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지난 1월 소비가 크게 늘면서 경기 회복세가 빨라지고 있는 가운데 재닛 옐런 미 재무장관이 “인플레이션을 걱정하지 않는다”며 대규모 경기 부양책을 밀어붙이겠다고 밝혔다.
월가에서는 옐런 장관의 이 같은 진단에도 적극적인 부양책 영향으로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는 미국 국채 금리 추세를 감안할 경우 예상보다 이른 시기에 인플레이션 충격파가 시장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이라며 긴장하는 분위기다. 글로벌 투자은행(IB)에서는 미 국채 10년물 금리가 1.5~1.75% 수준까지 치솟으면 증시에 직접적인 영향이 미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옐런 장관은 18일(현지 시간) 미 경제 방송 CNBC에 출연해 “인플레이션은 10년 이상 매우 낮았다”며 “물가 상승이 위험이기는 하지만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이를 다룰 수 있는 도구를 갖고 있다”고 강조했다. 옐런 장관은 또 “(부양책은) 적게 하는 게 많이 집행하는 것보다 대가가 더 크다고 생각한다”며 “대규모 부양책(Big Package)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의회에서 논의 중인 1조 9,000억 달러 규모의 추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부양책을 그대로 통과시켜야 한다는 얘기다. 논란이 큰 비트코인에 대해서는 “일반적으로 저금리가 자산 가치를 높인다”며 “비트코인은 매우 투기적인 자산”이라고 지적했다.
월가는 옐런 장관의 이 같은 언급을 인플레이션 우려를 사전에 차단하기 위한 메시지로 해석하면서 증시 조정을 촉발할 수 있는 금리의 임계점을 놓고 다양한 전망을 내놓고 있다. 미국 뱅크오브아메리카(BoA)는 금리의 티핑포인트(변곡점)로 1.75%를 제시했다. BoA 측은 “현재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 기업 중 70%가 미 국채 10년물 금리보다 높은 수익률을 제공하고 있으나 금리가 1.75%로 상승할 시 해당 비율은 40%로 급감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금리가 1.75%를 상회할 경우 S&P500에 속하는 대형주들의 주가 매력도가 크게 떨어질 것이라는 얘기다.
이보다 낮은 금리 상승으로도 증시 조정이 일어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왔다. 현재 S&P500 기업들의 평균 배당 수익률이 1.5%인데 안전 자산인 국채 금리가 이 수익률에 가까워질수록 주식시장의 자금이 채권시장으로 이탈할 수 있어서다. 일본 노무라증권은 미 국채 10년물 금리가 1.5%를 넘을 시 미 증시의 대표 지수인 S&P500이 최대 8% 하락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또한 골드만삭스는 “1개월 금리 상승 폭이 36bp 이상일 경우 지금의 강세장이 타격을 받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일각에서는 당장 올해 1분기 중 시장금리가 1.5% 수준까지 오를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하나금융투자는 미국 장기 기대 물가상승률이 2.2~2.3%까지 올라갈 경우 미 국채 10년물 금리가 기준금리 인상 기대 없이도 중기적으로 연 1.64~1.70%까지 상승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이에 따라 지난해 저금리 수혜를 입은 성장주를 중심으로 글로벌 증시가 급등세를 보인 만큼 향후 시장금리 상승이 위험 자산 변동성을 높이는 뇌관이 될 것이라는 해석이 우세하다.
이 같은 금리 상승은 경제 회복 기대와 물가 상승 가능성, 대규모 재정 부양책에 따른 국채 발행 확대 전망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우선 조 바이든 행정부의 추가 부양책이 임박한 상황이다. 실제로 바이든 정부와 민주당은 의회에서 논의 중인 1조 9,000억 달러 규모의 추가 코로나19 부양책에 대해 강력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 민주당 소속의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은 다음 주 말께 부양책 법안의 하원 표결을 진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물가 상승 기대도 커지고 있다. 미국의 1월 수입 물가는 전월 대비 1.4% 올라 2012년 3월 이후 9년여 만에 최대 폭의 상승을 기록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집계한 시장 예상 1.0%도 훌쩍 넘었다. 1월 생산자 물가는 2009년 지표 집계 이후 최대 월간 상승률을 기록했다. 국제 유가의 상승이 직접적인 원인인 것으로 평가되지만 인플레이션 가능성에 대한 우려를 한층 키웠다.
다만 금리 상승이 지속되더라도 증시 조정이 당장 일어나지는 않을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올해 S&P500지수 전망치로 가장 낙관적인 수치인 4,400을 제시했던 JP모건은 미 국채 10년물 수익률이 2%를 기록할 경우 주가가 매력을 잃기 시작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올해 1.45%로 끝날 것으로 JP모건 측은 전망했다.
/김기혁 기자 coldmetal@sedaily.com, 김영필 기자 susopa@sedaily.com, 심우일 기자 vita@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