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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실구제 없는 퇴직연금 '디폴트 옵션' 괜찮나

근로자 운용지시 없는 상품

펀드 등 자동으로 투자 가능

여당 주도로 관련법 개정 나서

투자 손실시 면책조항 없어

불완전 판매 등 부작용 우려





당정이 확정기여형(DC형) 퇴직연금에 수익률 제고를 위해 ‘디폴트 옵션(자동투자제도)’을 도입하려는 가운데 손실이 날 경우 책임 소재가 불분명해 금융 소비자 보호에 역행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은행에서는 펀드 하나 가입하기 쉽지 않은 상황에서 근로자의 퇴직금이 펀드에 강제로 투입되는 제도는 앞뒤가 맞지 않다는 지적이다.

21일 업계에 따르면 지난달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안호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DC형 퇴직연금에 디폴트 옵션을 도입하는 내용이 담긴 법안을 발의했으며 정무위원회 소속 같은 당 김병욱 의원도 비슷한 취지의 법안을 발의했다.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지난 20대 국회에서 발의했지만 통과하지 못했던 법안이 다시 수면 위로 올라온 데는 저금리 기조와 증시 활황의 영향이 크다. 저금리 기조로 1%대인 퇴직연금 수익률이 더 떨어질 수 있는 상황인데다가 달아오른 주식시장으로 낮은 퇴직연금 수익률에 아쉬움을 표하는 사람들도 늘었기 때문이다.

DC형 퇴직연금에 디폴트 옵션을 도입하면 근로자가 퇴직연금 상품의 최초 운용 지시를 하지 않은 경우 자금을 사용자가 사전에 정한 운용 방법인 펀드 등에 자동으로 투자할 수 있게 된다. 근로자는 타깃데이트펀드(TDF), 머니마켓펀드(MMF), 인프라펀드(뉴딜펀드) 등에서 선택할 수 있다. 펀드인 만큼 주식시장이 좋다면 수익률이 높아질 수 있지만 경제위기 등이 발생하면 원금 손실 가능성도 있다.



현재는 가입자가 투자 상품을 지정하지 않으면 고용노동부 표준규약에 따라 원리금 보장형으로 운용하면서 매년 지정 여부를 가입자에게 문의하도록 했다. 하지만 법이 개정되면 지정되지 않은 기존 원리금 보장형 계약은 원금 손실이 날 수 있는 실적 배당형으로 전환될 수 있다. 김두철 상명대 명예교수는 “퇴직연금의 근본적인 특성이 훼손될 수 있다”며 “수익률이라는 빈대를 잡으려다 원리금에 해당하는 초가삼간을 태울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투자 손실 면책조항이 없어 추후 손실 발생 시 법적 다툼도 우려된다. 은행권 관계자는 “면책이 명확하지 않으면 민원 소지가 많아질 수 있다”며 “면책조항이 들어가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말했다. 대규모 불완전 판매 이슈가 발생할 수도 있으며, 다음 달 도입되는 금융소비자보호법 취지에도 역행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 은행권 관계자는 “현재 은행에서 펀드 가입은 굉장히 복잡하게 해놓고, 퇴직금은 쉽게 펀드로 넣게 할 수 있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밝혔다.

미국·호주 등에서 디폴트 옵션을 도입해 5% 이상의 수익률을 올렸다는 사례도 언급되지만 우리나라는 상황이 다르다는 의견도 나온다. 금융권 관계자는 “해외 국가들은 퇴직금이나 퇴직연금이 추가 이득과 같은 성격이어서 근로자가 수익률에 크게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 분위기지만, 우리나라는 법정 퇴직금 성격으로 법원 판례에서도 ‘후불 임금’ 성격으로 인정되고 있어 손실이 난다면 여러 문제가 야기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보험업계의 한 관계자는 “최근 1년간 유례없이 주식이 좋은 상황이 특수적인 것”이라며 “퇴직‘연금’인 만큼 수익성도 중요하지만 안정성이 더욱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여당이 주도적으로 디폴트 옵션 제도 도입에 나서는 것은 퇴직연금을 정부가 추진 중인 뉴딜펀드에 투자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김현진 기자 stari@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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