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유가와 주요 원자재 시장이 들썩이자 국내 산업계가 분주해지고 있다. 국제 유가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전 수준을 회복했고 철광석·구리 등 주요 경기 민감 원자재 가격도 가파른 상승세를 타고 있다. 친환경 전기차 시장 확대에 힘입어 배터리 핵심 원재료 가격도 오름세다. 코로나19라는 터널에 갇혀 있던 글로벌 경기가 최근 백신 보급 확산과 조 바이든 미 행정부의 대규모 부양책을 계기로 회복에 대한 기대가 커지자 원자재 가격이 반응하는 것이다. 넘치는 유동성도 가격 상승을 부추기고 있다. 조선·철강·정유 업계는 원자재 가격 상승 사이클에 올라타 실적 개선을 기대하고 있지만 항공·자동차 업종은 장기적으로 원가 상승 부담을 키울 수 있어 신중한 분위기다.
8일 로이터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5월 인도분 브렌트유 가격이 아시아 시장에서 장 초반 배럴당 71.38달러를 기록했다. 지난해 1월 8일 이후 최고치다. 코로나19 백신 확산으로 글로벌 수요 회복에 대한 기대가 가격을 밀어올리던 상황에서 7일(현지 시간)에는 예멘 반군이 사우디아라비아 아람코 석유 시설을 공격했다는 소식에 국제 유가가 위로 튀었다. 지난주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주요 산유국 모임인 OPEC+가 석유 생산량을 늘릴 것이라는 당초 전망과 달리 감산 연장을 결정한 점도 국제 유가 상승을 이끌었다.
지난해 코로나19 사태 여파로 5조 원이 넘는 손실을 봤던 정유 업계는 국제 유가 상승과 소비 회복 분위기에 정제 마진 개선을 기대하고 있다. 정제 마진은 정유사들의 수익 지표로 통상 배럴당 4~5달러를 손익분기점으로 본다. 업계에 따르면 3월 첫째 주 정제 마진은 배럴당 2.3달러로 여전히 낮은 수준이다. 하지만 올해 초까지만 해도 배럴당 1달러 수준에 그쳤던 터라 추가 상승에 대한 기대가 크다. 정유 업계의 한 관계자는 “최근 유가 상승 분위기에 수요 회복까지 확실히 나타난다면 실적 반등을 기대해볼 만하다”고 말했다.
철강업계는 최근 원자재 랠리를 제품 가격 인상의 지렛대로 삼고 있다. 포스코와 현대제철은 지난해 12월부터 열연강판 톤당 유통가를 매달 5만~10만 원씩 올리고 있다. 이달에도 5만 원을 추가 인상한다. 지난해는 원료 가격 상승 대비 제품 가격 반영이 지연되면서 실적이 악화됐지만 올해는 조선·자동차 등 전방 수요 산업 회복세에 따라 연초부터 제품 가격을 꾸준히 인상하고 있다. 철광석 가격은 5일 기준으로 톤당 175.72달러를 기록했다. 지난달 5일 기준 톤당 154.91달러에서 한 달여 동안 20달러 이상 꾸준히 상승했다. 올해 가장 높은 가격이었던 172.19 달러(1월 15일)보다도 더 오른 것이다.
조선업계는 유가 상승에 따른 수주 업황 개선을 기대하고 있다. 시추 설비인 해양 플랜트를 비롯해 탱커와 컨테이너선 등의 신조 발주 수요가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올 들어 조선업계 빅3(한국조선해양·삼성중공업·대우조선해양)는 수주 낭보가 이어지며 이미 연간 수주 목표치(304억 달러)의 15%가량을 달성했다. 조선업계의 한 관계자는 “원자재 가격이 급등하며 선박 제작 비용이 선가에 반영되는 등 발주 환경이 개선되고 있다“고 말했다. 굴착기 등 기계 업종도 철광석 등 원자재 가격이 오르자 광물 채취가 늘면서 수요가 증가하고 있다.
전기차 배터리 핵심 소재인 니켈과 코발트 가격도 뛰었다. 니켈 값은 최근 중국 업체가 전기차용 니켈 대규모 공급 계획을 밝히며 급락했지만 여전히 1년 전보다 25% 가까이 높은 수준이다. 코발트도 올 들어 46% 폭등했다. 핵심 원재료 가격 상승은 배터리 원가 상승 요인이지만 당장 수익성에 영향을 주지는 않는다는 게 업계 설명이다. 소재 업체의 한 관계자는 “원재료 소싱(조달)은 장기 고정 물량과 가격 변동을 반영한 스폿 물량을 적절히 혼합해 하고 있기 때문에 가격 상승이 당장 조달 원가 부담으로 작용하지는 않는다”면서 “가격 상승분은 공급가에 전가하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항공 산업은 유가 상승에 울상이다. 싱가포르 현물 시장에서 항공유 가격은 코로나19 직후인 지난해 4월 갤런당 51.8센트에 불과했지만 지난해 7월 100센트를 돌파(104.36센트)하더니 올 2월에는 155.17센트로 치솟았다. 코로나19에 따른 최악의 수요 감소 상황이 사실상 나아진 게 없는데 원가의 중요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는 유가 부담만 세 배 늘어난 셈이다. 코로나19 이전 대한항공의 연간 유류 소모량은 약 3,300만 배럴에 달한다. 대한항공의 한 관계자는 “옵션으로 헤징을 하지만 유가가 배럴당 1달러 오르면 3,300만 달러가 고스란히 부담으로 작용하는 셈”이라고 말했다.
/한재영 기자 jyhan@sedaily.com, 박한신 기자 hspark@sedaily.com, 한동희 기자 dwis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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