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헬 구리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사무총장은 17일 정부와 여당이 추진하는 4차 재난지원금 지급에 대해 “선별 지원이 보편 지원보다 민간 소비 회복에 더 유리하다”고 강조했다. 한국은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늙어가는 국가이기 때문에 재정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써야 향후 지출 압박에 대응할 수 있다는 조언도 내놓았다.
구리아 사무총장은 이날 한국개발연구원(KDI) 개원 50주년 국제 컨퍼런스 기자 간담회에서 “선별(targetd) 지원은 전 국민에게 돈을 지급하는 보편 지원보다 더 큰 소비승수를 유발한다”며 “지원 대상과 금액을 결정하는 게 어려워도 선별 지원이 타당하다는 점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고 말했다.
이번 구리아 사무총장의 발언은 재난지원금 지급 방안을 둘러싼 당정 간 갈등에서 선별 지급을 주장해온 기획재정부의 손을 들어준 발언으로 해석된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재정이 화수분이 아니다”라며 여권의 전 국민 보편 지원 요구에 맞서왔다. 이에 여당은 최근 오는 3월 말 선별 지원금을 우선 지급하는 것으로 일단 한 발 물러섰지만 이와 별도로 4월 이후 ‘내수 진작’ 목적의 전 국민 지원금 지급이 필요하다는 의지를 굽히지 않고 있다. 하지만 소비 및 경기회복에 선별 지원이 더 낫다는 OECD의 공식 ‘조언’이 나오면서 향후 다시 한 번 논란이 일 것으로 예상된다. 여권의 유력 대권 주자로 꼽히는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보편 지원이 소비 진작에 더 도움이 된다는 취지의 발언을 여러 차례 한 바 있다.
한국의 재정 불균형 우려와 관련해 구리아 사무총장은 우회적으로 세금 인상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그는 ‘재정지출은 커지고 세수는 줄어드는 한국 상황에 대한 처방이 있느냐’는 질문에 “한국의 재정 압력을 고려할 때 국내총생산(GDP) 대비 세수 비중을 지금처럼 낮게 유지하기는 어려워 현명한 세제 개혁(tax reform)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실제로 한국의 GDP 대비 세수 비중은 26.8%로 OECD 평균인 33.9%보다 7%포인트가량 낮아 복지 지출을 줄이지 않는 한 세수를 더 늘릴 수밖에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구리아 사무총장은 세제 개혁 방안과 관련해 “세율을 올리는 대신 과세 기준을 확대하는 한국의 움직임을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다”며 “경제의 디지털화를 고려해 세금 정책을 마련하고 환경과 관련된 세금의 역할을 강화하는 게 공정한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이는 탄소세 등의 도입을 통해 세수를 지금보다 더 늘려야 한다는 것으로 해석되는 발언이다.
한국의 노동시장 양극화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나왔다. 구리아 사무총장은 “2019년 기준 한국의 남녀 임금 격차는 32.5%로 OECD 회원국 중 최고 수준이고 남성의 노동 참여율(74%)과 여성의 참여율(53%) 차이도 크다”며 “경력 단절 여성, 저숙련 노인, 청년 등 소외 취약 계층을 위한 구체적 정책을 도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한국의 최저임금 인상 정책은 소득 불평등 악화를 해소하는 데 효과적이었지만 급여 인상을 최저임금 인상에만 의지할 경우 저숙련 근로자의 일자리를 빼앗아 갈 수 있어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세종=서일범 기자 squiz@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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