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제조업체들이 일명 ‘구글세’로 불리는 디지털세 도입에 대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글로벌 디지털세 도입에 대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반대 입장을 철회하며 해당 논의가 급물살을 탈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정보기술(IT)뿐만 아니라 제조업까지 과세 대상에 포함될 가능성이 커지자 국내 업체는 물론이고 정부도 관련 조직을 확대하고 나서는 등 디지털세 도입이 불러올 파장을 경계하는 분위기다.
재닛 옐런 미 재무장관은 지난달 26일 열린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 및 중앙은행 총재 화상회의에서 “미국은 더는 ‘세이프 하버’ 규정을 주장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디지털세는 구글이나 페이스북·아마존·애플 등과 같이 물리적 고정 사업장 없이 국경을 초월해 사업하는 디지털 기업에 물리는 세금이다. 디지털세 논의를 주도해온 프랑스는 오는 2019년 7월 유럽에서 최초로 이를 제도화했는데 트럼프 행정부는 디지털세가 미 IT 기업을 표적으로 삼았다며 이를 전체 기업에 의무적으로 부과하기보다 선택적으로 적용하는 세이프 하버를 제안했다. 그러나 프랑스가 이를 거부하면서 양국은 서로 보복 관세를 꺼내는 등 갈등을 빚었다. 하지만 바이든 행정부가 트럼프 전 행정부의 요구 사항을 철회하겠다고 밝히며 디지털 과세 협상이 속도를 내게 된 것이다.
미국의 입장 선회에 한국 업체들의 부담은 커졌다. 애초 디지털세는 미국의 IT 기업이 주 타깃이었다. 하지만 법인 소재지와 관계없이 온라인을 기반으로 수익을 내는 모든 기업에도 디지털세가 부과돼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영향으로 해외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비대면’ 마케팅을 활발히 벌이고 있는 한국 기업도 그 대상에 포함될 수 있기 때문이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무역의존도가 65%나 되는 우리나라는 내수 시장이 발달한 미국·중국 등 국가보다 디지털세의 타격이 더 클 수 있다”며 “정부 차원에서 기업이 경영하는 데 부담이 가중되지 않을 대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전은경 국회입법조사처 경제산업조사실 조사관도 지난해 관련 보고서를 통해 “소비자 대상 사업이 디지털 서비스세 범위에 포함되면 삼성전자·LG전자·현대자동차 등 우리 기업이 과세 대상이 되고 수출 의존도가 높은 우리 기업에 막대한 피해가 발생할 것이 예상된다”며 “한국과 비슷하게 제조품 수출 비중이 높은 중국·인도·일본·베트남 등 아시아 국가들과 공조 체제를 유지해 디지털세 과세 대상에서 소비자 대상 사업이 제외되거나 세율을 낮추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기획재정부는 지난달 글로벌 디지털세 도입에 대응하기 위한 전담 조직을 신설하며 대응에 나섰다. 기재부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와 G20 등 137개국이 참여하는 ‘디지털세 포괄적 이행체계(IF)’가 올해 중반께 디지털세 최종 합의안을 발표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유럽연합(EU)이나 미국의 목소리가 클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확실한 논리를 바탕으로 한국 기업의 이익을 지켜내겠다는 계획이다.
국내 기업은 디지털세 도입이 최종 합의에 이르기까지 여러 관문이 남은 만큼 신중하게 지켜본다는 입장이지만 그 여파를 우려하고 있다. 온라인 플랫폼 등을 통해 휴대폰·가전 등 다양한 제품군을 판매하고 있는 삼성전자는 “전 세계적 논의가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지를 두고 예의주시하고 있다”면서도 “아직 논의 중인 단계인 만큼 대응 조직 등 이렇다 할 공식적 조치는 취하지 않은 상태”라고 설명했다. 이밖에 현대차 같은 완성차 업체도 소비자 대상 사업으로 분류되는 만큼 과세 대상에 들어갈 가능성이 있어 업계는 대응을 고심할 것으로 보인다.
/전희윤 기자 heeyoun@sedaily.com, 이수민 기자 noenemy@sedaily.com, 박한신 기자 hspark@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