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이 현재 국회가 추진 중인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과 관련해 정부가 대체로 반대 입장을 밝혔다. 개정안 내용 중 다수가 과도한 규제와 소비자 권익 침해를 불러올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정부가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의 현실성이 부족하다는 점을 인지하고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개정안의 핵심인 ‘복합쇼핑몰 규제’에 대해서는 여당의 손을 들어줬다. 부작용을 인지했음에도 거대 여당의 법 개정 의지를 거스를 수 없었던 것으로 해석되는 대목이다.
23일 국회 및 유통 업계에 따르면 지난 22일 정부는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산자위)에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 30여 건에 대한 의견서를 제출했다. 의견서에서 정부는 △백화점·아웃렛 영업 제한 △대규모 점포 허가제 도입 △전통산업보존구역 범위 확대 △대형 마트의 명절 영업시간 제한 등 현재 국회에 발의된 유통산업발전법의 대부분 내용에 대해 ‘동의 곤란’이라는 입장을 내놓았다. 대형 마트나 백화점을 규제하는 것이 소비자의 편익이나 전통시장과의 상생에 효과적이지 않음을 인지한 것으로 풀이된다.
우선 정부는 이동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백화점과 아웃렛·전문점 등을 영업 제한 대상에 포함하는 안에 반대했다. 이 법안은 대형 마트와 기업형슈퍼마켓(SSM)이 심야 영업 제한과 월 2회 의무 휴업 규제를 받는 것과 같은 규제를 적용하자는 내용이다. 정부는 “백화점은 골목 상권과 판매 품목, 소비자층이 다르고 아웃렛·전문점은 특정 품목에 특화된 전문 소매 업종이라 영향이 제한적”이라는 업계의 의견을 수용하면서 “백화점·아웃렛·전문점은 영향이 제한적이고 모든 대규모 점포 일괄 규제 시 소비자의 과도한 불편이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또 전통상업보존구역 범위를 현행 전통시장·전통상점가의 경계로부터 1㎞ 이내에서 20㎞ 이내로 변경하는 안에 대해서도 현실성이 없는 규제라고 지적했다. 정부는 “전통상업보존구역의 범위를 거리 기준으로 20배 확대할 경우 면적 기준으로는 400배가 확대된다”며 “서울 시내 1개 전통시장만을 기준으로 전통상업보존구역을 지정하더라도 서울시 전체 면적(605.25㎢)을 넘어서기 때문에 대규모·준대규모 점포의 입점을 지나치게 제한하는 과도한 규제가 우려된다”고 설명했다.
이밖에 김정호 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대규모 점포 허가제’ 도입도 과도한 규제를 우려해 반대했다. 명절 의무 휴업일에 대해서도 소비자의 권익이 침해될 수 있다는 이유로 반대했다.
하지만 정부는 유통산업발전법의 핵심으로 주목받은 복합쇼핑몰 규제에 대해서는 ‘동의’ 의견을 냈다. 정부 측은 “원칙적으로 복합쇼핑몰을 영업 제한 대상에 포함하되 일부 예외를 두는 방식이 합리적”이라며 사실상 규제에 찬성했다.
홍익표 민주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개정안은 복합쇼핑몰에도 월 2회 의무 휴업을 적용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만약 이 법안이 발의되면 스타필드와 롯데몰 등은 월 2회 문을 닫아야 한다. 다만 복합쇼핑몰 내에 입점한 면세점 등에 대해서는 ‘적용 예외’를 뒀다. 하지만 실제 ‘스타필드’나 ‘롯데몰’ 같은 대형 쇼핑몰에는 면세점이 없기 때문에 대부분 입점 매장에 규제가 적용된다.
업계에서는 정부와 국회의 이 같은 판단이 현실성이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복합쇼핑몰 영업시간을 규제하더라도 소비자들의 수요가 전통시장으로 향하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 때문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시장조사 기관인 모노리서치에 의뢰해 500명을 상대로 한 설문에 따르면 ‘복합쇼핑몰 의무 휴업일에 어느 곳을 이용하겠느냐’는 질문에 전통시장에 가겠다는 응답은 12%에 불과했다. 또 응답자의 28.2%가 백화점이나 아웃렛을 이용하겠다고 답했고, 대형 마트를 이용하겠다는 응답은 34.6%였다. 전통시장·골목상권을 살리겠다는 규제 취지와 달리 응답자의 62.8%가 기존 대형 유통 업체를 이용하겠다고 답한 것이다. 또 복합쇼핑몰 영업 제한에 대해 ‘의무 휴업 반대(54.2%)’ 의견이 ‘찬성(35.4%)’보다 높았다.
복합쇼핑몰에 입점해 있는 중소상공인과의 형평성 문제도 나온다. 대형 복합쇼핑몰 운영 주체는 신세계나 롯데쇼핑 같은 대기업이지만 그곳에 입점해 있는 대부분의 점포는 자영업자들이 매장을 임대해 운영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전통시장 상인들을 보호하겠다는 명분이지만 실상은 이들을 위해 복합쇼핑몰 입점 상인들의 희생을 필요로 한다는 지적이다.
신세계프라퍼티에 따르면 ‘스타필드 하남’의 총 250~300개 매장 중 약 65%가 중소상인이 운영하는 임대 매장이다. 복합쇼핑몰 의무 휴업 규제가 통과되면 스타필드 하남에서만 160여 곳 이상의 중소상공인 운영 매장이 매월 2회 문을 닫아야 한다. 스타필드 고양과 안성도 비슷한 수준으로 알려졌다.
업계 관계자는 “전통시장뿐 아니라 복합쇼핑몰에 입점해 있는 대부분 매장들이 다 중소상공인들이 운영하는 곳”이라며 “사람들이 더 이상 잘 찾지도 않는 전통시장 상인들을 보호하겠다는 이유로 복합쇼핑몰 입점 상인들을 규제하겠다는 것은 불공평하다”고 토로했다. 이어 그는 “그동안 복합쇼핑몰은 주변 상권 활성에 기여한 측면이 크다”며 “의무 휴업일이 지정되면 오히려 주변 상권이 득을 보기는커녕 피해만 볼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산자위는 지난 22일 산업통상자원특허소위원회에 이어 23일 전체 회의를 열어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 13건을 포함한 법안을 통과시킬 계획이었으나 의원들 간 이견이 심해 유통법 관련 논의를 다음으로 미루기로 했다. 논의 날짜는 정해지지 않았다.
/백주원·김혜린 기자 jwpaik@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