꺾이지 않는 미국 국채 금리 상승세가 국내 금융시장을 압박하고 있다. 국내 증시가 글로벌 증시의 영향을 고스란히 받고 있는 데다 최근 원화 약세와 외국인 수급까지 불리하게 진행되면서 코스피지수는 하루에도 2%대의 높은 변동성을 기록하는 날이 반복되고 있다. 증권가에서는 결국 금리 상승 속도가 둔화되는 시점에 최근의 조정장이 숨을 고를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당장 다음 주 미국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가 한 번의 변곡점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9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이날 코스피지수는 전 거래일보다 0.67%(19.99포인트) 하락한 2,976.12포인트로 장을 마감했다. 장 초반 반짝 상승했던 지수는 금세 하락세로 돌아선 뒤 극심한 변동성을 보였다. 이날 코스피지수 최고치와 최저치 폭은 71.13포인트(2.43%)를 기록했으며 2% 가까이 하락하다가 낙폭을 되돌리는 모습이 여러 차례 나타났다. 이에 따라 코스피지수는 지난 1월 29일 이후 처음으로 4거래일 연속 하락세를 기록했다.
◇문제는 가파른 금리 상승세=시장에서는 최근의 조정이 금리에 대한 불안감이라고 보고 있다. 다만 금리의 상승 여부가 아닌 그 속도에 대한 두려움이 시장 참여자들의 심리를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는 분석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접종 확산과 경기회복 등으로 금
리 상승은 불가피하지만 속도가 너무 빠른 게 문제라는 것이다. 8일 기준 10년 만기 미국 국채 금리는 장 중 1.615%까지 치솟았다. 올 초만 해도 미 국채 10년물 수익률은 0.95% 수준이었지만 두 달이 채 되지 않아 0.7%포인트 오른 셈이다. 한국 국고채 10년물 금리도 이날 2.034%까지 올라 연초 이후 0.3%포인트 이상 상승했다. 오현석 삼성증권 리서치센터장은 “그동안 증시를 끌어올렸던 것은 유동성의 힘이었는데 금리가 급등하는 것은 유동성을 나쁘게 만들 수 있어 두려워하는 것”이라며 “특히 최근에는 중앙은행의 긴축 시사가 없는 상황에서도 금리가 발작적으로 상승하니까 더욱 그런 면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흔들리는 코스피 지지선은 2,700 후반=시장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다른 변수가 나타나 시장의 펀더멘털을 훼손하지 않는다면 일차적으로는 최근 지수의 하단이 지지선이 될 것이라는 예상이 우세하다. 나정환 DS투자증권 연구원은 “이날 코스피지수가 2,930포인트 선까지 내려갔다가 반등했는데 이 지점이 방어선이 될 것”이라며 “인플레이션 이슈가 많이 지목되지만 크게 우려하는 분위기는 아니며 단기적으로 과잉 대응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재만 하나금융투자 연구원도 “1차 지지선은 2,920 선”이라며 “만약 밸류에이션 리스크가 발생할 경우에는 2,770 선을 코스피지수의 하단으로 보고 있다”고 전망했다.
오히려 최근 국내 증시가 상대적으로 변동성이 더 심화된 것은 금리 영향보다는 환율과 단기 수급 영향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로 지난달 16일 원·달러 환율은 1,100원 정도였지만 최근 1,140원까지 급등했으며 원화 약세에 맞춰 외국인 투자가들도 국내 증시에서 자금을 빼가는 모습이다. 실제로 외국인들은 지난달 16일부터 현재까지 유가증권시장에서만 5조 1,365억 원어치의 주식을 순매도하면서 기관의 순매도 규모(4조 2억 원)를 넘어서고 있다. 오 센터장은 “매일 변동성이 심해지는 것은 펀더멘털보다는 수급 때문”이라며 “연기금도 50거래일 가까이 순매도 행진을 이어가고 있고 외국인도 자금을 빼가고 있다 보니까 수급 측면에서 불리하게 작용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다음 주 FOMC가 분기점 될 듯=경기회복이 이어지고 있기에 금리 상승은 앞으로도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이미 미국은 경기회복 속도를 높이고 있다. 마이너스 성장을 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왔던 1분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10%(연 환산 전기 대비 기준)에 달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온다. 특히 미국의 1월 소매판매가 전월 대비 5.3% 증가하면서 시장 예측치(1.2%)를 크게 웃돌았다. 일자리도 좋아지고 있다. 미국의 2월 비농업 부문 고용은 37만 9,000개 증가해 시장 전망치(21만 명)보다 15만 개 이상 많았다. 금리 상승의 열쇠를 가진 미국의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적어도 올해는 금리 인상이 없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시장은 ‘경제 회복 속도가 더 빨라진다면’이라는 가정을 내세워 연준을 쉽게 믿으려 하지 않는 것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다만 이전과 같은 가파른 속도로 금리가 다시 오를 것인가가 중요한데 현재 증권가에서는 그럴 가능성은 적다고 보는 견해가 우세한 듯하다. 아울러 최근 미국 증시에서 보듯이 금리 상승이 증시에 부담을 주는 경향성이 조금씩 줄어들고 있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나 연구원은 “지난주 미국 고용 보고서 발표 이후 경기회복 이야기가 나오면서 금리가 올랐는데도 오히려 미국 증시는 상승했다”며 “금리 상승과 주식이 반대로 가는 경향성을 탈피했다고 판단한다”고 말했다. 한지영 케이프투자증권 연구원도 “역사적으로 금리가 상승할 때 지수도 상승하는 시기가 더 많았고 성장주도 마찬가지”라며 “시간이 지날수록 금리 상승 속도가 둔화되고 있고 시장 스스로가 적응할 수 있는 문제”라고 판단했다. 당장 다음 주 열리는 FOMC는 금리 상승과 관련한 변수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시장에서 바라는 오퍼레이션 트위스트(Operation Twist·장기채를 매입하고 단기채는 매도해 장단기 금리 차를 축소하는 정책)나 YCC(일드커브컨트롤) 등을 쓰는 것은 국제 유가 상승 등의 부담으로 어려울 것이라는 의견이 있지만 시장 혼란이 지속될 경우 또다시 시장 달래기에 나설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에서다.
/박성호 기자 junpark@sedaily.com, 뉴욕=김영필 기자 susopa@sedaily.com, 이승배 기자 ba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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