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명예회장이 현대모비스 등기이사직까지 내려놓으며 ‘정의선 체제’ 구축의 마지막 퍼즐이 맞춰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정 명예회장의 은퇴 배경으로는 지난해 10월 아들인 정의선 회장이 그룹 수장에 오르며 정해진 수순이었다는 분석이 주를 이룬다. 이 외에도 고령인 정 명예회장이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그룹의 정의선 체제 구축 속도를 높일 수 있도록 빠른 결단을 내렸다는 관측도 있다. 이 같은 결정에는 정 회장이 내연기관 중심인 현대차(005380)그룹을 미래 모빌리티 기업으로 성공적으로 변모시킨 것도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정몽구, 정의선 미래 청사진 신뢰
21일 업계에 따르면 정 명예회장의 현대모비스 등기이사직 사임은 아들인 정 회장이 지난해 10월 그룹 회장에 오르면서 예정된 수순이었다. 다만 이는 표면적 이유로 정 명예회장의 건강상 문제가 그의 조기 퇴진에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 외에 정 회장이 그룹 수장에 오른 후 내연기관 중심이었던 그룹을 스마트 모빌리티 솔루션 기업으로 성공적으로 전환해내는 모습을 보고 정 명예회장이 ‘정의선 체제’ 구축에 힘을 실어주기 위해 결단을 내렸다는 설명도 있다.
업계에서는 정 명예회장이 사실상 퇴진을 결정한 것에 대해 건강상 문제를 고려했다고 본다. 정 명예회장은 지난해 7월 대장게실염 진단을 받고 서울 풍납동 서울아산병원에서 4개월가량 입원 치료를 받았다. 당시 정 명예회장이 평소 치료받던 서울성모병원이 아닌 아산병원에 입원하며 일각에서는 건강 위독설이 나오기도 했다. 다행히 증세는 호전됐고 정 명예회장은 지난해 11월 말 한남동 자택으로 귀가했다. 다만 정 명예회장이 올해 여든 넷의 고령인 점을 고려할 때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그룹에서의 본인 역할을 빠르게 정리하려 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여기에 아들인 정 회장이 지난해 10월 그룹 수장에 오른 후 내연기관 중심인 현대차그룹을 발 빠르게 미래 모빌리티 기업으로 전환하는 모습을 보고 현대모비스 등기이사직 조기 퇴진 결심을 굳혔다는 시각도 있다. 정 명예회장이 현대모비스에서 물러나며 현대차그룹의 정의선 체제는 보다 공고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정 회장은 지난해 10월 그룹 수장에 오른 뒤 4개월 동안 광폭 행보를 보였다. 2019년 정 회장은 수석부회장 당시 직원들과 타운홀미팅을 갖고 그룹의 미래 방향성으로 ‘자동차 50%, 도심항공모빌리티(UAM) 30%, 로보틱스 20%’를 제시했다. 지난 4개월 간 정 회장은 이 청사진을 현실화하는 과정을 착실히 밟아왔다.
대표적인 예로 꼽히는 게 로보틱스 부문의 구체화다. 지난 10일 현대차그룹은 모빌리티와 로보틱스 기술을 융합한 걸어 다니는 무인 모빌리티 ‘타이거’를 선보였다. 앞서 현대차그룹은 지난해 12월 약 1조 원을 들여 ‘보스턴다이내믹스’를 인수했다. 업계에서는 현대차그룹의 자동차 양산 능력과 글로벌 네트워크라면 수익성을 확보하는 데 별다른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E-GMP·수소차 확대 본격화
정 회장은 인사를 통해 그룹 체질 변화 의지를 드러냈다. 그는 신규 임원의 30%를 UAM·자율주행·수소연료전지·로보틱스 등 신사업과 연구개발(R&D) 분야에서 대거 발탁하는 등 미래 자동차 산업 패러다임의 변화를 선도할 인재를 전진 배치했다. 현대차그룹의 아킬레스건으로 꼽히는 중국 사업은 과감하게 미래차 사업 위주로 재편 중이다. 현대차그룹은 세계 최대 수소차 시장이 될 중국에서 내년 하반기부터 수소연료전지시스템을 생산하기로 했다.
아버지 정 명예회장 시절 현대제철을 세우며 경쟁 관계에 있던 포스코와의 과감한 관계 개선도 눈여겨볼 만한 변화다. 정 회장은 16일 최정우 포스코그룹 회장과 만나 수소 생태계를 선도하기 위한 업무 협약을 맺었다. 미래 모빌리티를 위해서라면 과거의 경쟁자와도 과감히 손잡는 정의선 식 ‘실용 경영’이 빛을 발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다만 정 회장 앞에 놓인 과제도 만만찮다. 정 회장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영향에 따라 감소한 완성차 판매량 회복과 수익성 향상, 미래차 투자 재원 마련이라는 고차방정식을 풀어내야 한다. 올해 출시하는 전기차 전용 플랫폼인 ‘E-GMP’를 적용한 모델의 시장 안착도 과제다. 아울러 정 회장은 모빌리티 시장에서 애플·구글·바이두 등 대형 정보기술(IT) 업체들과의 경쟁에서 주도권을 사수해야 한다.
/서종갑 기자 gap@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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