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달러 가치가 반등하면서 신흥국 관련 투자 상품의 수익률이 하락하고 있다. 증권사들은 달러 동향에 신흥국 증시가 요동치는 국면이 당분간 지속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다만 달러 반등 추세가 일시적일 가능성이 높아 신흥국에 관심을 꾸준히 가져야 한다는 의견도 상당하다. 각 국가의 경제 성장 전망, 그리고 이를 뒷받침할 정부 정책의 여력을 보고 어떤 신흥국에 투자할지 ‘옥석 가리기’가 필요하다는 분석이다.
10일 금융 투자 업계에 따르면 모건스탠리인터내셔널 신흥국(MSCI EM) 지수는 지난 한 달 사이 6.48% 하락했다. 같은 기간 MSCI 월드 지수가 1.3%의 내림세를 보인 것과 대조적이다. MSCI EM 지수는 우리나라를 비롯해 중국·인도·대만·브라질 증시 등이 포함된 주가지수다. 선진국 증시를 반영하는 MSCI 월드 지수와 달리 신흥국 시황을 반영하는 지표로 쓰인다.
국내 펀드 시장에서도 신흥국 주식시장에 투자하는 상품의 부진이 두드러진다. 금융 정보 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신흥국 주식 펀드 66개의 평균 수익률은 ?5.83%로 전체 해외 주식형 펀드 평균(-4.83%)을 밑돌았다. 최근 3개월간 평균 7.27%의 수익률을 거둔 것과 비교하면 분위기가 반전됐다. 원자재 신흥국의 비중이 큰 중남미 주식형 펀드의 경우 지난 한 달간 평균 수익률이 ?6.14%에 그쳤다.
최근 신흥국 증시가 부진한 것은 미국 금리 상승, 이에 따른 달러 가치 반등과 관련이 깊다. 상대적으로 가치가 떨어진 신흥국 통화 표시 자산에서 돈을 빼고 달러화로 환전하려는 수요가 늘어났기 때문이다. 금리 상승으로 자본시장이 불안한 모습을 보이면서 일시적 피난처인 달러로 자금이 몰린 것도 영향을 미쳤다.
실제로 지난달 16일 연 1.30% 수준이었던 미국 국고채 10년물 금리는 최근 연 1.5~1.6% 수준까지 치솟았다. 그 사이 유로·엔·파운드 등 6개 통화 대비 달러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인덱스는 90.579에서 92 수준까지 올랐다. 이는 최근 신흥국 지수가 고점을 찍고 내림세를 보인 시기와 대체로 일치한다.
지난달 17일 1,444.93으로 연중 고점을 경신했던 MSCI EM 지수는 이후 하락을 거듭해 지난 9일 1,317.85까지 내려왔다. 김한진 KTB투자증권 수석연구위원은 “시장 금리 상승은 달러 경색을 초래할 수 있는 잠재적 요인”이라며 “달러 조달 조건 악화는 국가 부채 비율이 높고 재정 수지가 취약한 신흥국 통화를 약세로 몰고 갈 수 있다”고 진단했다.
증권가에서는 당분간 미국 국고채 금리, 달러 가치 변동과 연계해 신흥국 증시가 움직일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글로벌 경기가 지난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충격을 딛고 반등세를 나타낼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한 만큼 최근의 미 달러 강세가 신흥국에 미치는 영향이 상쇄될 수 있다는 의견이 나온다. KB증권은 “단기적으로 신흥국 위험 자산은 대내 변수보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정책 스탠스, 미국 증시와 연계해 등락하는 한편 반등을 지속할 것”이라며 “신흥국 증시에 대한 단기 비중 확대 의견을 유지한다”고 밝혔다.
강달러 흐름이 일시적 현상에 그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문남중 대신증권 수석연구위원은 “올해는 미국 정부가 코로나19 위기 대응을 위해 재정지출을 해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달러 약세 흐름이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며 “현재 미국 국고채 10년물 금리가 기대 물가 수준을 반영한 영향도 있어 최근과 같은 달러 강세가 제한될 수 있다”고 해석했다.
그러나 글로벌 거시경제 환경의 불확실성이 지속되고 있어 투자국 선별이 무엇보다 중요해졌다는 조언이 나온다. 보통 신흥국은 원자재 생산국과 제조 신흥국으로 분류한다. 문 수석연구위원은 “신흥국의 경우 경제성장과 이를 뒷받침할 정부의 여력을 보고 투자처를 고르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며 “중국·대만 등 아시아 공업국이 이 같은 조건에 부합하는 곳이라고 판단한다”고 말했다. KB증권은 중국 비중 확대를 권고하되 가격 매력 측면에서 브라질에 주목할 만하다고 밝혔다.
/심우일 기자 vita@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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