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지보상 전문가들인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의 기상천외한 투자 기법이 이번 사태를 통해 알려지면서 ‘그들만의 리그’였던 토지 투자가 수면 위로 드러나게 됐다. 각종 쪼개기와 희귀수종 심기 등 독특한 기법이 알려지면서 의도하지 않은 ‘대국민 투자 강의’가 됐다는 비아냥도 나오고 있다. 그럼에도 이 같은 투자를 위해서는 확실한 정보와 수억~수십억원의 자금동원 능력이 필요한 탓에 여전히 일부 특권층의 전유물에 그칠 전망이다.
◇희귀수종 동원해 보상 극대화=LH 직원 A씨는 다른 직원들과 함께 구입한 시흥 토지에 190㎝ 높이의 용버들 나무를 빼곡하게 심었다. 일반인들에게는 이름도 낯선 이 나무는 쌍떡잎식물로 버드나무의 한 종류다. 일반적으로는 한 평(3.3㎡)에 한 그루를 심는 게 적당하지만 A씨는 평당 25그루 가량을 빼곡하게 심어 놨다. 나무들이 제대로 자라기도 어려운 수준이다.
A씨가 노린 보상 기법은 ‘희귀수종’을 ‘빼곡히’ 심는 방법이었다. 일반적인 나무는 감정가가 얼추 정해져 있다. 하지만 희귀수종이라면 가격 책정이 어렵고, 여기에 심어놓은 나무 숫자도 많은 탓에 ‘보상 전문가’인 A씨가 향후 LH와 협상을 통해 실제보다 많은 보상가를 받아낼 여지가 생긴다. 특히 용버들은 몇 년 만에 훌쩍 자라는 속성수인데, 향후 나무를 베어내거나 이식해야 할 경우 키가 크고 굵을수록 보상액이 커진다는 점을 노렸다는 분석도 나온다. 조경업계에서는 A씨가 심은 용버들은 그루당 2,000~3,000원 선이었을 것으로 보고 있는데, 몇 년이 지나면 수만원 수준으로 값이 오를 것으로 보고 있다.
◇확실한 정보 있으니…'맹지' 집중투자=부동산을 조금 공부한 사람이라면 거의 쳐다보지 않는 ‘맹지(盲地)’도 경우에 따라서는 확실한 투자처가 될 수 있다는 사실도 이번 사태를 통해 알려졌다. 맹지는 진입로가 없는, 도로에서 떨어진 땅이다. 활용도가 낮은 탓에 함부로 샀다가는 되팔지도 못하고 골칫덩이로 전락하는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 확실한 개발정보가 없다면 평소엔 거래도 거의 되지 않는 땅이다.
하지만 LH 직원들은 맹지를 웃돈까지 줘가면서 사들였다. 개발 가능성을 사전에 인지하지 않았다면 하기 힘든 투자라는 지적이다.
개발 예정지 한복판에 땅을 사 건물을 올리거나 나무를 심은 뒤 사업자에게 비싸게 팔아치우는 ‘알박기’ 사례도 등장했다. 시흥시의회 소속 B의원은 딸 이름으로 신도시 예정지인 시흥시 과림동 임야 111㎡를 발표 전 사들인 뒤 2층 건물을 지어 올렸다. B씨는 ‘거주용’이라고 주장했지만 건물 바로 옆이 쓰레기 야적장이라는 점에서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아파트 분양권을 노린 ‘알박기 투자’라고 보고 있다.
◇지분 쪼개고 ‘농사 짓겠다’ 가짜 계획서까지=LH 직원들은 미리 점찍어둔 땅을 대토보상 기준인 1,000㎡에 맞춰 쪼개서 구분 등기했다. ‘지분 쪼개기’는 건물이나 땅 지분을 나눠 개발 때 아파트 분양권이나 대토보상을 더 많이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이다. 다른 투기 기법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잘 알려진 방법인 탓에 고양창릉 등 다른 신도시 예정지에서도 심심찮게 발견되는 수법이기도 하다. 개발 공고일 이전에 1,000㎡ 이상 땅을 갖고 있으면 단독 택지로 보상이나 아파트 입주권을 받을 수 있다.
‘대토보상’도 일반인들에게는 낯선 용어다. 택지 개발로 토지가 수용되는 경우 현금 보상 대신 다른 땅으로 보상을 받는 제도다. 대토보상을 받아 택지나 근린생활용지로 땅을 받아 건물을 지으면 수 배의 수익을 기대할 수 있다.
LH 직원들이 농지를 사들인 뒤 영농계획서를 제출한 것도 보상 극대화를 위한 편법으로 보인다. 영농계획서를 낸다는 건 해당 농지에서 직접 농사를 짓는다는 의미인데, LH 직원으로 도시에서 근무하던 이들이 실제로 농사를 지을 생각이었다고는 보기 어렵다. 특히 이들은 지목이 논인 곳에 벼를 재배하겠다고 신고한 뒤 불법으로 묘목을 심은 것으로 나타났다. 무엇을 심어야 수익이 많이 날 수 있는지까지 꼼꼼하게 분석했다는 것이다.
신태수 지존 대표는 “토지 보상과 관련된 부분은 LH 직원들이 가장 잘 알고 있는 부분”이라며 “자산가치 상승에 따른 차익을 노렸다기 보다는 보상과 관련된 각종 인센티브를 노린 것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징벌적 양도세와 보유기간에 따른 인센티브 차등화 등 제도화를 통해 이익을 남길 여지를 없애야 투기 수요를 차단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진동영 기자 ji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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