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감독원이 라임펀드 판매 은행에 ‘직무정지’라는 중징계를 사전 예고하면서 은행권이 아연실색하고 있다. 금융 당국이 감독 실패를 반성하기는커녕 판매사에만 책임을 떠넘길 뿐 아니라 사태 해결을 위해 동분서주한 그간의 노력이 전혀 반영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제재 수위가 이대로 확정되면 금융사 지배구조가 흔들릴 수 있어 법적 소송이 불가피해 보인다.
5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감독원은 지난 3일 라임펀드를 판매한 우리은행과 신한은행에 대한 징계안을 사전 통보했다. 손태승 우리금융그룹 회장(당시 우리은행장)과 진옥동 신한은행장은 각각 중징계에 해당하는 ‘직무 정지’와 ‘문책 경고’를 통보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조용병 신한금융그룹 회장에게는 경징계인 ‘주의적 경고’가 사전에 통보됐다.
6년 만 현직자에 ‘직무정지’
시중은행들은 현직인 손태승 우리금융그룹 회장에게 중징계인 직무정지 결정을 사전 통보한 데 주목한다. 현직 은행권 최고경영자(CEO)의 직무정지 통보는 지난 2014년 임영록 전 KB금융지주 회장 이후 처음이다.
금감원은 우리은행이 라임펀드를 가장 많이 판매했을 뿐 아니라 기초자산이 부실한 정황을 감지한 후에도 펀드를 판매한 점을 문제 삼은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우리은행의 라임펀드 판매액은 3,577억 원, 신한은행은 2,769억 원이다.
손 회장과 금감원의 ‘악연’에 따른 가중 처벌로 보는 시각도 있다. 손 회장은 파생결합펀드(DLF) 사태 당시 금감원의 중징계에 불복해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당시 서울행정법원은 손 회장의 효력 정지 가처분 신청을 받았다. 은행권의 한 관계자는 “손 회장이 금감원으로부터 ‘미운털’이 박혀 현직임에도 직무정지를 받은 것 같다”며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CEO에게 책임을 묻는 게 반복되면서 징계 효과도 반감된다”고 했다.
앞서 라임 관련 증권사의 제재심의위원회에서 금감원은 현직 CEO인 박정림 KB증권 대표에게 임기 초반에 벌어진 일인 점 등을 근거로 직무정지에서 문책 경고로 제재 수위를 한 단계 낮춘 바 있다. 손 회장은 우리은행장으로 역임하던 임기(2017년12월~2020년3월)와 라임펀드 판매 시점(2018~2019년)을 고려할 때 이같은 점이 적용되기 어렵다는 관측이다.
코로나로 연임시켰는데... 제재로 ‘흔들’
문제는 이 같은 중징계가 최종 확정될 경우 향후 금융권의 취업이 불가능하다는 데 있다. 손 회장의 경우 현재 징계 대상 직무인 은행장직을 수행하고 있는 것이 아니어서 당장 회장 직무 수행에는 영향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3월 이미 임기 3년의 연임도 보장받은 상태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우리금융 이사진도 안정성 측면에서 손 회장의 회장직 수행에 뜻을 같이하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다만 손 회장에 대한 중징계가 확정될 경우에는 제재효력 발생일로부터 4년간 금융권의 취업이 막히기 때문에 3연임은 불가능해진다.
진옥동 신한은행장 역시 지난해 12월 임기 2년의 연임을 보장받았다. 진 행장은 문책경고 확정시 앞으로 3년간 금융권에서 일할 수 없다. 손 회장과 진 행장 모두 불복 소송을 제기할 가능성이 높은 것도 이 같은 맥락에서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으로 개별 금융사들이 변화보다 안정을 내세워 연임과 임기 연장을 추진해왔지만 당국의 제재로 무색해진 셈”이라며 “경영 리스크가 커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정책·감독실패 매 안 맞는 금융감독
업계에서는 라임펀드를 포함한 사모펀드 사태가 금융당국의 감독 부족에 따른 점도 있는데 업계에만 지나치게 책임을 전가한다고 지적한다. 이같은 ‘금융당국 책임론’은 금융노조에 이어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에서도 새어나오고 있다.
참여연대는 지난 4일 이슈리포트 ‘사모펀드 부실피해, 왜 발생했는가’에서 “라임·옵티머스 펀드 부실 사건의 근원은 2015년 자본시장법 개정을 비롯한 일련의 규제 완화에 있다”며 “사실상 일반 투자자들도 사모펀드에 투자할 수 있게 됨에 따라 피해가 확대됐다”고 밝혔다. 당시 금융 당국이 적격투자자의 투자 금액을 1억 원 이상으로 낮추고 사모펀드 운용사의 자기자본 기준 또한 20억 원으로 완화하는 등 사모펀드의 진입 장벽을 낮췄다. 이 같은 규제 완화 정책에 발맞춰 감독 업무가 강화돼야 했지만 정작 감독 업무는 부실했다는 것이다. 참여연대는 “그동안 금융 감독은 건전성에 중점을 뒀다”며 “사모펀드 사태에 책임이 있는 금융 당국 관계자에 대한 조사나 책임 추궁은 언급조차 되지 않고 있다”고 꼬집었다.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역시 지난 3일 성명서를 통해 “판매사인 은행은 사모펀드 내용과 운용에 관해 제도적으로 접근하거나 관여하기 힘든 구조에 놓여 있다”며 “정책·감독 실패자부터 매를 맞으라”고 항변했다.
라임펀드와 관련해 우리·신한은행에 대한 제재심은 오는 25일 열릴 예정이다. 징계안은 금감원의 제재심 및 금융위의 의결을 거쳐 최종 확정된다. 이 과정에서 제재 수위가 낮아질 가능성도 있다.
/김지영 기자 jiki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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