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르노그룹 제조·공급 총괄 임원인 호세 비센테 드 로스 모소스 부회장의 영상 메시지는 크게 두 가지로 요약된다. 하나는 인력 감축 등 ‘서바이벌 플랜’의 조속한 이행을 통한 원가 절감, 또 다른 하나는 생산 납기 준수다. 이를 이행하지 못해 경쟁력을 상실할 경우 부산공장 생산 물량 감축 등을 통해 사실상 한국을 떠날 수도 있다는 일종의 경고로 자동차 업계는 풀이하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한 자동차 판매 위축과 친환경차로의 전환 등 자동차 산업이 급격한 변화를 맞는 상황에서 부산공장이 경쟁력을 회복하지 못할 경우 그룹 차원의 구조 조정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르노삼성 얼마나 심각한가=르노삼성의 유일한 공장인 부산공장은 지난해 11만 6,000여 대의 자동차를 판매했다. 부산공장 최대 생산량인 23만 대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수치다. 11만 6,000여 대 중 내수가 9만여 대 나머지 2만 6,000여 대는 수출 물량이었다. 부산공장이 생산하는 차종은 QM6·XM6·XM3(뉴 아르카나) 등이다. 문제는 현대차·기아의 아성과 수입차의 인기 상승으로 르노삼성의 내수 판매는 더 이상 증가할 여지가 없다는 점이다. 결국 르노삼성이 23만 대의 생산 물량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수출 물량 확대 외에는 방법이 없으며 그 핵심에는 XM3가 있다. 르노삼성 관계자는 “소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인 XM3는 유럽에서도 인기가 많은 차종으로 르노그룹이 XM3 유럽 수출 물량 전체를 부산공장에 배정한 것은 일종의 기회”라며 “노조의 파업 등으로 납기를 맞추지 못하고 원가 경쟁력을 회복하지 못하면 르노그룹 입장에서도 실망이 클 것”이라고 했다. 모소스 부회장이 이날 영상 메시지를 통해 서바이벌 플랜 이행 등을 강조한 것도 XM3의 성패가 부산공장의 운명과 직결될 수 있다는 경고라는 것이다.
르노삼성은 지난해 판매 대수가 16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하고 8년 만의 영업 적자가 확실시되자 수익성 개선을 위한 ‘서바이벌 플랜’ 시행을 발표한 바 있다. 플랜의 핵심은 △내수 시장 수익성 강화 △XM3 원가 경쟁력 강화와 안정적 공급 △임원 감축 및 희망 퇴직 시행 등이다.
◇르노그룹, 글로벌 공장 구조 조정 가속=르노그룹은 자동차 산업의 대전환기를 맞아 수익성 강화를 중심으로 경영 방향을 전환하는 ‘르놀루션(Renaulution)’ 경영 전략안을 발표했다. 르노삼성의 ‘서바이벌 플랜’은 르놀루션을 실행하기 위한 르노삼성판 구조 조정이다. ‘르놀루션’ 전략안에서 르노그룹은 수익성을 강화해야 할 지역으로 라틴아메리카·인도와 함께 한국을 적시했다.
실제 르노그룹은 전 세계에서 구조 조정을 실시하고 있으며 브라질의 경우 이미 1,300명을 감안하고 신입 사원 임금의 20%를 삭감했다. 또 노동조합과 임금 및 단체협약 주기를 4년으로 늘렸다.
모소스 부회장이 영상 메시지에서 ‘새로운 방법’까지 거론하며 경고장을 날린 것은 부산공장이 브라질공장의 전철을 밟을 수도 있다는 메시지를 노조에 전하기 위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르노삼성 부산공장의 경쟁력 악화는 심각한 상황이라는 게 르노그룹의 진단이다. 르노그룹은 글로벌 공장 19곳 중 부산공장의 생산 경쟁력이 지난 2019년 5위에서 지난해 10위로 하락했으며, 특히 공장 제조원가 점수가 지난해 기준 17위에 그치는 등 비용 항목의 점수가 가장 저조하다고 평가했다. 이는 고정비 상승 탓이 크다. 2014년 9월부터 지난해 3월까지 부산공장의 닛산 로그 생산이 종료되고 지난해 9월 이후 재고 물량 조정으로 부산공장의 생산 일정이 크게 줄어들면서 고정비가 올라간 것이다.
“부산공장의 제조원가가 스페인 공장의 캡처 생산원가의 2배에 달한다”는 모소스 부회장의 발언은 이런 부산공장의 상황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실제 닛산 로그가 한창 생산되던 2016년에서 2018년까지 부산공장의 경쟁력은 1~2위를 다퉜지만 로그 생산 중단 이후에는 내리막을 걸었다. 결국 원가 절감과 납기 준수를 통해 XM3 수출 물량을 늘리지 않으면 경쟁력 회복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자동차 업계에서는 모소스 부회장의 발언이 파업 절차를 밟고 있는 노조에 대한 강력한 경고인 만큼 노조도 전향적인 태도를 보일 필요가 있다고 진단한다. 이항구 한국자동차연구원 연구위원은 “최근 법정관리 위기에 놓인 쌍용차의 전철을 르노삼성이 밟지 말라는 보장이 없다”며 “글로벌 시장에서 수익성 없는 공장은 과감히 정리하는 게 글보벌 자동차 시장의 추세”라고 말했다.
/김능현 기자 nhkimch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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