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김치 수출이 역대 최대를 기록하며 전 세계 80개국의 러브콜을 받았다. 김치의 기원이 자국 음식이라는 중국의 억지 주장이 확산되고 있는 와중에도 김치는 꾸준히 저변을 확대하며 글로벌 시장에서 저력을 과시했다. 중국의 김치 원조 논란 도발에도 한국 김치에 대한 인지도가 꾸준히 높아진 데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와 맞물려 발효 음식인 김치가 면역력 향상에 도움이 된다는 인식이 세계에 퍼진 영향으로 분석된다.
15일 관세청과 식품 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김치 수출액은 1억 4,451만 달러로 전년보다 37.6% 늘었다. 이는 기존 최대치인 지난 2012년(1억 661만 달러)을 8년 만에 넘어선 것이다. 김치 수출액은 앞서 3분기 누적 1억 850만 3,000달러를 기록하며 일찌감치 연간 최고치를 갈아치웠다. 성장 동력을 잃어가던 김치 세계화가 다시 반등할 수 있는 모멘텀을 마련한 것이다.
수출의 양뿐 아니라 질도 좋았다. 김치 수출 시장은 전 세계 80여 곳에 달했다. 일본이 7,110만 달러로 전체의 절반 가까이인 49.2%를 차지했다. 이어 미국(2,306만 달러), 홍콩(776만 달러), 대만(587만 달러), 호주(564만 달러), 네덜란드(515만 달러) 등의 순이었다. 이들을 포함해 총 100만 달러 이상 김치를 수입한 국가가 14개국에 달했다. 김치 세계화의 선결 과제인 탈(脫)아시아가 진행된 결과다. 호주와 네덜란드의 김치 수출 증가율이 100%에 근접했다.
김치 수출 확대 원인은 코로나19 정국에서 김치가 면역력에 좋은 제품으로 알려지면서다. 장 부스케 프랑스 몽펠리에대 폐의학과 명예교수 연구팀의 연구 결과가 불을 지폈다. 연구팀은 한국이 코로나19로 인한 사망자가 적은 이유를 ‘김치’ 덕분이라고 발표했다. 부스케 교수는 ‘유럽 국가별 채소 소비와 코로나19 치사율 간 연관성’이라는 논문을 발표하며 “지역별 식생활 차이와 코로나19로 인한 사망자 수를 분석한 결과, 발효된 배추를 주식으로 삼는 국가의 사망자가 적다는 공통점이 있다”며 “한국인들은 대부분 김치를 거의 매일 섭취하는데 김치의 발효 성분이 코로나19 바이러스를 억제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해외 생산 라인 증설 등 투자를 확대해온 기업들의 노력도 김치 수출 확대의 일등 공신으로 평가받는다. 김치 수출 1위 업체인 대상은 김치의 세계화를 목표로 올해 안에 미국 현지에 김치 생산 공장을 가동한다는 계획이다. 또 중국에서는 지난해 말부터 롄윈강 공장을 가동하며 중국 현지 생산에 들어갔다.
CJ제일제당은 미국남자프로골프투어(PGA)를 후원하며 비비고 김치 부스를 운영하는 등 비비고 브랜드를 무기로 현지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CJ제일제당은 미국, 싱가포르, 유럽연합(EU), 일본, 태국, 필리핀 등의 국가에 김치를 수출하고 있다. 특히 베트남에서는 2018년부터 현지 생산을 통해 현지인의 입맛에 맞는 김치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풀무원은 미국에서 ‘나소야 김치(Nasoya Kimchi)’라는 이름으로 김치를 판매하고 있다. 현재 나소야 김치는 월마트 등 대형 유통 매장을 포함해 1만여 개 매장에 입점해 있다. 풀무원은 지난해 5월 전북 익산에 준공한 풀무원 글로벌김치공장에서 생산한 제품을 해외로 수출하고 있다. 아울러 풀무원은 지난해 출시한 ‘김치 렐리쉬’로 김치가 낯선 미국 현지인들에게 친숙하게 다가갔다는 평가를 받는다. 풀무원의 김치 렐리쉬는 파스타와 샐러드·피자 등의 요리에 쓰이는 소스다.
전 세계가 김치를 면역력 식품으로 인정하면서 중국이 제기한 얼토당토 않는 김치 종주국 논란이 완전히 종식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김치 종주국 논란은 일본의 기무치에 이어 두 번째다. 일본은 2001년 국제표준화기구(ISO)에 이미 기무치를 국제 표준 용어로 등재해 우리나라가 김치로 등록하려는 과정에서 마찰을 겪었다. 한국과 일본은 네 번의 실무 협의를 거쳐 규격명을 김치로 통일하는 진통을 겪었다. 이번 중국의 공격은 지난해 11월 중국 쓰촨 지방의 염장 채소인 파오차이가 ISO 인증을 받은 것을 두고 중국 공산당 기관지 환구시보가 ‘김치 종주국의 굴욕’이라고 보도하면서 시작됐다. 파오차이는 소금에 산초잎이나 고수와 같은 향신료를 물에 넣고 끓인 다음에 거기에 각종 채소를 넣고 절인 중국의 절임 채소 식품이다. 절임 배추에 고추·마늘·생강과 같이 양념을 하고 발효 과정을 거치는 김치와는 완전히 다른 식품임에도 중국은 김치 종주국 논란을 일으켰다.
결국 영국 BBC 등 각국의 언론이 중국의 ‘김치 공정’을 비판하면서 사태는 마무리됐지만 중국의 딴지가 언제든 재현될 수 있다는 게 업계의 관측이다.
다만 김치 종주국임에도 중국으로부터 많은 김치 수입을 하는 우리 외식 업계의 현실 탓에 여전히 김치의 무역 수지가 적자인 상황은 하루빨리 개선돼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값비싼 중국 김치가 한국에 다량 넘어오고 있다”며 “중국산 김치 수입을 줄일 수 있는 방안, 국산 김치를 지원하는 방안 등이 마련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한편 김치와 더불어 고추장과 간장·된장 등 한국 전통 장과 비빔면 소스 등 가공 소스 수출도 덩달아 증가했다. 한식을 집에서 시도하는 인구가 전 세계적으로 늘어난 까닭이다. 고추장과 된장을 포함한 장류 수출은 지난해 3억 달러를 기록해 최대 수출을 기록했다. 박가현 무역협회 수석연구원은 "최근 김치맛 가루가 아마존의 시즈닝 신제품 부문 판매 1위를 차지하고 고추장 소스 햄버거가 미국 유명 햄버거 체인에서 판매되는 등 한국식 입맛을 담은 음식이 현지인의 식탁에 올라가고 있다"며 "한류가 이제 한식 등 문화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는 만큼 현지인의 입맛에 맞는 제품을 개발하고 브랜드 강화를 통해 해외 시장을 공략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보리·박형윤기자 bori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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