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배들에게 하나의 설비를 3개월 이상 꾸준히 관찰하고 연구하면 누구든 명장이 될 수 있다고 얘기합니다.”
‘사물을 깊이 연구해 지식을 넓힌다’는 뜻의 고사성어 ‘격물치지(格物致知)’를 자신의 성공 비결로 꼽는 인물이 있다. 삼성SDI(006400)의 1호 ‘삼성명장’ 타이틀을 거머쥔 김형직(사진) 명장이다. 김 명장은 삼성그룹의 제조 계열사 직원 중 장인 수준의 숙련도와 노하우를 갖춘 직원에게 부여하는 삼성명장에 올해 초 선발됐다. 삼성에 근무하는 기술자가 얻을 수 있는 직장 내 최고 영예다.
김 명장은 8일 서울경제와의 인터뷰에서 "내가 가진 30년 노하우로 후배들이 제2, 제3의 명장이 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그가 제시하는 ‘명장의 길’은 결코 어려운 것이 아니다. 김 명장은 “자꾸 공부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기술이 늘 수밖에 없다”며 “언제나 해답은 본인의 업무 속에 있다”고 조언했다. 꾸준히 한길을 파다 보면 명장이 되는 길이 자연스럽게 나타난다는 것이다.
김 명장은 충남 아산 출신으로 어렸을 적 고장 난 경운기 고치는 일이 취미였다. 경운기를 뜯고 조립하기에 익숙해지자 단순히 경운기를 고치는 일뿐 아니라 새로운 농기계를 만드는 일까지 가능해졌다고 한다. 김 명장은 “기계를 분석하고 개선해온 과거 경험이 명장에 선발되는 데 밑거름이 됐다”고 말했다.
지난 1991년 입사한 김 명장은 30년간 생산 설비 분야에만 근무했다. 생산 설비 개발과 효율성 향상을 위한 공정 개선 등 현장 혁신을 이끌어온 설비 분야 최고 전문가로 꼽힌다. 그가 속한 조직도 ‘설비혁신그룹’이다. 김 명장은 자신이 명장에 선발될 수 있었던 배경으로 주저하지 않고 원통형 배터리 생산성 향상 기여를 꼽았다. 전동공구와 전기차·청소기 등에 폭넓게 활용되는 원통형 배터리는 최근에는 드론과 킥보드까지 활용처가 넓어졌다. 김 명장은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식료품 공장의 생산공정을 스터디하는 한편, 심지어 부탄가스 제조 등 타 업종의 생산방식을 벤치마킹했다. 원통형 배터리 생산성을 기존 대비 2배 이상 향상시키면서 품질은 안정화하는 데 기여했다. 배터리 생산 설비 모니터링 시스템을 구축하고 설비들의 유지 관리 시스템을 체계화한 공로도 인정받았다.
누구나 그렇듯 김 명장도 처음부터 전문가였던 것은 아니다. 입사 직후에 TV용 컬러 브라운관 생산을 담당했는데 화면의 색을 눈으로 확인하며 조절하는 검사 공정에 투입됐다. 일일이 눈으로 보면서 수작업을 하는 작업이 시쳇말로 장난이 아니었다. 그러다 보니 속도와 정확도 모두 낮아졌다. 김 명장은 당시 당연시되던 수동 검사 공정이 비효율적이라고 느끼고 자동 검사기 개발에 매진했다. 그가 개발한 자동 검사 장비는 해외 사업장에도 배치됐고 전사적인 생산성 향상을 이뤄냈다.
배터리 생산을 담당하게 된 것은 2005년이다. 당시만 해도 배터리 충전과 방전을 지속하게 하는 장비(충방전기) 대부분이 일본산이었다. 가격도 비쌀뿐더러 AS나 부품 수급도 원활하지 못했다. 그는 또다시 충방전기 개발을 시도했고 해당 장비 국산화에 크게 기여했다.
/한재영 기자 jyha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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