다른 관계자는 “금감원의 논리대로라면 금감원장도 키코 사태에 열중하느라 사모펀드 관련 징조를 놓치고 잘못 관리한 책임을 져야 하는 게 맞지 않느냐”고 비판했다.
전문가들은 경제 불확실성이 계속되는 만큼 소신 있는 금융 당국의 역할이 필요한 때라고 주장한다. 특히 최근 은 위원장은 차기 경제부총리 후임자 중 하나로 거론되고 5월 임기가 끝나는 윤석헌 금감원장의 연임 여부가 주목되는 상항에서 금융 당국이 보신주의에 빠져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신 전 금융연구원장은 “부처 수장이 기관의 존재, 목적에 부합하는 의사 결정을 내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태기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도 “과거 박정희·김영삼 정부에서도 경제 영역은 정치권이 함부로 개입하지 못하게 했다”며 “특히 금감원은 민간 금융회사를 공공 금융기관으로 생각하고 관치 금융을 더 제도화하고 있어 우려된다”고 했다.
/김지영 기자 jikim@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