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는 비록 파운드리 사업 진출은 늦었지만, 현재 업계의 가장 큰 화두인 선단공정 경쟁력은 손색이 없다고 봅니다. 부족한 생산능력은 효율적 투자로 적기에 확충해 업계 1위 업체를 뛰어넘겠습니다.”
17일 오전 경기도 수원시 수원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삼성전자 정기 주주총회에서 김기남 대표이사 부회장은 이같이 밝히며 글로벌 파운드리 시장에서 양강 구도를 이루고 있는 대만 TSMC를 빠르게 따라잡겠다는 목표를 분명히 했다. 김 부회장의 발언은 주주들의 궁금증을 풀어주는 차원에서 이뤄진 질의응답 형식을 취했지만 업계에서는 삼성전자가 김 부회장의 입을 빌려 지난 2019년부터 추진 중인 ‘반도체 비전 2030’에 대한 자신감을 드러낸 것으로 보고 있다. 이와 관련, 글로벌 시장조사 업체 IC인사이츠는 올해 삼성전자가 반도체 시설 투자에 업계 최대 규모인 280억 달러(31조 7,000만 원)를 투자하며 TSMC(275억 달러 투자)를 맹추격할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았다.
이날 김 부회장의 발언은 특히 300만 명이 육박하는 ‘동학 개미’ 주주들 앞에서 공언한 내용이라는 점에서 더 눈길을 끈다. 확실하지 않은 사업적 성과에 대해서는 되도록 말을 아끼는 삼성 최고경영자(CEO)의 성향을 고려했을 때 비(非)메모리 시스템 반도체에 대해서도 성공을 자신할 비책이 있다는 뜻으로 업계는 해석하고 있다. 그 중 하나로는 지난해 실적 발표 때 한 차례 언급이 있었던 대규모 인수합병(M&A)도 거론된다. 김 부회장은 이에 대해 “기존 사업의 지배력 강화나 기존 사업과의 시너지를 낼 수 있는 분야를 탐색하고 있다”며 글로벌 시장에서 인수 대상을 물색하고 있다는 상황을 알렸다. 늦어도 3년 이내에 대규모 M&A를 진행하겠다는 삼성전자의 언급 이후 업계에서는 차량용 반도체 기업 등이 인수 대상으로 오르내린 바 있다.
M&A 추진을 재차 확인한 김 부회장은 다만 독자적인 기술 고도화를 통한 초격차 유지 전략도 여전히 주효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삼성전자는 D램과 낸드 모두 1위 업체로서 압도적인 시장점유율을 갖고 기술 리더십을 통해 계속 초격차 전략을 유지하고 있다”며 “특히 낸드의 경우 단수를 경쟁력 있게 만드는 게 핵심인데 적층 기술을 통한 압도적 원가 기술력을 갖고 있어 메모리 부문에서 계속 1위를 유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삼성전자의 비메모리 사업 전략에 대해 질의하는 주주에 김 부회장은 “삼성전자는 아직 선도 업체에 비해 규모는 작지만 잠재력은 뛰어나다”고 운을 뗀 뒤 “디스플레이구동칩(DDI)은 20년째 1위를 지속하고 있고 이미지센서는 0.7㎛(마이크로미터) 이하 미세 픽셀을 선도하고 있으며 시스템온칩(SOC)은 5G 상용화 등을 통해 기술 리더십을 지속적으로 강화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 주총에는 김현석 CE(소비자가전) 부문장 사장과 고동진 IM(IT·모바일) 부문장 사장도 참석해 사업 부문 현황을 상세히 설명했다. 김 사장은 올해 TV 주력 모델인 네오(Neo) QLED가 경쟁사 LG전자의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TV에 못지않은 기술력을 자랑하는 제품이라는 점을 강조하는 동시에 대당 1억 7,000만 원인 마이크로 LED TV를 일반 소비자도 구매할 수 있는 가격으로 출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고 사장은 ‘갤럭시 노트 시리즈가 단종되냐’는 주주의 질문에 대해 “계속 출시할 계획”이라고 선을 긋고 내년께 신제품 출시를 예고했다.
한편 이번 주총은 삼성전자 사상 최초로 온라인으로 중계됐다. 삼성전자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방지는 물론, 시간·공간적 제약으로 주총에 직접 참석하지 못하는 주주들을 위한 대안으로 온라인 중계 시스템을 마련했다. 이를 기반으로 김 부회장 등이 온라인으로 실시간으로 들어온 질문 13건에 즉각 답변을 하는 등 주주 의견을 적시에 반영하는 새로운 풍경이 연출됐다.
이날 주총 현장에는 지난해의 두 배가 넘는 900여 명의 주주가 참석한 가운데 복역 중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거취를 두고 주주 간 대립도 연출됐다. 참여연대 회원이라고 밝힌 한 주주는 “징역 2년 6개월의 실형을 살고 있는 이 부회장이 여전히 부회장직을 유지하고 있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이에 다른 주주는 “삼성전자 부회장은 자리를 지켜야 한다. 왜 (이 부회장이) 감옥살이를 해야 하느냐”고 반박했고 또 다른 주주들은 외부의 독립적인 감시 기구인 준법감시위원회가 이 부회장의 거취에 대해 논하는 것은 ‘월권’이라는 의견을 내기도 했다. 김 부회장은 이 같은 논란과 관련해 “회사는 글로벌 네트워크나 미래 사업 결정 등 이 부회장의 역할을 고려하고 회사 상황과 법 규정을 종합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답했다.
/이수민 기자 noenemy@sedaily.com, 전희윤 기자 heeyou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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