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초 뜨거웠던 회사채 시장은 설 연휴가 낀 이달에도 활황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발행 금리 스프레드는 다소 둔화됐지만 평균 경쟁률은 약 5.4배 수준으로 여전히 수요 우위를 보이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BBB등급 회사채는 여전히 공모 시장에 나오기는 부담스러운 모습입니다. 지난달 두산인프라코어(BBB+)가 정부 지원 없이도 모집금액 대비 두 배가 넘는 투자 수요 확보에 성공했지만(1,100억 원 모집에 2,860억 원 주문) 높은 금리와 불확실성 등 리스크가 많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입니다.
대신 사모채 시장을 찾아 기존 대비 낮은 금리로 자금을 조달하고 있습니다. 중견 건설사 한라(014790)(BBB)는 1,000억 원 규모 2년물을 발행해 운영자금을 조달했습니다. 발행금리는 연 3.8%로 이제까지 회사가 조달한 사채 중 가장 낮은 수준입니다. 직전 발행인 지난해 말(11월 26일) 대비해서도 70bp(1bp=0.01%포인트) 줄었습니다.
한라는 지난해부터 차입 만기를 장기화하면서 재무개선에 고삐를 조이고 있습니다. 지난해에도 7차례 사모사채를 발행해 기업어음(CP) 등 단기자금을 차환했지요. 2020년 3분기 기준 회사의 부채비율은 400%를 넘어서는 등 다소 과중한 수준이지만 총차입금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단기차입금의 만기를 늘리고 자산 매각(동탄C블록과 캑터스바이아웃제3호사모투자 등 보유 지분증권, 상표권 등)을 이행하면서 차입금을 감축하고 있습니다.
지난해부터 사모채 발행을 늘린 현대삼호중공업도 1월 1,650억 원에 이어 이달 350억 원을 추가로 조달했습니다. 환율 하락 등 여파로 순손실 규모가 커지면서 운영자금 확보에 속도를 내는 것으로 보입니다. 만기는 2년(200억 원)과 2.5년(150억 원)으로 각각 3.47%, 3.75%로 발행했습니다. 지난해 발행 대비 약 20bp 낮은 수준입니다. 이밖에 AJ네트웍스(095570)와 이수건설도 사모채 시장을 찾아 기존 대비 낮은 금리로 운영 자금을 조달해갔습니다.
BBB등급 기업은 얼핏 보면 매우 부실한 느낌이지만 사실 국내 전체 기업 중에서는 신용도가 우수한 수준입니다. 그러나 연기금이나 보험사, 자산운용사 등 회사채 시장 투자자들이 AA등급(일부 A등급)을 주로 담으면서 사실상 시장 수요가 사라진 상황이지요. 그렇다보니 직접조달시 높은 금리를 주면서 저축은행 등 2금융사나 소매(리테일) 수요를 노릴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최근 발행금리가 떨어지면서 저신용 기업들의 직접금융시장에도 볕이 드는 분위기입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종식 기대감과 역대 최저 금리로 사채 수요가 급증한 영향이지요.
/김민경 기자 mkkim@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